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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본 '이반'과 '일반'이 한 집에 살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네이버 '만화' 웹툰 코너에서 연재되는 <어서오세요, 305호에(이하 305호)>에선 실제 이런 상황이 일어난다.

<305호>는 네티즌 독자 평점 9.8에 현재 팬카페가 운영 중이고, 라디오 드라마도 만들어져 연재될 만큼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웹툰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국내 웹툰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물론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만화, 영화, 문학 작품 등은 적지 않았다. 과거 소수 마니아층 중심으로 퍼진 팬픽, 야오이 등 장르가 점차 일반인에게 알려져 최근에는 공중파 TV나 영화에서도 이들 '코드'가 들어간 장면들이 종종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이들 장르들은 성소수자들을 대상화해 타자인 일반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많으며, 소재도 주로 그들의 성이나 연애에 집중돼 있다. 실제 성소수자들은 연애만 하고 살지 않으며, 그들도 일반 사회의 일원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면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 매체가 다루는 성소수자는 지극히 한정된 부분이다.

<305호>가 이들과 다른 점은 실제 성소수자와 일반인이 함께 부딪치며 살아가는 '생활'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한 장면.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한 장면.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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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심각'하지 않다

<305호> 주인공인 '김정현'은 20살 대학생으로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또래 다른 친구들처럼 '게이'를 '변태' 내지는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가까이 오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는 선배 권유로 '305호'에 입주한다. 룸메이트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김호모'. 본명이다. 어릴 때부터 머리숱이 없어 '護毛(보호할 호, 털 모)'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설정이나 그는 실제로 '게이(남성 동성애자)'다.

<305호>는 '김호모'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그린다.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호모포비아'인 척 살아온 여성 동성애자 '오윤아', 남과 다른 성 정체성으로 방황하다 결국 다른 삶을 선택한 트랜스젠더 '정지훈(본명 정나미)'도 나온다. 그리고 이들 성소수자들을 만나며 고민과 갈등을 겪고 변화하는 '일반인' 친구들이 있다.

'김호모'라는 짓궂은 네이밍에서부터 느껴지듯 이 만화는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것 치고 '심각하지' 않다. '호모'와 주변인들은 자못 심각하게 인권을 부르짖거나, 혹은 '편견없이 봐 달라'며 독자를 계몽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찌 보면 성소수자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여길 만한 표현들도 종종 나온다. 성소수자 룸메이트와 같이 산다는 정현의 소문이 돌자 수군거리는 그의 동기들("이상한 냄새 안 나냐?", "나라면 주먹부터 나갈지도"-14화)의 거침없는 포비아적 발언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주인공인 정현조차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적 발언들("그런 식으로 말하면 정신병자나 변태들도 나한테 뭔 짓 하진 않죠"-왜 자신을 싫어하냐는 호모의 말에 정현의 대답. 16화)을 내뱉는다.

하지만 이 대사들은 동성애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 말들은 우리가 평소 빈번히 말하고, 듣는 일상적인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그만큼 무감각할 뿐이다.

<305호>의 작가 '와난'은 특별호에서 원래 <305호>는 발랄한 캠퍼스 라이프를 주제로 하려 했으나, 성소수자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밝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작품 의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되도록 '빨리'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이라며 "퀴어(성소수자)든, 일반인이든 사람들의 입장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퀴어는 다 이렇다'거나 '일반인은 다 이렇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이라고 했다.

<어서오세요, 305호에>가 연재되고 있다.
 <어서오세요, 305호에>가 연재되고 있다.

난 그들을 인정해, 하지만 내 옆엔 안 왔으면

근래 들어 남성 동성애자인 연예인 홍석천, 트랜스젠더 하리수, 모델 최한빛 등 성소수자들이 대중 앞에 나서 당당하게 자기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경우가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보통'의 성소수자들은 자기 정체성을 가족이나 친구 등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쉬이 터놓지 못한다. 이들에 대한 몰이해한 시선이 아직도 너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삶을 인정해야 한다는 일반인들의 인식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일반인들은 '그들'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내 옆에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적어도 인정이라도 하는 스스로를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주변에 동성애자가 있다고 하면 그들에게 '성범죄'를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동성에 의한 성범죄보다 이성간의 성범죄 발생률이 몇 배는 많다. 전체적으로 이성애자 수가 더 많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성적으로 불건전한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만 해도 동성애는 '성도착자'의 일종으로 분류돼 정신병 취급을 받았다. 지금도 종교적 율법이 엄격한 일부 국가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여겨 처형되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는 그나마 이러한 단계보다는 다소 개방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넘지 못한 '편견의 벽'이 두텁게 쌓여 있다.

'김호모'와 '오윤아', 그리고 '일반인'속에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위장하며' 살아야만 하는 많은 성소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예쁜'동성애자들이 나와 연애하는 만화나 영화의 모습처럼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다. <305호>의 '심각하지 않은' 그들처럼 성'다수'자, 소수자 구별 없이 자연스레 어울리며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소리높여 외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남자(여자)친구 있어요?"가 아닌 "애인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작은 배려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태그:#웹툰, #와난, #동성애, #퀴어,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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