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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KBS 드라마 <공부의 신> 4회 끝부분에 방송되었던 내용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했다. <공부의 신>은 매회 마지막 부분에서 '공부의 기술'을 정리해 설명해주는데, 내용자문을 하고 있는 모 대형학원의 명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선별하고 정리하는 내용들답게 유익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고 있어 학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 중 4회에 방송된 내용은 '수학은 구구단이다'라는 것이었다. 정리해보자면, '수능 수리영역에서 응용력과 이해력이 필요한 문항은 20%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기본공식만 암기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암기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다보면 무의식중에 답이 튀어나오게 되는 구구단처럼 문제를 본능적으로 풀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공부의 신> 4화(1월 12일 방영분)가 알려준 공부의 비법은, '수학은 구구단이다'였다.
▲ 수학은 구구단이다 <공부의 신> 4화(1월 12일 방영분)가 알려준 공부의 비법은, '수학은 구구단이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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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에 출제된 문항들에 대해 오랜 세월동안 깊이 있게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한 실질적인 조언이었고, 그만큼 현실적인 쓰임새가 있는 이야기임에 분명했다. 학생들에게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할 만한, 유익하고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뒤로 내내 머리 속이 복잡해진 까닭은, 수학교육의 본질적인 목적이 과연 '암기를 통한 문제풀이'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수학은 암기과목이다?

'수학은 암기다'라는 이야기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특히 학력고사 시절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중고등학생 시절 새 학기 첫 수업 시간에 다짜고짜 칠판에 '수학은 암기과목이다'라는 선언을 적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수학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지 않을 것이다.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나 '4당5락 - 하루에 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같은 말도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쓰이는 것들이었다. 복잡하게 머리 쓰려고 하지 말고, 우직하고 성실하게 임하라는 충고. 심지어 수학마저도 성실하게만 외워버리면 해결이 되는 것이니 다른 과목이야 어떻겠느냐는 가르침.

하지만 대학입학시험을 통과한 뒤로는 마트에서 대형포장과 낱개포장 중 어느 것이 어느 만큼 싼지를 따지거나 연봉 인상률에 따른 임금의 인상분이 얼마나 될지, 혹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살 경우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얼마나 되어야 이득을 볼 수 있을 지를 따지는 데 필요한 '가감승제' 이상의 수학지식을 도대체 왜 배워야 했는지, 누구나 궁금해지는 때가 오게 된다. 그래서 동갑내기들끼리 '어차피 시험을 위해 청춘을 허비한 셈인데, 그럴 바엔 차라리 확실한 커닝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나았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드라마 <공부의 신> 홈페이지 메인화면
 드라마 <공부의 신> 홈페이지 메인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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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고교졸업자들에게 그렇게 별 쓸 데 없는 기술로 여겨질 뿐인 수학이 이미 수십 년째 학교교육과정의 '빅3'로 군림해온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일이다. 수학이란 자본주의사회의 일상을 지배하는 '계산'을 위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도구이며 생각하고 추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논리학'이기 때문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수학교육의 목적이 '추상적 사고에 친숙해지게 하며, 추상적인 것을 어떻게 구체적인 사실에 적용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데' 있다고 했다.(화이트헤드, <교육의 목적>, 궁리) 숫자란 현실의 다양한 양상들을 단순화하고 추상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기호이며, 그 기호놀음을 통해 공리로부터 연역적으로 혹은 귀납적으로 추리해가며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식을 얻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가는 능력을 얻도록 하는 것이 수학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수학은 철학이며, 논리학이다

실제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고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를 추론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예컨대 '급격이 출산율이 저하되고 있어 국가적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대로 된 수학교육을 통해 논리적 사고를 기른 이라면 '출산율이 저하된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고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분석과 추론을 통해 '사교육비를 비롯한 자녀양육비 부담의 과중함'이라든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여성들이 감수해야만 하는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 같은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성실하게 암기해서 빨리 푸는 기술'로서의 수학교육밖에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원인과 결과에 관한 논리적 사고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국가정책을 담당하게 된다면 '출산장려금 지급'이나 '다자녀가정에 대한 국립공원 할인혜택' 같은 우직한 대책들 외에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수학은 암기과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은 수학 선생님들의 지론이다.
▲ 외우고 또 외우고 ... '수학은 암기과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은 수학 선생님들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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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수학교육의 핵심은 '공식의 암기'보다는 '공식이 성립하는 과정과 이유의 이해'에 있어야 하며, <수학의 정석>처럼 '기본문제-유제-연습문제'의 방식으로 반복재생하며 각인시키는 표준유형 외에 '또 다른 방식으로의 해결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도 있어야 한다. 교육부가 제시하는 '전인적 성장의 기반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폭 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민주 시민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교육목표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주어진 길을 따라서 답을 찾는 것은 일종의 기능이지만, 의문을 갖는 것은 창조의 시작이다. 그런데 궁금해 하기도 전에 우겨넣어진 답들 때문에 길을 찾는 기술은 발달했지만 정작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것, 그래서 흉내는 재빠르지만 새로움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지금 학생들의 모습이자 교육행정가들의 모습이며 한국사회의 현주소인 듯 해서 씁쓸하다.

<공부의 신>은 나쁜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공부의 신>에 투영된 우리 교육은 나쁘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면서 영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입시학원에서 8년간 고등학생들에게 논술과목을 강의했습니다



태그:#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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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여러가지 글을 쓰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맛있는 추억'을 책으로 엮은 <맛있는 추억>(자인)을 비롯해서 청소년용 전기인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 80,90년대 프로야구 스타들의 이야기 <야구의 추억>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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