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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눈이 오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서울에서 눈 내리는 날 걷고 싶은 길은 어디인가? 시골 마을 풍경 같은 모습을 지닌 곳. 나는 불현듯 북촌이 떠올랐다. 그래 북촌이야, 북촌으로 가자. 나는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들고 지하철을 탔다.

 

안국역에서 내려 가회동 길로 접어드니 헌법재판소가 나온다. 길 양 옆 보도에는 하얀 눈이 그대로 덮여 있다. 헌법재판소의 하얀 건물을 바라보니 뒤뜰에 있는 백송이 보고 싶어진다. 무궁화가 그려진 하얀 건물, 눈을 머금고 있는 소나무가 양편에 서 있는 헌법재판소의 건물이 오늘따라 더욱 존엄스럽게 보인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재판부가 아닌가.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펄럭이는 헌법재판소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하얀 백송이 두 팔로 "V"자를 그리며 푸른 하늘에 힘차게 뻗어 있다.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백송의 자태는 너무나 우아하다. 천연기념물 8호로 지정된 백송은 수령 약 600년, 높이 15미터, 가슴높이 둘레 2미터, 밑동 4.3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송이다. 동쪽으로 5미터, 서쪽 8미터, 남북으로 각각 7미터로 뻗어 내린 가지를 6개의 철 기둥이 받치고 있다.

 

 

재동의 백송은 과거 창덕여자고등학교 자리에 신축한 헌법재판소 뒤뜰 약 3m 높이의 축대에 우뚝 서 있다. 흰 눈으로 둘러싸인 백송이 헌법재판소의 고전적인 흰 청사와 잘 어우러져 더욱 고귀해 보인다. 천연기념물 4호였던 '통의동 백송'이 1990년 7월 돌풍으로 쓰러져 죽은 뒤 이 재동 백송이 한국에서 가장 큰 백송이 되었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중국 서북부가 원산지다. 그러나 원산지인 북경에서도 백송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수종이다. 우리나라에는 600여 년 전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이 들여와 식재를 한 것으로 서울 조계사, 경기도, 고양, 이천, 경남의 밀양, 충북의 보은, 충남의 예산 등지에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백송은 어릴 때에는 연회색이나 나무의 수령이 많아지면서 나무껍질이 벗겨진다. 20년 정도 되면 청갈색이 나타나고, 40년 정도가 되면 청백색의 얼룩점이 나타난다. 수피의 흰색은 납질(蠟質-밀랍의 성질)로서 점점 회백색으로 변해가는 특징이 나타나 백송(白松)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백송의 꽃은 5월에 피며 열매는 다음해 10월경에 길이 약 6cm의 난형(卵形)에 실편(實片)으로 구성된 열매가 열린다.

 

 

헌법재판소 백송은 조선말기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집권과정을 지켜본 나무이다. 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의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정복고를 은밀히 추진할 때, 백송의 밑동이 별나게 희어져 이를 본 흥선대원군은 일의 성사를 확신했다고 한다. 한편 이 백송은 일제 강점이 되던 1910년부터 갑자기 생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하였다가, 광복이 된 1945년 이후부터 서서히 정상 성장을 하여왔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억울함을 백송은 알고서 아예 자라기를 거부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와 서민들 가계에 주름살이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던, 세분의 거목-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의 슬픔과 충격을 더하게 하였으며, 거기에다가 신종플루는 나라 안팎으로 국민의 활동을 더욱 움츠려 들게 하였다.

 

2010년 경인년(庚寅年)은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또 새해는 실로 60년 만에 찾아온, 용맹스러우면서도 신성한 의미를 지닌 백호랑이(白虎)의 해라고 한다. V형으로 죽 뻗어 올라간 백송의 밑동이 오늘따라 더욱 희게 보인다. 물론 하얀 눈에 둘러싸인 탓도 있으리라. 백송의 색깔이 평소보다 더욱 희게 보이면 길조(吉兆)가 온다는데… 새해에는 우리나라에 길조가 올 조짐일까? 백호랑이의 해,  백송 앞에서 새해에는 서로 이해하면서 노력하여 보다 희망찬 한해를 맞이하기를 기원해보자.

 

 

 


태그:#헌법재판소 백송, #재동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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