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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는 울산공장 건물 2층에 있습니다.
▲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현대차 노조는 울산공장 건물 2층에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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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이 나와 대화를 나누려 할까?'

그 분에 대해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분이 참 멋진 분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꼭 한 번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겼지요.

지난해 12월 31일 목요일 낮 12시 50분경, 마침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조 사무실을 지나 사내 은행에 볼 일 보러 갔을 때 그 분이 노조간부 여럿과 함께 사내 식당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노조 사무실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비정규직노조 사무실 앞에 있던 비정규직 노조 간부와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른 노조 간부들은 모두 사무실로 먼저 들어 갔습니다. 두 분이 대화를 끝내고 그 분 혼자 2층에 있는 현자노조 사무실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아까부터 멀찌감치 서서 기회를 엿보던 나는 얼른 그분 곁으로 달려가 말을 걸었습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인데요. 위원장님이 참, 멋진 분 같아서요.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고 '오마이뉴스'에 올리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우연찮게 사내 은행에 다녀오다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그 분을 만나고 그렇게 물어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연말이라 바쁘니 신정 연휴 후에 봅시다."

그분은 신정 연휴 후 언제든 찾아 오라는 짧은 답변을 남긴 후 2층에 있는 현자노조 사무실로 올라 갔습니다. 나는 그 분을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지난 2000년 7월 경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를 통해 들어와 일하게 되면서 원청노조의 흐름을 줄곧 지켜봐 왔습니다. 그 전에야 그 분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출근 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그 분의 평판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현장의 좋지 않은 평판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대차 노조 위원장 출마 때마다 당선하지 못했습니다. 선거 때마다 많게는 일곱 여덟 팀 적게는 너덧 팀씩 위원장 후보군이 출마했고 1차엔 꼭 최다 득표로 경선 투표까지 갔었지만 2차 투표에서 계속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 분에 대한 지지기반은 있는 것 같은데도 위원장으로 당선하는 신뢰표를 얻기까지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이경훈은 영원한 2등이야" 그것이 그 전까지 현장 분위기였습니다. 일선에서 물러난 정치인 중 '박통'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이 생각났습니다. 그에게도 "항상 2등"이란 꼬리표가 정치 평생 따라다녔지요.

지난 2009년 하반기 현대차 노조는 임단투를 진행 중에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위원장이 돌연 사퇴를 해버렸습니다. 현장은 갑자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가까스로 새 집행부를 뽑는 선거에 돌입했고 이번에도 여러 팀이 나왔습니다. 그 분은 이번에도 출마했습니다. '칠전팔기' '황소고집'이라는 이미지로 선거운동을 진행했었습니다. 선거 마지막 날 전단지엔 그 분 자신이 직접 쓴 호소문이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 입사 후 상황과 노조활동 과오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하는 글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노조활동과 모든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더욱 낮은 자세로 노력할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그 글에서 진솔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왠지 느낌이 좋더니 2차 투표 결과 그 분이 당선하였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오랜 기간 그 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분의 인내심과 꺾이지 않는 노동철학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오늘 소개할 그분이 바로 칠전팔기, 황소고집으로 일곱 번 출마해 지난해 9월 뽑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입니다.

어려움 수습하고 노조 위상 바로 세우려 출마 결심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시간내 주셔서 고맙기만 합니다. 2010년도 지혜롭게 잘 노사관계 풀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도 많이 신경 써 주시면 고맙겠어요.
▲ 듬직한 이경훈 현자노조 지부장님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시간내 주셔서 고맙기만 합니다. 2010년도 지혜롭게 잘 노사관계 풀어 가시면 좋겠습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도 많이 신경 써 주시면 고맙겠어요.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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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야간조라 4일 저녁 9시에 출근하여 현자노조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더군요. 제 소개를 하고 오늘 아침 퇴근하면서 이경훈 지부장님을 뵙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8시에 마치면 20분까지 노조 사무실로 오라고 합니다. 5일 아침 8시 근무를 마치고 시간 맞춰 노조 사무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다른 노조간부와 이경훈 신임 지부장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 바쁘신데 시간 내어 주셔 고맙습니다. 이번에 신임 지부장으로 당선하자마자 큰 일을 치르셨는데요.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전 집행부의 중도사퇴로 조합원에게 혼란과 피해를 안겨준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어려움을 빨리 수습하고 노조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싶어 현장 조직의 결의를 모아 출마를 결심했지요.

지난해 9월 29일 당선 확정 후 상임집행부 인선을 하고 곧바로 인수인계 작업을 마친 후 대의원 선거, 교섭 재개, 임시 대의원대회, 예산확보를 위한 정기대의원대회 등을 거쳐 다시 교섭을 시작했지요.

당선후 3개월 간 촉박한 일정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당선 후 가장 중요한 과제가 전체 조합원을 위한 2009년 임단협 마무리였습니다. 어느 사업장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도록 정규, 비정규직 모두에게 최고 성과를 도출해 내는 게 최고 고민이었지요. 그런 고민 속에 일을 추진했고 그런 집행부의 진심을 알았는지 조합원이 동의(약 62% 가결)를 해주셔서 2009년 임단협을 잘 마무리 지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욱 낮은 자세로 실리와 투쟁을 병행해서 노조를 운영해 내면 조합원에게 노조에 대한 탄탄한 신뢰가 쌓이지 않을까 싶네요"

- 현대차 울산공장엔 언제 들어왔고 언제부터 노조활동에 관심을 가졌나요?
"1986년 6월 경 입사하여 엔진 조립라인에서 일해 왔지요. 그러다 1987년 7월 민주화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현대차 노조도 설립되었어요. 그로 인해 노조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노조활동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따로 없구요. 평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주야간 생산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에 관심이 많이 생기더군요. 예를 들어 그땐 샤워 시설도 마땅찮았어요. 이틀에 한번 꼴로 철야를 해댔구요. 오늘 아침 8시까지 출근하면 밤새 일하고 다음날 저녁 8시나 9시 되어서야 퇴근 했으니까요.

우리가 얼마나 혹사당해 왔겠어요. 두발도 통제되었지요. 회사 간부가 '바리깡' 들고 서 있다가 눈에 거슬리는 머리 보면 바로 밀어 버렸어요. 그때 시급이 650원이니 또 얼마나 낮았어요. 저시급에 장시간 노동에, 현장에서 일하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 개선시켜보자고 노조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온 거죠. 1대 조직쟁의부장을 역임하고 이후 현장에 복귀하여 현장대표와 대의원 활동을 지속했지요. 그러다 다시 5대 집행부 땐 수석부위원장도 했구요. 그러다 이번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3대 지부장에 당선하게 된 것입니다"

현자노조 3대 집행부 5대 정책을 현수막으로 크게 노조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 3대 집행부 정책 현자노조 3대 집행부 5대 정책을 현수막으로 크게 노조 벽에 붙여 두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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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차례 후보로 나오신 걸로 아는데요. 그 힘든 날을 어떻게 이겨내셨고, 결과 발표 후 심정은요.
"난 이제껏 현장을 떠나 본 적이 없어요. 노조는 현장에 머무르면서 중심에 두어야 해요. 그래야 현장 조합원과 소통이 제대로 됩니다. 노동의 건강함은 노조의 초석이 되지요. 현장에서 노동은 활동가들의 본분이라 여깁니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 현장 동료 동의 얻지 못하고 과연 노조가 존재하는가, 라는. 나는 어렵고 힘들 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다시 용기를 얻고 마음을 다스렸어요"

- 인고의 세월을 거쳐 이번에야 지부장으로 당선하셨어요. 남은 기간 어떤 각오로 집행부를 운영해 나가시려 합니까?
"지금 24개월 기간 중 21개월 남았어요. 투쟁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의 실리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지요. 그런 만큼 노사관계에서는 대등한 관계와 균등한 분배에 목표를 두고 더욱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 할 각오입니다."

- 2010년 노동관계법에 의해 노동계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데 지부장님은 어떤 대응책을 생각하시는지요?
"중요한 두 가지가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입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노조활동에 있어 정부가 간섭해선 안됩니다. 노사간 자율로 해결하는 원칙이 지켜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라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나 차별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예정이신지요?
"작년엔 최소한의 단체협약과 성과분배에서 소정의 성과를 도출하는데 역할을 다했다고 보입니다. 집행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제가 비정규직 노동자 임에도 진솔하게 대화에 응해 주셨습니다.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 대화후 이경훈 지부장님과 함께 제가 비정규직 노동자 임에도 진솔하게 대화에 응해 주셨습니다.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 김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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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마치고

국내서 가장 큰 규모 노조라면 당연히 현대자동차 노조를 꼽을 것입니다. 그만큼 국내 언론은 물론 세계 언론에서도 현대차 노조의 향방에 관심도가 높은 게 사실입니다.

세계 경제 흐름이 숨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시급제로 살아가는 노동자는 무엇보다 기본급 인상이 관건일 것입니다. 이번에 호봉 승급분 외에 기본급은 동결했습니다. 반면 성과금을 조금 더 높혀 작년 임단협을 타결했습니다.

강성 일변도에서 대등한 노사관계와 균등한 분배를 주장하며 나선 이경훈 집행부가 탄생했습니다.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어떤 지혜를 짜내어 대등한 노사관계와 균등한 분배를 실현할까요? 그리고 사내외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문제는 또 어떻게 풀어 갈까요? 관심있게 지켜 볼 일입니다.

[못다한 얘기] "다시는 언론사와 인터뷰 안하려 했는데..."
대화 중에도 계속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갔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제게 시간을 내주신 현자노조 이경훈 지부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결혼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니 짧게 답했습니다.

"1988년 결혼했고 1남 1녀 둘 다 대학 재학 중"이라고만...

속 깊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시간관계상 더 들을 수 없었던 게 아쉬웠습니다. 모쪼록 행복한 가정 지키시구요. 지혜로운 집행으로 21개월 잘 마무리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전태일 열사 이후 현대사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겸손하며 조합원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두루 존경받는 그런 멋진 노조활동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데 제 뒷전에서 한 말이 귀에 쟁쟁하네요.

"다시는 언론사와 인터뷰 안하려 했는데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오마이뉴스 기자라 하니 응해 준 거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대화 후에도 듬직허니 참 믿음이 가는 분으로 남아 있네요.


태그:#현자노조, #금속노조, #이경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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