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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판결 두번째 이야기를 정리하며
한해를 마감하면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판결들을 <올해의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2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글은 두 번째로 우리를 아프게 한 판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판결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에 앞서 합리적인 토론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넓은 의미에서 판결로 보아 함께 정리하였습니다.

참고로 첫 번째 글에서 소개한 올해의 판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연주 전 KBS 사장 무죄, 해임 취소 판결  2. YTN 낙하산 사장 출근저지 "해고 무효" 판결 3. 미네르바 무죄 4. 군사정권 공안사건 재심서 무죄 판결 잇따라 5. "국회농성 사건, 특정당만 기소는 차별" 6. 금융실명법에 따라 예금명의자에게 권리 인정 7. "삼보일배 시위는 표현의 자유 영역" 8. 부부 강간 최초 인정  "성전환자 성폭행도 강간" 9. 역사교과서 수정 논란, 저작권자 승소.                    <기자의 말>


참사 1년, 용산은 아직도 울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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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서울 한복판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재개발 보상에 반발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건물에 경찰이 하룻만에 특공대를 투입, 강제진압에 나서면서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철거민 5명,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간, 말 그대로 참사였다.

검찰의 수사기록 공개 거부와 변호인의 재판부 기피신청 등의 파행 끝에 1심 재판은 마무리됐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용산은 아직도 울고 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치상, 폭력행위처벌법, 방화, 교통방해, 업무방해 등 9가지 죄명으로 기소된 농성자 9명은 지난 10월 징역 6년-2년(집행유예 2명)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 검찰과 법원의 입장 차이는 거의 없었다. 재판부는 화재원인에 대해 "농성자들이 망루에서 경찰을 향해 화염병이 던져 불이 났고 인화물질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망루 전체가 화염한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농성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무리한 진압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변호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시내에서 위험한 시위용품을 갖고 위법행위를 하는 농성자들을 신속하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고 협상에서 경찰의 선철수라는 전제조건을 내세운 사정 등을 고려할 때 (경찰특공대 투입은) 정당한 목적을 위한 상당한 조치였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어 "동기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수단과 방법, 결과가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공무집행중이던 경찰 1명이 사망하고 많은 경찰관이 다치게 한 행위는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용산 참사의 '법적 단죄'는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유가족들은 아직도 용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 진상규명과 유가족에 대한 대책, 보다 근본적으로는 강제철거와 재개발 법령 개선 등의 문제가 겹쳐 용산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공권력에 도전하는 '범법자'를 처벌하는 걸로 책임을 다한 것일까. 이 판결을 두고 한 누리꾼은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들이 징역 6년이면 사태 파악 못하고 밀어붙인 사람들은 징역 몇 년일까요."

삼성 에버랜드 사건 "무죄", 삼성 SDS사건은 "선처"?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결코 낮지 않은 형량이다. 그런데 이것이 1천억 원대의 세금 포탈, 수백억 원의 배임죄에 대한 처벌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1심보다 죄가 하나 늘었는데도 항소심에서 같은 형을 선고했다면 더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피고인이 "국가경제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라면 그럴만 하지 않은가.

지난 5월 29일(금) 대법원이 주주 배정 방식의 에버랜드 사건에서는 무죄를, 제3자 배정 방식의 SDS 사건에서는 유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삼성 본관 검색대.
 지난 5월 29일(금) 대법원이 주주 배정 방식의 에버랜드 사건에서는 무죄를, 제3자 배정 방식의 SDS 사건에서는 유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삼성 본관 검색대.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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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대법원은 2개의 삼성 판결을 내놓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을 통한 경영권 불법승계'사건은 6대 5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무죄를 확정했다. 이 판결을 두고 '편법 경영권 승계'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이 들끓었지만 또다른 사건인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발행(배임)에 대해서는 "회사의 손해액 산정에 따라 유죄로 볼 수 있다"며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적정가치를 계산한 끝에 이 전 회장의 배임죄를 인정했다. 문제는 형량이었다. 세금포탈죄에, 1심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판결을 받은 배임죄가 추가됐는데도 형은 그대로였다. 

재판부는 양형의 이유에 대해 "공정한 신주인수권행사 가격 산정의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낮고 회사가 입은 손해를 납부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지만 여론의 반발은 거셌다.

1심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도 "건강이 좋지 않은 점,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고용창출을 통해 사회안정에도 기여한 점, IOC 위원 등 체육발전과 소외계층 지원 공로로 각종 훈장을 받은 점" 등이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없어지려면 거액의 세금 포탈, 횡령 등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제사범에 대해 사법부가 단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조두순 사건 "징역 12년"에 누리꾼 "솜방망이 처벌" 비판

작년 12월 안산의 한 교회에서 8살난 여자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한다. 범인은 50대 후반의 남성. 그는 성적 요구를 거절하는 아이를 때리고 목을 졸라 기절시킨 후 강제로 몹쓸 짓을 저질렀다. 아이는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은 물론, 평생 신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법원은 피고인 조두순에게 강간상해죄를 적용, 징역 12년에 7년간 전자발찌 부착, 5년간 피고인 정보 열람이라는 '중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중형이란 판단은 법원의 생각에 불과했다. 조두순 사건이 방송에 소개되어 잔인한 범죄행각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법원 판결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드높았다.

특히 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이유를 들어 조두순에게 심신미약 감경(형법 10조 2항)을 하였는데,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은 법 개정을 들고 나왔다. 아동 성폭행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연장, 징역형 30년까지 상향 조정, 화학적 거세 치료 추진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조두순 사건은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판사들의 형량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강요는 인간의 존엄 훼손"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생을 마감할 권리(존엄사)'와 '환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법정에서 맞섰다. 법원은 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강조했다.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판결 이후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가 집행되는 6월 23일 오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1년 4개월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 온 77살 김모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가 집행되기전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판결 이후 처음으로 연명치료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가 집행되는 6월 23일 오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1년 4개월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연명치료를 받아 온 77살 김모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가 집행되기전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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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생인 김아무개 할머니는 작년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 등으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상태에 빠졌으며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생명을 유지해왔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런 사망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 있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 2심을 거친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왔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열고 공개변론을 여는 등 심사숙고 끝에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인간의 생명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라는 근원 가치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하여 인격체로서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존엄사를 허용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즉 ▲ 회복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에 대해 진료중단을 허용하되 ▲ 미리 의료인에게 자신의 연명치료 거부 ․ 중단에 관한 의사(사전의료지시)를 밝힌 경우 ▲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경우에는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는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상태에서도 현재까지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의학 ·법학계와 시민단체, 정치권에선 존엄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안락사, 존엄사와 같은 민감한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도 대두되고 있다. 사회적 논의와 입법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중동 광고 불매 유죄...합법적인 언론소비자 운동은 가능한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작년 5, 6월 누리꾼들은 조중동의 보도에 불만을 갖고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전개했다. 그 움직임은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라는 카페로 모아졌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6월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김성균 언소주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을 벌였던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과 민생민주국민회의, 미디어행동, 민언련 등 600여개 시민단체는 6월 8일 오후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에 편중 광고한 광동제약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선포했다. 김성균 언소주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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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소주의 영향력이 커지자 검찰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카페운영진 24명을 기소하였다. 특별한 형태의 소비자운동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셈이다. 결과는 일부 유죄(집행유예 5명, 벌금형 9명, 선고유예 10명).

재판부는 "집단적인 항의전화와 홈페이지 항의의 글을 올리는 방식의 광고중단 압박행위가 사회통념상의 허용한도를 벗어나 피해자(조중동 광고주)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위력에 해당한다"며 업무방해를 인정했다. 언소주의 운동 방식이 대상 업체에 상당한 피해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반면, 재판부는 조중동이 광고중단으로 업무방해를 받았다는 180개 업체 중 13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과 일부 업체의 손해에 대해서는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언론사의 편집정책을 변경시키고자 언론사 불매운동 등을 수단을 동원할 수는 있다"고 전제한 후 "조중동 구독 반대, 광고 게재 반대 등을 위해 광고 리스트를 게재하거나 각종 호소로 설득활동을 벌이는 것은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그러나 광고주들에게 광고게재 중단, 계약 취소 등을 요구하고 집단적인 전화걸기 등을 통해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항의를 집중함으로써 자유로운 결정을 할 기회를 박탈한 것은 위법한 활동"이라고 판단했다.  

즉, 언론소비자운동이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기회"를 주느냐, 마느냐가 합법과 불법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언소주는 2번째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언소주는 지난 6월 조중동에 광고를 편중했다는 이유로 한 제약회사에 대해 불매운동을 전개한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당일 이 회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특정 언론사에 편중하지 않고 동등하게 광고를 집행하겠다"는 내용의 팝업창을 띄우면서 불매운동은 끝이 났다. 

그런데 검찰은 또다시 기소했다. 법원은 "회사쪽에 한겨레・경향 광고를 게재하게 하고 팝업창을 띄우게 한 것은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공갈, 강요죄를 인정, 언소주 대표 김성균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것도 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합법적인 언론소비자운동이 될 수 있을지, 참 어려운 문제다. 

[헌재 1]미디어법 권한쟁의 심판, 아리송한 결정

"헌법재판소(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여당도, 야당도, 시민단체도 이렇게 얘기한다. 헌재의 미디어법 관련 권한쟁의심판 결과를 두고 이렇게 해석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그랬을까.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0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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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미디어법 처리를 강행하자 야당 의원들은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헌재는 다수의 의견으로 "신문법, 방송법 처리과정에서 야당의원들이 법률안 심의ㆍ표결권을 침해하였다"며 절차의 위법성(권한침해)을 인정했다. 하지만 무효확인 청구는 "기각"하였다.

문제는 기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었다. 여당은 "무효가 아니니 당연히 유효"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원점에서 재논의하라는 뜻"이라며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헌재 결정문을 조금 더 보면 답이 나온다. 신문법 처리에 대한 헌재재판관 9명의 의견을 간추려보자.

기각(2명)-권한 침해(절차의 위법)가 아니니 당연히 무효가 아니다.
기각(1명)-권한은 침해되었지만 법안 통과를 무효로 볼 정도는 아니다.
기각(2명)-권한 침해는 맞지만 위헌・위법의 시정은 국회에서 하라.
기각(1명)-헌재는 권한침해만 확인할 뿐 사후 조치는 국회가 할 일이다.
인용(3명)-국회 의결 과정에서 입법권을 침해한 것은 중대한 무효사유다.

정리해보자면, 9명 중 6명은 신문법 통과가 무효(3명)이거나 최소한 국회가 재논의해야 한다(3명)는 견해를 보였다. 야당의 논리가 헌재의 뜻에 훨씬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미디어법의 효력을 둘러싸고 다툼이 끊이지 않는데는 헌재의 애매한 결정 탓이 크다. 일부 재판관(조대현, 송두환)의 표현대로 "국회의원 심의・표결권 침해를 확인하면서도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를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헌재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재2] 야간옥외집회 금지 헌법불합치...야간시위도 심판대에

헌법재판소가 야간에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가운데 9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야간집회금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청구인측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인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야간에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가운데 9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야간집회금지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청구인측 기자간담회'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인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환영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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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지난 9월 헌재는 이 조항(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다시 말해 야간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법조항은 위헌이지만 법 개정 시한인 내년 6월까지는 이 조항을 적용하라는 말이다(위헌인 법을 일정기간 동안 지키라는 논리, 약간 모순이긴 하다). 

헌재는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의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직장인, 학생 등은 사실상 집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도록 하여 헌법상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거나 명목상의 것으로 만든다"고 판시했다. 또한 "집시법은 공공질서가 보호될 수 있는 보완장치를 두고 있으므로 시간대를 광범위하게 제한하지 않더라도 큰 어려움이 없다"며 국회에 법률 개정을 주문했다.  

그런데 헌재의 결정이 나온 후 한나라당은 야간 옥외집회·시위 금지 시간을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변과 사회단체 등은 "헌재 결정을 무시한 채 밤 10시부터 새벽 6시라는 기준점을 삼아 야간집회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또다시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반발하고 있다. 야간집회 전면금지법을 바꾸랬더니 '밤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집회 금지'로 바꾸겠다는 여당의 계획은 타당한 것일까. 

한편, 야간 집회에 이어 야간 시위금지 조항에 대해서도 며칠전 법원이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집회와 마찬가지로 시위도 "일률적이고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의 결정이 주목된다.

[헌재3] 혼빙간 위헌 ...간통죄는 언제까지 갈까

성(性)은 도덕과 법 중 어느 영역에 가까울까.

아무래도 도덕의 영역으로 두는 것이 맞다. 성은 개인의 결정과 가치관에 맡기고 폭력, 강압 등이 개입되었을 때만 법이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남녀가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나 여관으로 향하건, 채팅을 통해 즉석만남을 갖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 물론 그런 행위를 비난하며 혀를 끌끌 찰 수는 있겠지만 그들을 법정에 세우는 건 또다른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헌재의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여성의 판단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니 여성(그것도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만!)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로 만들어진 법조항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게 되었다. 

헌재는 11월 26일 재판관 6명의 의견으로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부분이 성적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을 선고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간통죄다. 간통도 여러 차례 헌재를 들락거렸지만 아직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작년 10월 헌재는 5대 4로 위헌 의견이 다수를 이뤘지만 정족수(6명)에 1명 모자라 존속되었다. 혹시 간통죄가 가정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간통 고소는 이혼을 해야만 가능하니 이미 파탄난 가정을 확인 사살하는 격이다.

한 문장으로 보는 올해의 판결

올해의 판결에서 소개하지 못했으나 올해 주목을 끌었던 판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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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올해의 판결, #용산참사, #삼성, #혼인빙자간음, #미디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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