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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부터 시작된 58일간, 1만2000km의 남부아프리카 일주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때였습니다. 저는 레포츠의 천국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폴스(Victoria Falls, 이하 빅폴로 약함)에 대한 기대로 가슴 설렜습니다.

특히 남아공의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빅폴까지 5572km의 20일간은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구간이었습니다.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Botswana) 그리고 짐바브웨를 가로지르는 이 구간의 모든 것들은 사막과 광야, 강과 계곡을 횡단하고 다양한 부족과 빅5(야생동물 사냥에서 가장 사냥하기 어렵다는 다섯 종류의 대형야생동물인 사자, 코끼리, 표범, 버팔로, 코뿔소를 말함)를 비롯한 온갖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아프리카의 가장 특징적인 자연과 인문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노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호텔이나 롯지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던 다른 구간의 여행과 달리 어둠이 내려 앉기 전에 텐트를 치고 동트는 아침에 텐트를 걷어야 되는 캠핑여행이었기 때문에 제 몸은 온통 모래 먼지로 범벅됐습니다.

저는 빅폴의 잠베지강에서 3개월간 아프리카여행에서 쌓인 모래먼지와 피로 그리고 긴장을 모두 씻어 내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제 남은 모든 체력과 경비를 빅폴 체험에 쏟아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빅토리아 폭포.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 박사가 1855년에 서방인으로는 처음으로 '모시 오아 툰야(천둥소리 나는 연기)'에 발을 딛고 영국의 여왕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이곳에 빅토리아 폭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모시 오아 툰야라는 현지의 이름을 두고 남의 나라의 자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자신 나라의 여왕에게 바치는 이 행위야말로 식민지시대의 폭력적 사고라고 여깁니다.
 빅토리아 폭포. 영국의 탐험가 리빙스턴 박사가 1855년에 서방인으로는 처음으로 '모시 오아 툰야(천둥소리 나는 연기)'에 발을 딛고 영국의 여왕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이곳에 빅토리아 폭포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모시 오아 툰야라는 현지의 이름을 두고 남의 나라의 자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자신 나라의 여왕에게 바치는 이 행위야말로 식민지시대의 폭력적 사고라고 여깁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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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가 곤두박질하는 폭포의 물줄기와 같은 눈높이로 단지 폭포로 부터 60m에 불과한 지점에서 이 거대한 물의 굉음과 마주하는 것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경함할 수 있습니다.
 물줄기가 곤두박질하는 폭포의 물줄기와 같은 눈높이로 단지 폭포로 부터 60m에 불과한 지점에서 이 거대한 물의 굉음과 마주하는 것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경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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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와 잠비아 양쪽에서 빅토리아 폭포와 대면하고 헬기로 하늘에서 조감하며 폭포 아래에서 화이트워트래프팅(White Water Rafting)을 즐기고 폭포 위의 잠베지강에서 선셋 크루즈(Zambezi Sunset Cruise)를 즐기면서 맥주를 마시리라 결심했습니다.

과연 빅토리아 폭포는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량이 잠베지강을 유유히 흐르다가 1.5km의 넓이로 150m의 아래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하는 모습은 인간이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경외스러움을 웅변하고 이었습니다.

이 폭포의 장엄함은 60m 정도의 현무암 협곡의 폭포 맞은편 절벽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스스로가 폭포 물줄기의 일부가 된 듯해서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웠습니다.

빅토리아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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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이 위대한 자연유산을 가진 빅토리아폴스타운 시내 곳곳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무려 100조(One Hundred Trillion Dollars 100,000,000,000,000) 짐바브웨 달러(Z$)를 미화 1달러와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폭포의 입장료가 짐바브웨인 성인이 무려 500조 짐바브웨달러이었습니다. 짐바브웨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료는 미화 20달러. 100조 짐바브웨 달러가 미화 1달러에 팔리고 있었으므로 외국인의 빅폴 입장료는 2천조 짐바브웨달러인 셈입니다.

100조짜리 짐바브웨 달러. 이것이 미화 1달러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100조짜리 짐바브웨 달러. 이것이 미화 1달러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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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짜리 짐바브웨달러를 1달러의 미화로 교환하고 있는 모습
 100조짜리 짐바브웨달러를 1달러의 미화로 교환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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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폭포의 입장료가 짐바브웨인 성인이 500조 짐바브웨달러임을 알리는 표시판
 빅토리아 폭포의 입장료가 짐바브웨인 성인이 500조 짐바브웨달러임을 알리는 표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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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물가상승률이 2억%를 넘는 나라에서 빵 하나와 우유 한 잔을 사기 위해 몇 억 달러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돈은 그 지폐를 찍어내는 종이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치로 하락했고 마침내 돈은 빅폴을 찾는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불행은 순전히 독재정치의 인재(人災)에 의해 비롯된 것입니다. 짐바브웨는 1923년 영국의 자치식민지로 편입된 뒤 1953년 백인들의 구리 자원 착취의 목적으로 결성한 로디지아-니아살랜드연방(Federation of Rhodesia and Nyasaland)이 되었고, 1963년 말의 연방 해체 후에도 영국의 자치 식민지로 계속 남았다가 1980년 4월 로디지아에서 짐바브웨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국호로 독립하게 됩니다.

그 인재의 원흉은 정치인과 정치입니다. 그 중심에 무가베(Robert Gabriel Mugabe) 대통령이 있습니다. 1980년의 독립당시에 총리를 맡아 실권을 장악하고 1987년에 총리제 폐지와 함께 대통령이 된 무가베는 지금까지 30년째 짐바브웨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 독재는 절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세계에 실증해보이고 있습니다. 이 상상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 상황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가베가 2003년 영연방을 탈퇴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영국은 바로 원조를 중단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무가베는 통치자금을 통화를 증발(增發)하는 것으로 손쉽게 극복하고자했습니다.

이 통화의 남발은 결국 통화주권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고 전국민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원칙이 통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현재 남아국의 랜드화가 공용통화로 지정된 상태이지요. UNDP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층이 56%에 달하며 2달러 미만이 국민의 83%에 이릅니다.

외국인을 만나면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둘러싸고 목각품을 강매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는 구걸을 합니다.

택시호객을 하거나 목각작품을 팔거나 구걸하는 젊은이들
 택시호객을 하거나 목각작품을 팔거나 구걸하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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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을 뒤지는 빅토리아폴스타운의 원숭이. 짐바브웨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극빈자들의 현실은 결코 이 원숭이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빅토리아폴스타운의 원숭이. 짐바브웨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극빈자들의 현실은 결코 이 원숭이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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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잠베지강에서 래프팅을 끝내고 협곡을 올라오는 중에 래프팅 장비를 지고 나르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주로 고무보트를 협곡 아래로 지고 내려가고 다시 메고 올라오는 중노동의 짐꾼이지요. 라이프 재킷과 패들(노)은 참가자가 가지고 올라오게 됩니다. 저는 발 굽의 피부가 벗겨져서 신발을 온전히 싣고 못하고 어렵게 가파른 협곡의 사면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제 불편한 발걸음을 본 순간 몇 개의 구명의를 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저의 패들을 날라주겠다고 받아들었습니다. 긴 오르막을 그와 대화하면서 덜 힘들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그는 자꾸 신발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얼마면 살 수 있으며, 얼마 동안이나 신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끝까지 그의 의도를 눈치채지 못한 제게 목적지에 패들을 놓으면서 발했습니다.

"그 신발을 제게 벗어줄 수 없나요. 저는 신발이 없어요."

그는 맨발로 그 계곡을 하루에도 몇 차례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분의 신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지만 이 힘든 하루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신발하나를 사서 신을 수 없을 만큼의 빈곤으로 국민들을 몰아넣은 이 나라의 정치와 서구 열강의 착취가 슬펐습니다.

이미 3개월 가까이 아프리카의 여행자로 살아온  저의 신발은 거의 낡아서 버려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잠베지강의 포터는 제 신발이 가장 탐나는 물건이었던것 같습니다.
▲ 맨발의 포터 이미 3개월 가까이 아프리카의 여행자로 살아온 저의 신발은 거의 낡아서 버려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잠베지강의 포터는 제 신발이 가장 탐나는 물건이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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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강의 포터
 잠베지강의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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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맨발의 포터는 잠베지강의 협곡을 오르내리며 고무보터나 카약kayak을 나릅니다.
 이 맨발의 포터는 잠베지강의 협곡을 오르내리며 고무보터나 카약kayak을 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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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무보터를 협곡아래로 내리고 올리는 일은 맨발의 포터 몫입니다.
▲ 잠베지강에서의 래프팅 이 고무보터를 협곡아래로 내리고 올리는 일은 맨발의 포터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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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숙소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싣던 헤진 신발을 큰 사자목각과 바꾼 여행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목각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갔을 때 수십만 원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선 여전히 착취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빅토리아폴스타운 재래시장의 신발수선공. 이미 버려진 신발을 재활용하기위해 이 가게에 가득 모아두었습니다.
 빅토리아폴스타운 재래시장의 신발수선공. 이미 버려진 신발을 재활용하기위해 이 가게에 가득 모아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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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의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총길이 500km가 넘는 거대한 암맥, 그레이트다이크(Great Dyke) 주변에는 플래티늄과 황금, 크롬과 니켈 등 상업성이 높이 평가되는 광물만도 수십 종이 매장되어있습니다.

서방의 각국은 지금 경쟁적으로 짐바브웨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시선은 포터의 맨발이 아니라 이 광물들을 향하고 있지요. 이 자원들은 결국 잘사는 서방을 더욱 잘살게 하는데만 사용될 것입니다. 정치인의 사리사욕과 실정, 서방의 흑심이 계속되는 한 짐바브웨에서 여행자의 낡은 신발을 구걸하는 비극은 쉽게 사라질 수 없을 것입니다.

잠베지강위의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잇는 리빙스턴다리는 도로와 철도가 함께 있습니다. 짐바브웨에서 광물을 가득 싣고 잠비아로 가고 있는 긴 화물열차.
 잠베지강위의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잇는 리빙스턴다리는 도로와 철도가 함께 있습니다. 짐바브웨에서 광물을 가득 싣고 잠비아로 가고 있는 긴 화물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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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스턴다리의 중앙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입니다.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를 향하는 짐바브웨지역의 국경길. 푸른 하늘, 인적 끊긴 도로, 비가 뿌린 젖은 도로를 홀로 걸었습니다.
 리빙스턴다리의 중앙이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입니다.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를 향하는 짐바브웨지역의 국경길. 푸른 하늘, 인적 끊긴 도로, 비가 뿌린 젖은 도로를 홀로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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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빙스턴 다리위의 화물열차 짐바브웨의 광물을 가득 싣고 잠비아로 가고 있는 리빙스턴다리위의 화물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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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과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빅토리아 폭포, #짐바브웨, #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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