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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언론에 대한 회유·협박 즉각 중단하라"

"지역신문 지원사 확대 언론난립 부추긴다"

"사이비 언론 척결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

 

세밑 지역 언론계에 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방송에 이어 지역언론 길들이기가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탄식이 잇따라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탄식 속에는 두 부류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우선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당근정책을 경계하는 눈초리가 매섭다. 하도 많은 냉온탕 정책을 경험했던 터라 이제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의도가 짙게 깔렸다. 그런가 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한시법인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의 6년 시한이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암운도 함께 스며드는 형국이다. 게다가 내년엔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정부와 지역언론, 언론사회단체들 간 얽히고설킨 복마전이 정책과 성명, 지면에서 묻어나고 있다. 

 

특히 화려한 레이아웃과 성탄절을 알리는 큼지막한 제목들을 가득 수놓았던 예년과는 달리 올 크리스마스 아침 지역신문들은 침울했다. 약속이나 한 듯 전날인 24일 전국 각 지역 언론단체가 낸 성명을 인용한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정부에 직격탄을 날린 성명을 적절히 활용했다.

 

"지역신문, 포괄·간접 지원" vs. "퇴보 조장마라" 

 

성명과 기사의 근원지가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최근 문광부가 지역신문 발전 지원 대상 언론사를 늘리고 선정기준을 변경하는 안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지발위)에 심의해 달라고 요청한 데서 비롯됐다.

 

문광부가 보낸 문건엔 지역신문 발전 지원 방식을 선별·우선 지원하던 현행 방식을 포괄·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대상 언론사도 우선지원대상사를 선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법적 요건만 충족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성이 높은 이유는 뭘까?

 

더 많은 지역신문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어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먼저 지역 언론단체들이 동시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각 지역에 있는 언론단체들은 24일 '문광부는 지역신문의 퇴보를 조장하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무력화 시도"라며 비난수위를 높였다.

 

성명에서 언론단체들은 "문광부가 지역신문 발전 지원 대상 언론사를 늘리고 선정 기준을 변경하는 안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 심의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문광부가 보낸 문건엔 지역신문 발전 지원 방식을 선별·우선 지원하던 현행 방식을 포괄·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대상 언론사도 우선지원대상사를 선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법적 요건만 충족하면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문광부의 간섭이 지역신문의 발전을 도모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역신문의 퇴보를 불러 올 것"이라고 성토 한 뒤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역신문이 제 역할을 못하는 까닭은 지역신문의 난립과 그에 따른 자생력의 부족"이라고 풀이했다.

 

"오래 전부터 학계는 물론이고 지역 시민사회가 지역신문 난립 구조 청산 없이 지역신문 시장의 정상화가 어렵다고 주장해 온 것 역시 그 때문"이라고 주장한 성명은 "이런 상황에서 문광부의 생각처럼 규제와 기준을 완화해 지원을 받는 지역신문사의 숫자를 크게 늘린다면 지역신문 시장은 난립과 폐해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광부, '독버섯에 거름 주지 않기' 원칙 왜 저버리려 하나?"

 

 

그렇게 되면 '선택과 집중'의 원칙과 '독버섯에 거름 주지 않기'의 원칙이 무너진 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 없는 지역신문 지원은 지역신문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길"이라며 "문광부가 진정으로 지역신문을 살리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의 취지에 역행하는 행동을 멈추어야 할 것"이라고 이들 단체는 충고했다.

 

이날 성명에는 강원민주언론시민연합, 광주민주언론시민연합, 경기민주언론시민연합,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 전북미디어공공성위원회,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다음날 지역 일간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성명을 비중 있게 다뤘다. 주로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온 신문들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에도 지역 언론단체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성명을 냈다.

 

대전충남언론공공성수호연대, 전북미디어공공성위원회, 충북민언련 등 지역 언론시민단체들은 '이명박 정부는 지역 언론에 대한 회유·협박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이명박 대통령과 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가 지역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자리였음이 밝혀졌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한데 모아놓고 세종시, 4대강 등 국정 현안과 관련된 지역 언론의 보도에 대해 '지방보도가 선정적, 감정적'이라며 '언론 본연의 자세는 무엇이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선도할 책임도 있지 않겠냐'며 책임론까지 언급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성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넘어 지역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협박이라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며 "그동안 지역 언론 보도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종시 수정이 국가균형발전을 훼손하고 결국 수도권 집중의 가속화에 따른 지역 공멸을 우려한 지역 민심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 민심에는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익을 위한 언론책임'을 언급한 것은 정부 정책에 반하는 보도는 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 국장을 불러 모아놓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행태는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한 것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관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비판했다.

 

"치졸한 지역언론 장악 시도 본격화" 성명엔 침묵하더니

 

문제는 그러나 또 다른 곳에 있었다. 간담회에 앞서 이날 아침 전국 47곳의 지방 일간지 1면 하단에는 세종시 관련 정부 광고가 일제히 실렸다. 이날 광고는 충청권, 영·호남권 등 세종시 수정 추진과 관련된 지역 민심 이반을 우려한 맞춤형 광고로 제작됐다는 점이 타깃이 됐다.

 

 

이에 대해 지역의 언론단체들은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통해 지역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에 앞서 지역신문들에게는 정부광고라는 선물도 미리 준비했다"면서 "한편에서는 정부 광고로 언론을 달래고, 한편에서는 협박을 통해 지역 언론을 길들이려는 이 같은 행태는 이명박 정부의 치졸한 지역언론 장악 시도가 본격화 됐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침묵하던 지역신문들이 지역신문지원특별법과 관련한 언론단체 성명에는 일제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글자의 크기만 다를 뿐 내용은 대등소이하다. 25일자 제목에서 나란히 읽힌다.   

 

"정부 지역신문발전기금 취지 훼손" -<중도일보>

"지역신문 포괄·간접지원 부작용 우려" -<강원일보>

"지역신문 되레 퇴보·난립 부추겨" 반발 -<전북일보>

"지원사 확대 언론난립 부추긴다" 지적 -<강원도민일보>

"지역신문 지원기준 '나눠먹기' 식은 안된다" -<매일신문>

"문광부, 지역신문 우선지원정책 무력화 기도" -<국제신문>

지발위 기금지원 기준 완화 땐 사이비 신문사 지원 가능성도" - <전남일보>

 

 

이들 신문은 "문광부가 지역신문발전 지원 대상 언론사를 늘리고 선정 기준을 변경하는 안을 심의해 달라고 지발위에 지난 23일 공식 요청했다"며 "이는 이명박 정부가 지역신문 우선지원정책 무력화 기도에 나선 것"으로 방점을 찍었다.

 

문광부안은 지원 대상 일간지를 20여개사에서 40여개사로, 주간지는 40여개에서 70여개로 늘리고 선정 기준을 ABC 부수공사 참여, 조세 완납 등으로 변경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기금 지원을 신청하는 지역신문 전체에 사실상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신문들은 "법과 시행령 등에 명시된 기준을 갖고 우선지원사를 객관으로 엄격하게 선정해 왔다"며 "우선지원사 선정기준을 엄격히 한것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신문사의 난립현상을 막고 건전한 지역언론을 육성하자는 취지"라는 지발위 관계자 말도 인용했다.

 

"지역신문의 난립으로 사이비언론이 양상되는 상황에서 지역 신문시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이 방침이 그대로 실현되면 지역신문업계는 지면의 질이 저하되고 주요 광고주인 '힘 있는 지자체장'에게 예속될 것"이라고 우려한 대목도 대부분 신문들이 빠뜨리지 않았다.

 

"사이비언론, 노무현 정부 때문에 더욱 극심?"

 

이런 와중에 사이비언론이 노무현 정부의 언론 개방정책 이후 더욱 극심해 졌다는 뜬금없는 주장이 등장해 아연케 한다. 문광부 조처와 거의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3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방의 토착 비리와 사이비 언론 척결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

 

검찰도 전담팀을 구성해 관용 없는 처벌을 하겠다고 밝혀 수사가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토착 비리와 사이비 언론으로 인한 폐해가 도를 넘어섰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유야무야돼 왔던 사안이기에 취한 조치라고 하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편에선 우후죽순 양성시키고 다른 한편에선 처벌하겠다는 양단정책이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높다.

 

최근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강행 등으로 뒤숭숭해진 지역민심을 달래고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주도면밀한 당근과 채찍의 혼용정책이라는 비난도 거세다. 각 지역의 언론단체들이 전례 없이 날을 치켜세워 든 이유다.  

 

 

그런데 <매일신문>은 '토착비리·사이비언론 척결은 엄정하고 철저하게'란 제목의 24일자 사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법무부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지방의 토착 비리와 사이비 언론 척결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고 했다"면서 "사이비 언론으로 인한 폐해가 도를 넘어섰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유야무야돼 왔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고 전하면서 과거 정부 탓을 했다.

 

"사이비 언론 경우 노무현 정부의 언론 개방 정책 이후 중소도시 농촌 지역에서의 폐해가 극심해졌다. 인구 4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군의 군청 출입기자만 60명이 넘고, 상당수가 월급 한 푼 받지 않으니 공갈·협박으로 생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10만 명 남짓한 중소도시에 기자 명함을 갖고 다니는 이들만 수백 명이 되다 보니 이들의 횡포는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어리둥절해진다. 갈지자를 걷는 행보는 또 있다. 지난 16일자 일부 지역 일간지 지면에 나타났다. 이날 <부산일보>를 비롯한 몇몇 지역 일간지들은 종편채널 컨소시엄 참여를 기정 사실화 했다. <경인일보> 4면 "풀뿌리 언론 살아야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대표적 예다.

 

종편채널, 중앙지와 컨소시엄으로 진출?

 

기사는 "상당수 지방신문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방신문들의 경영이 호전되고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은 반드시 연장돼야 한다"며 리드를 그럴싸하게 전개해 나갔다. 

 

그런데 다음 단락은 전혀 생뚱맞다. "한국지방신문협회(이하 지신협)는 지방신문들은 자력으로 종편채널 진출이 어려운 만큼 중앙지가 추진하는 종편채널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뒤 준비작업을 거쳐 독자채널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며 15일 이같이 밝혔다"고 전해 눈을 의심하게 했다. 

 

"지역신문지원특별법 반드시 연장돼야"란 지신협 회장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의 <연합뉴스>와의 이날 인터뷰 기사에서 더욱 자세히 의중이 전달됐다.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지방신문들은 자력으로 종편채널 진출이 어려운 만큼 중앙지가 추진하는 종편채널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뒤 준비작업을 거쳐 독자채널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신협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임시총회를 열고 종합편성채널사업 공동참여 협약식을 가졌다. 협약에 참여한 언론사는 <강원일보> <경남신문> <경인일보>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등 9개사다.

 

그러나 이들 지역신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미디어법 처리를 앞두고 올 초부터 지면파업을 이끌면서 '약탈적 판촉행위를 일삼는 <조중동>'이라며 각을 세울 때는 언제고 그들과 손을 잡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는 '풀뿌리 언론'임을 내세워 애향심에 호소하거나 정부의 지원법 연장을 강조하면서도 <조중동>이 추진하는 종편채널에 손잡고 함께 해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임으로써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들은 대부분 정부의 기금지원을 받고 있거나 과거 살벌 했던 '1지역 1신문사' 시절에도 생존했던 신문들 아니던가. 


태그:#지역신문, #문광부, #지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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