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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포에서 1시간 30분을 쉬지 않고 달려 용눈이오름 입구에 도착했다. 산록도로와 중산간도로를 오는 동안 내내 빨강 애마 앞뒤로 차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풍경을 바라보기 좋은 속도로 내내 용눈이오름까지 올수 있었다. 정말 행복한 드라이브였다.

 

용눈이오름은 용이 누워 있는 모양을 닮았다고도 하고, 오름 한분화구가 패어 있는 분화구가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도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분화구의 모습이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나 비상할 방법이 없어 확인한 바는 없다. 한자로는 용와악(龍臥岳)이라고 표기하는 용눈이오름, 난 제주의 오름 중에서 용눈이오름을 가장 좋아한다.

 

 

일몰의 시간이 여유만 있으면 다랑쉬오름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하루의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랑쉬오름에 오르면 이미 어둠이 내릴 것이다. 용눈이오름을 오르는 길, 자꾸만 입에서는 박상민의 '멀어져간 사람아'의 후렴구가 맴돌았다.

 

'내게 사랑한다는 말하고 멀어져간 사람아 /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 그대여 / 내게 안녕이란 말하고 멀어져간 사람아 / 그대여 나만 홀로 외로이 서 있네 / 머나먼 저 바다로 가면 찾을 수 있나 / 머나먼 저 하늘위에는 있지않을까.....'

 

그러나 이 노래는 용눈이오름 너머 성산읍 삼달리쪽에 자리잡은 풍력발전기를 보는 순간 그쳤다. 저게 언제 생겼을까? 지난 해 봄에 왔을 때만 해도 못 본 것 같은데, 일 년 사이에 생겼는가보다.

 

 

다랑쉬오름 앞에도 무슨 온천인가 개발된다고 하더니만 10년 이상 방치되어 있었고, 오늘 길에 보니 공사장을 가로막은 철판이 녹이 슬어 을씨년스러웠다. 개발꾼들이 농락이라고만 하기에는 행장관청에서 허가를 해주었을 것이니 녹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풍력발전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입지를 선정함에 있어 산림훼손과 주변경관들을 고려하며 세워져야 할 터인데, 부드러운 선의 섬 제주 그것도 오름이 올망졸망 모여 제주의 선을 한껏 드러내는 그곳에 세워졌다는 것이 이해되질 않았다.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대략 11기 정도가 되는 것 같았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보던 모구리오름과 주변 오름은 거대한 풍력발전기로 인해 그 멋을 잃어버렸다. 내가 제주에 있을 때에도 행원에는 풍력단지가 있었지만 해안에 있어 그다지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듯 보였었는데, 중산간 오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제주의 풍광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괴물 그 자체였다.

 

발전기에서 전력을 보내려면 송전탑과 변전소도 생겨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난개발이라면 제주도의 아름다움은 이내 사라져버릴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바람에 '부웅부웅'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멋대가리 없게 날개부분에 빨간 페인트칠을 한 모양이라니, 미적인 감각이라고는 그야말로 꽝이다.

 

눈을 돌려 성산일출봉을 바라본다. 그곳은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우도까지 한 눈에 들어오고, 종달리를 감싸고 있는 지미봉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소를 닮은 섬, 우도를 바라본다. 저녁 약속만 없다면 저기 저 우도에 들어가 하룻밤 머물고 내일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람이 제법 세다. 일몰의 시간이 가까워오자 용눈이오름에는 나 홀로 서있다. 황홀한 일몰은 아닐 것 같다. 아직도 해는 한라산 백록담에 몸을 기대지 않았고, 정면으로 바라보기엔 눈이 부시다. 붉은 빛이 조금씩 돌기 시작하지만 구름도 많지 않아 그저 밋밋한 일몰을 볼 것 같다. 그러나 그 밋밋한 일몰도 도시에서 바라보던 일몰에 비하면 참으로 장엄한 일몰일 것이다.

 

잠시 바람을 피해 분화구 쪽으로 앉았다. 그러자 그곳엔 바람이 그냥 지나가버리는지 따스하다. 개민들레 싹들이 지천에 로제트형으로 깔렸다. 물매화, 향유, 자주쓴풀, 엉겅퀴, 활나물 등등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꽃들이 피었던 그곳, 어느 가을에는 보라색 꽃향유와 물매화가 어우러져 보랏빛 들판에 하얀 눈이 내린듯 하기도 했었데 이젠 개민들레의 노란빛으로 물들여질 것이다.

 

개민들레도 괴물처럼 보였다. 모두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괴물들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풍력발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가장 아름다운 오름이라고 늘 용눈이오름을 소개하곤 했는데 이젠 그 일도 그만 두어야 할 것 같다.

 

(이어집니다.)


태그:#제주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풍력발전, #삼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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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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