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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수상버스는 천천히 움직였다. 따뜻한 햇살 아래 나와 가족 모두 문득문득 졸음이 쏟아졌다. 베니스의 바다 위를 달리던 수상버스가 산 차카리아 교회(Chiesa di san Zaccaria)를 지나면서부터 점차 속력을 낮추기 시작했다.

 

배가 산마르코 광장(San Marco Piazza)에 가까워진 것이다. 산 마르코 광장 입구에는 베니스에 여행 온 모든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노곤했던 낮 시간의 졸음을 물리치고 배에서 내려 수많은 인파 속에 섞였다.

 

기념품 노점의 피노키오 목각인형을 구경하다가 다리를 건너 소운하를 지났다.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입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싼 관람료를 내고 궁전으로 들어섰다. 나와 아내와 딸은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궁전 1층 아치 아래의 의자에 앉아 한동안 다리를 쉬었다. 궁전 답사는 계속 걷기를 반복하는 피곤한 일정이기에 사전에 다리를 쉬게 했다.

 

건물 외부는 온통 백색과 살구빛 대리석의 향연이었다. 대리석에 조각된 문양들은 고풍스럽고 섬세했다. 궁전의 방을 향해 이어진 1층 회랑을 걸었다. 칼로 깎은 듯한 수십 개의 대리석 기둥들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회랑이 둘러싼 1층의 안마당, 내정은 온통 알프스 너머 북쪽에서 전해진 고딕 양식으로 현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고딕 안에 르네상스 양식과 동방의 비잔틴 양식까지 품고 있다. 두칼레 궁의 외관은 이탈리아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원래 궁전 바로 앞의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라서 외관이 궁전이라기보다는 바다 쪽이 막힌 'ㄷ'자 모양의 철옹성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 당시에 정부청사 및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약 천년의 세월 동안 이 총독관저를 거쳐 간 베니스 총독만 해도 120명이나 된다.

 

1층은 아치형 기둥이 늘어선 로지아(loggia)로 이루어져 있고 이 위로 건물의 본체가 올라간 모습이 참으로 특이하다. 기둥 위에는 베니스의 유력 가문만 사용할 수 있다는 클로버 문양이 선명하게 파여 있다. 베니스를 대표하는 이 건축물은 현재 베니스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 베니스 총독들이 궁전 내부로 들어서기 위해 이용했던 계단인 '스칼라 데 지간티(Scala dei Giganti, 거인의 계단)'는 아쉽게도 여행자들이 오르내릴 수 없도록 막혀 있다. 국보급 계단을 보호하기 위해 여행자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15세기 두칼레 궁의 큰 화재 이후 건립된 이 계단이 명성을 얻은 것은 계단을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두 거인의 대리석상 때문이다.

 

계단을 지키는 왼쪽의 거인은 전쟁의 신 마르스(Mars), 오른쪽의 거인은 바다의 신 넵튠(Neptunus)이다. 베니스가 중세에 도시국가로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전쟁'과 '바다'를 통한 힘의 확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조각상들이다. 베니스에서 주로 활약했던 조각가인 자코포 산소비노(Jacopo Sansovino, 1486~1570년)가 조각한 이 강력한 신들은 베니스가 지녔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궁전 내부로 들어서자 황금의 계단인'스칼라 도로(Scala d'Oro)'가 윗 층을 이어주고 있었다. 이 천국의 계단도 자코포 산소비노의 작품인데, 계단 하나에도 건축가의 이름을 남기는 문화가 호감이 갔다.

 

왜 이 계단 이름이 황금의 계단인지는 계단에 올라서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스칼라 도로의 아치형 천장이 온통 번쩍이는 금빛 부조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단의 금빛 조각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화려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황금 계단 아래에서 총독의 취임식이 많이 열렸고 취임식을 마친 총독은 이 계단을 통해 총독의 방으로 갔다. 총독접견실, 재판실, 회의실 등 가는 방마다 여행자들의 감탄이 이어지고 있었고 궁 안 여기저기에는 베니스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가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숨어있었다. 총독을 접견하는 방에는 총독들이 사용하던 고풍스럽고 품위 있는 명품 가구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각 벽면에 걸린 기록화들은 다 보지도 못할 정도로 넘치고 있었다. 명품의 방들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방의 역사를 낱낱이 해부하려던 내가 얼마나 무모했던가를 깨달았다.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궁전 내부는 너무 넓었고 수많은 방 안에는 진귀한 유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두칼레 궁전 하나만 가지고도 베니스의 역사를 서술할 수 있을 정도이니 내가 준비해간 작은 지식은 정말 하찮은 것이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 명작들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방과 방을 이어나갔다.

 

박물관을 둘러볼 때마다의 안타까움이 두칼레 궁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저 유물은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사전 역사공부를 철저히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박물관 유물을 모두 음미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단순한 사실이지만 모든 유물을 백과사전처럼 알고 싶은 바보 같은 욕심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내가 두칼레 궁전에 대한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칼레 궁에서 가장 압권인 곳은 베니스 대평의원회의 방이었던 '살라 델 마조르 콘시글리오(Sala del Maggior Consiglio)'이다. 베니스의 재판을 담당하던 이곳은 대회의실로 이용되기도 했다.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방의 공간은 시원스럽게 트였고 천장도 매우 높았다.

 

각 벽면 중앙에는 베니스의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한 기록화들이 슬라이드 화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록화 위의 천장 아래 벽면에는 두칼레 궁전을 거쳐 갔던 총독 76인의 초상화가 마치 벽지문양같이 연결되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은 온통 금 천지였다. 내가 이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천장은 기부 받은 진짜 금을 온 몸에 붙이며 복원되고 있었다. 나는 금덩어리가 떨어질 듯한 천장 아래 서 있었다.

 

나는 평의회 단상 뒤쪽을 보다가 대형 룸의 한쪽 벽면을 모두 채워버린 대벽화를 만나고야 말았다. 이 벽면은 가로가 24.65m, 세로가 7.45m나 됐다. 이 엄청난 벽면 전체에 거대한 유화가 있었고 어두운 색조의 이 그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야코포 로부스티 틴토레토(Jacopo Robusti Tintoretto, 1518~1594년)가 70세가 넘어 완성한 대작인 '천국(Paradiso)'. 이 유화는 프레스코화를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이다. 그림의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고 하더라도 감동은 그대로 전해진다. 대평의원회의 방 넓은 공간은 텅 비어 있지만 벽면에는 거대한 유화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방에 들어선 여행자들을 엄습하고 있었다.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행자들은 기가 질려버리고 만다.

 

이 대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만 7백 명에 이른다. 어둠 속에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신약·구약성서의 인물 군상들이 순간적인 동작을 하다가 감전된 듯이 멈춰 있었다. 인물군상들은 극적인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 속에서 그림 중앙의 강렬한 빛줄기를 향하고 있었다. 거친 듯하면서도 섬세함이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폭발적인 강렬함이 대평의원회의 방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 화려함은 강력한 해상 도시국가였던 베니스의 힘과 경제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벽면을 온통 천국으로 그리고 천장을 황금으로 도배한 이들. 이들은 무역을 통해서 축적한 부와 영광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평의원회의 방에는 베니스를 다스리던 '도제(Doge)'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도제는 베니스를 다스리던 10 명의 우두머리였다. 이들은 베니스의 명문가가 기록된 '황금의 책(Libro d'Oro)'에 올라있는 약 3백 개의 가문 중에서 뽑힌 귀족들이었다. 검은 제복을 입었던 도제들은 잘 조직된 경찰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유지했다. 이 도제들은 '천국' 앞에서 평결을 내리고 베니스의 주요 현안을 처리했다.

 

나는 무역을 통해 끌어들인 돈으로 '천국'을 만들고 황금의 방을 지은 이들에게 감탄을 해야 하는지 의문에 빠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불세출의 명화들을 모아들이고 금붙이들을 궁의 여기저기에 붙여 놓은 소수귀족들의 강력한 권력에 내가 감탄해야 하는지 말이다. 수백 년 세월이 지나 동양에서 날아온 내가 베니스의 과거 정치사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일까?

 

방은 너무나 화려했다. 천국 앞에 황금 세례가 쏟아지고 있었다. 천장까지 너끈히 바를 수 있는 금을 가지고 베니스를 통치했던 귀족들이 자신들의 사무실에 천국을 그렸다는 사실이 너무 우스웠다. 신이 내린 계급사회에 만족하던 귀족들은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방, 불편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두운 방의 창 밖으로 베니스의 바다를 비추는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탈리아, #베니스, #두칼레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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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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