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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청계산 정상에 표지석과 함께 우뚝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
 양평 청계산 정상에 표지석과 함께 우뚝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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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으면 더 웅크리게 돼요. 이렇게 나오면 처음엔 조금 춥지만 산에 오르면 추운 줄도 몰라요."

"새해 들어 이달엔 단 하루만 빼고 날마다 이 청계산에 올랐어요. 육산인데다 경사도 완만해서 노인들에게 아주 좋은 산이지요."

지난 1월 19일, 아직 눈이 수북한 산길에서 만난 김필동(70) 노인과 동행한 또 다른 노인의 말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산다는 이들 노인들은 일행이 10여명이나 되었다. 대부분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 노인들은 조심조심 산길을 오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노인들은 전에는 전철 중앙선 팔당역에서 오르는 예봉산과 운길산역에서 오르는 운길산을 주로 올랐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전철이 용문역까지 개통된 후로 양평군 국수역에서 곧바로 오를 수 있는 청계산을 많이 오른다는 것이었다.

오랜 공사 끝에 서울에서부터 뻗어나가는 전철이 점차 개통됨에 따라 노인들의 활동과 산행 거리가 그만큼 넓어진 셈이었다. 지난해 12월에 전철이 용문역까지 개통되었는데 용문산 등산은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안 한다고 한다. 용문역에서 용문산으로 가는 교통편이 아직 마땅치 않은데다 용문산은 높은 산이어서 노인들에게 적당치 않다는 것이 이들 노인들의 말이었다.

실제로 화요일인 이날 용문으로 가는 중앙선 전철은 손님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편이었다. 평일의 한가한 시간대인데도 불구하고 왕십리역에서 승차할 때는 열차 안이 비좁을 정도로 승객들이 많았다. 그러나 덕소와 양수를 지나자 일반 승객들은 거의 내리고 차에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등산복 차림의 노인들과 주부들이었다.

신촌 마을 뒤 소나무들과 비닐하우스, 전에는 채소를 재배했을 것 같은 비닐하우스는 전철 개통에 따른 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음식점으로 바꿔 사용되고 있었다.
 신촌 마을 뒤 소나무들과 비닐하우스, 전에는 채소를 재배했을 것 같은 비닐하우스는 전철 개통에 따른 많은 등산객들로 인해 음식점으로 바꿔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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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고춧대가 남아 있는 새하얀 눈밭
 마른 고춧대가 남아 있는 새하얀 눈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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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이 거의 대부분 쏟아져 내린 곳이 바로 이곳 국수역이었다. 우리 일행들은 이날 예봉산 등산을 작정하고 전철을 탔었다. 그런데 옆자리의 노인들이 모두 청계산에 간다는 말을 듣고 우리들도 청계산으로 목적지를 바꾼 것이다.

예봉산은 그동안 몇 번이나 오른 산이었지만 이곳 양평 청계산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철에서 내리자 국수역 대합실은 노인등산객들로 와글와글했다. 밖으로 나서자 왼편 큰길 인도를 따라 10여명의 등산복차림을 한 노인들이 앞장서 걸어간다, 우리들도 그들을 뒤따랐다.

큰 도로를 벗어나 역시 왼편지하도를 지나자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신촌 마을이었다. 이 마을 입구에선 청계산 등산로가 두 갈래 길이었는데 왼편길이 제1코스였고 오른편으로 올라 정자동을 지나는 코스가 제2코스였다.

우리들은 제1코스를 택했다. 신촌 마을 안길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마을 뒷동산에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 몇 그루가 푸르고 청청한 모습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서있다. 전에는 채소를 재배했음직한 비닐하우스는 음식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철역 개통으로 등산객들이 몰려들어 음식점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마을을 지나 산자락 안으로 들어서자 트럭으로 싣고 온 등산용품을 파는 이동식 가게와 화장실이 나타난다. 오른편 산자락은 하얀 눈이 뒤덮인 공동묘지였다. 등산용품을 파는 사람에게 물으니 평일에는 노인들과 주부들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엔 젊은 등산객들도 많다고 한다.

골짜기 길은 아직도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일행들은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했다. 아이젠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거나 깜박 잊고 가져 오지 못한 사람들이 이동식 가게에서 아이젠을 구입하는 모습도 보인다. 날씨가 포근하여 눈이 녹는 미끄러운 등산길에서는 아이젠이 필수품이다.

거북샘에서 목을 축이는 등산객들
 거북샘에서 목을 축이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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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눈밭의 동물 발자국
 산길 눈밭의 동물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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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래쪽 마른 고춧대가 서있는 비스듬히 경사진 눈밭은 밭고랑 윤곽이 그린 듯 선명하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선으로 미끄러지듯 얕은 높낮이로 층층이 흘러내리다가 검은 숲으로 이어진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산허리를 돌아서 조금 올라가자 거북 모양의 샘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거북샘 약수터였다. 바가지에 물을 받아 한 모금씩 목을 축이고 다시 걸었다. 그늘진 산자락은 눈이 녹지 않아 수북이 쌓여 있는 모습이 소담스럽다.

등산로 옆 눈 위에는 동물이 지나간 발자국이 선명하다, 눈이 깊어 굶주린 동물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산으로 돌아간 발자국일 것이다. 능선길을 한참 오르자 작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해발 507,6m 형제봉이다.

형제봉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남쪽 북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각각 만들어져 있었다. 형제봉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아스라이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두물머리가 바라보인다. 강물은 얼어붙어 온통 새하얀 모습이었다. 표지석이 서있는 소나무 아래와 전망대 부근엔 노인들 몇이 둘러서서 쉬고 있었다.

형제봉에 오른 노인등산객들
 형제봉에 오른 노인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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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금엉금 미끄러운 눈길
 엉금엉금 미끄러운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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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매우 포근했지만 북풍받이 봉우리와 능선길엔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금방 옷깃을 여미게 한다. 형제봉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나눠먹고 정상을 향했다. 청계산 정상은 능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능선 끝에 바라보이는 정상봉우리엔 잣나무인지 소나무인지 구별이 안 되는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형제봉에서 정상으로 가는 내리막 능선길은 내려 쪼이는 포근한 햇볕에 눈이 녹아 미끄러웠다. 노인들이 미끄러운 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엉금엉금 주춤주춤 걷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다행히 넘어지는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0여분 만에 청계산 정상에 올랐다.

둥그런 공터 한쪽엔 멀리서도 바라보였던 곧게 자란 제법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해발 658m 정상 표지석 뒤에 서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한없이 넓고 시원하다. 북쪽으로는 하얀 눈이 흘러내린 듯 선명한 유명산과 그 오른 쪽의 거대한 용문산, 그리고 용문산 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다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백운봉이 눈부시다.

청계산에서 바라본 왼쪽의 유명산과 웅장한 용문산, 그리고 뾰족한 모습의 백운봉
 청계산에서 바라본 왼쪽의 유명산과 웅장한 용문산, 그리고 뾰족한 모습의 백운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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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울창한 능선길 주변
 숲이 울창한 능선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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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탁 트인 전망에 취해 있다가 하산길로 나섰다, 올라간 길로 내려오는 원점회귀가 싫어 반대편 능선으로 조금 내려가자 맞은편에서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그쪽 길은 험하다며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라고 권한다. 그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다시 정상을 거쳐 형제봉을 향해 내리막 능선길을 걷다가 햇볕 좋은 능선길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침 주변에서 점심을 먹던 노인들 몇이 술을 권한다, 우리들이 사양하자 청계산은 육산이어서 위험하지 않으니 한 잔만 하라고 다시 권한다. 노인들의 호의를 뿌리칠 수 없어 일행들 둘이 한 잔씩 마시자 노인들이 좋아한다. 노인들은 이 청계산이 급한 오르막도 없는 편이고 바위가 없는 흙산길이어서 아주 좋다고 한다.

이 노인들도 전에는 서울 주변의 산들과 중앙선 팔당역 근처의 예봉산을 많이 올랐는데 지난 연말 전철이 용문까지 개통된 이후에는 청계산을 주로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 노인들도 용문으로 가는 전철과 산행 초입에서 만난 노인들과 같은 생각과 등산을 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팔당호
 얼어붙은 팔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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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과 헤어져 국수역으로 내려오는 능선길 주변에는 잡목이 우거져 여름철에는 나무그늘이 매우 좋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국수역 대합실에 들어서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노인들로 가득하다. 공사가 끝나 서울에서 점점 멀리까지 개통되는 전철을 따라 노인들이 찾는 산도 그만큼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팔당호는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채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었다. 호수가 얼어붙기 전 갈대밭과 물가에서 꽥꽥거리던 그 많던 철새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가 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을까?


태그:#청계산, #국수역, #노인등산객, #이승철, #전철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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