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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님이 소식을 보내왔다!"

 

손짓하고 있었다. 봄님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초록 옷으로 단장하고서 하늘하늘 다가오고 있음을 전하고 있었다. 봄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인지,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마음에 전해지는 감미로움을 확연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천치재에는 봄님의 전령사들이 왁자지껄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매서웠던 겨울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던가? 고개 정상에 서 있으니, 바람부터 다르다. 얼굴에 닿는 느낌이 삭풍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부드럽다. 어찌나 달콤한지 저절로 눈이 감겨진다. 봄님의 소식은 시각적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온 몸의 세포를 자극하는 바람의 간지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천치재.

전라남도 담양과 전라북도 순창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고갯길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오솔길이 아니다. 자동차가 질주할 수 있도록 잘 포장되어 있는 4차선 대로다. 거치적거릴 것은 없다. 그러니 어찌 보면 고개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봄님의 마음을 닮아 있다. 어서 빨리 봄소식은 전하고 싶은 조급함을 전하기에는 아주 적당하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눈도 많이 내렸고 삼한사온도 잊어버리고 맹위를 떨쳤었다. 심술을 부리고 있을 때에는, 봄은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혹독하였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나서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봄을 찾아 나선 마음이 너무 성급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직은 겨울이 힘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춘이 내일 모레라는 생각으로 회문산을 지나 순창을 들렀었다. 발효 음식의 본 고장을 찾은 것은 식도락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상 잘 차려진 한정식은 식욕을 자극하였다.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의 맛이 미각을 돋워 주었다. 우리 것이 역시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순창에서 포만감을 만끽한 뒤 강천산으로 향하였다. 팔덕면의 도로에 심어져 있는 낙우송 가로수는 언제 보아도 멋이 넘쳐났다. 하늘 높이 자라 있는 나무의 위용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무를 바라보면서 봄이면 다시 나올 초록의 새순을 기다리게 된다.

 

봄이면 돋아날 새순은 희망이다. 희망은 꿈이요, 내일에 대한 기대다. 초록 향을 머금은 새순을 생각하면 마음은 저절로 싱그러워진다. 초록 이파리는 스스로 맑아지게 한다. 맑아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의심이나 불안함을 떨쳐버린다는 것을 말한다. 미움과 욕심을 날려버리고 무슨 일이든 다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한다.

 

아직은 나무에서 초록의 새순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그려볼 수 있었다. 꿈과 마음 그리고 몸이 하나로 어우러지게 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게으름을 털어버리고 성실하게 지금을 채워간다면 무슨 일이던 다 성취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강천사를 지나 가마골을 지났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굽이굽이 돌아서니, 천치재에 당도하였다. 가파른 고갯길을 그냥 넘어설 수가 없어서 봄을 찾았다. 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고 기개를 뽐내고 있는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여유를 가져본다. 봄은 성급한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다. 느긋하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볼 수 있다.

 

봄은 어디에나 배어 있다. 공기 속에도 봄기운이 들어 있고, 바람 속에도 배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포근함이 듬뿍 들어 있는 햇볕 속에도 있고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는 풀 잎 속에도 들어 있었다. 혹독한 겨울에 견디지 못하고 회색으로 변해버린 검불 사이로 초록으로 인사하고 있는 풀잎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었다. 정녕 봄은 풀잎에서부터 오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봄은 개나리의 꽃봉오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아직은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아물기 시작한 노란색의 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크기가 아직은 미미하지만,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맺어지고 있었다. 천치재에는 봄소식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 안에 서 있으니, 봄 향기에 듬뿍 취할 수 있었다.

 

천치재에서 감지하게 되는 봄은 힘이었다.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불길은 타올라서 열정으로 이어지고 몰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겨울이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봄은 다가온다. 시간은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깨어 있는 자의 전유물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봄이 와도 그 것을 볼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봄은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소유물일 뿐이다.<春城>

덧붙이는 글 | 데일리언


태그:#천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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