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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 407
▲ 푸조 407 푸조 407
ⓒ 장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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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리가 서먹서먹 하던 어느 날 난 앞 동 아파트를 우리 집이라고 착각하고 들어간 적이 있다.

똑 같은 505호가 적힌 문을 무심코 열고 들어간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을 한참 바라보며 우리 집과 비슷한 구조 속에 배치된 낯선 가구들과 조명들로 어리둥절한 적이 있다.

푸조 407을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그날 내가 느꼈던 어색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외관상으로는 다른 세단에 비해 크기나 볼륨은 크게 다르지 않는데 실내에 앉는 순간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왔던 공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른 차에서 다리나 팔을 움직였을 때 부딪쳐야 하는 공간은 손톱을 막 자른 것처럼 시원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안경처럼 갑갑했던 앞 유리창은 엎어져도 코가 닿지 않을 정도로 멀고도 넓었다.

푸조 407 실내
▲ 푸조 407 푸조 407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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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듯 푸조 407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단의 법칙에게 도전하는 차였다. 요즘 '파격적인 디자인'이라면서 많은 차들이 나오고 있는데 솔직히 난 그 디자인의 깊이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큰 변화와 자극적인 라인을 쓴다 해도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파격적인 벽지에 불과하다.

진정한 새로운 디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법칙'을 다시 생각하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바꾸고 싶을 때는 가구도 움직이고, 더 나아가서는 벽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벽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푸조 407을 얼핏 보면 다른 세단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말 다른 공간개념을 갖고 있다. 앞 오버행은 길고 뒤로는 아주 짧게, 앞 유리창은 낮은 각도로 길게, 뒤 유리창은 짧고 가파르게.

이 모든 것이 실내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게 된다. 미세한 차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앞 좌석과 1cm의 차이가 엄청난 길이로 느껴지듯이 자동차 실내 공간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2.0리터 디젤엔진은 실내공간만큼이나 시원했다. 중형세단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저RPM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토크는 언덕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잘 맞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푸조 407은 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우리나라와 잘 맞는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주차할 일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짧은 뒤가 주차할 때 참 편했고, 무엇보다 휘발유 차들보다 20%나 더 효율적이어서 기름값이 비싼 우리나라에서는 더 매력적이었다. 물론, 힘이 필요할 때는 디젤엔진의 특성상 조금의 소리는 있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야 했던 주유소를 멀리 할 수 있는 기쁨에 비하면 어떤 단점도 용서가 될 정도였다.

푸조 407
▲ 푸조 407 푸조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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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차들은 개성이 강한 차들이고 푸조 407 또한 프랑스 디자인의 매력이 살아 있다. 파스타 위에 올려진 새우 한 마리처럼 주차장에 빼곡히 쌓여있는 지루한 차들 속에 푸조는 쉽게 찾는다. 하지만 푸조 407은 일부러 나를 봐달라고 억지스럽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디자인도 아니다.

비슷비슷한 차들이 지루해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차를 타고 싶다면 푸조 407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 실내에 사용되는 소재들도 하나 하나 품질이 높았고, 계기판의 색상, 재질, 폰트 등, 전체적인 디자인과 잘 어울렸다. 이 차만큼은 사진상으로 판단하지 않고,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 느끼길 바란다. 분명히 푸조를 다시 바라보게 될 거라 믿는다.

난 그날 잘못 들어간 집을 다녀오고 나서 내가 있는 공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같은 크기, 비슷한 구조지만 전혀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푸조 407을 타고나서도 그때 느꼈던 느낌을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차를 디자인 할 때 너무 벽지만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해준 의미 있는 차였다.


태그:#푸조, #407, #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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