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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이동'의 설 연휴가 지나갔다. 토,일요일과 연휴 기간이 절묘하게 걸친 '잔인한' 달력과, 때맞춰 내린 폭설로 귀성길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가족들 얼굴이 보고 싶어서, 혹은 의무적으로 귀성길에 오른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우리 가족 역시 귀성길을 내내 고민하다 결국 남들 다 자는 시간에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말았다.

 

한반도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매년 교통 상황에 따라 때로는 십수 시간도 걸리곤 하는 명절 귀성길에 빠지지 않았던 '순례 절차'는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화장실을 가거나 고된 운전 중에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들르기도 하지만, 대개는 식사를 하거나 지루한 귀성길의 '기분전환'을 위해 들르게 된다.

 

하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들렀던 휴게소에서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진 경험도 적지 않았다.

 

 

떠올리기 싫은 소매치기의 기억

 

작년 설, 시골로 향하는 길에 들른 휴게소 안에서 유난히 많았던 인파 속에 가족이 소매치기를 당했던 것이다. 범인은 손에 들린 핸드백을 칼로 찢어 지갑만 들고 달아났다. 지갑에는 우리 가족이 명절을 쇨 목돈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핸드백도 고가의 제품이라 수선을 끝낸 후에도 칼자국이 선명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정말 놀라운 사실은, 해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휴게소의 방범 체계가 생각보다 몹시 허술하다는 것이었다. 상주하고 있는 경비원이나 경찰도 없었고, 안내 데스크에서도 어쩔 줄 몰라 장내에 안내 방송을 하고 외부의 경찰에 신고를 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범인이 휴게소를 빠져 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심지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조차 명절 휴게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리 노력하려 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범행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나를 동행해 휴게소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는 정도였다.

 

결국 우리 가족은 현금서비스를 받아 명절을 쇨 수 밖에 없었다. 즐거워야 할 명절, 우리 가족은 '칼 든 소매치기'의 공포에 내내 질려 있어야 했다.

 

칼 안 든 소매치기?…무시무시한 '바가지'

 

올해는 운 좋게 교통 체증을 덜 겪어 왕복 두 번밖에 휴게소에 들르지 않았지만, 도로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게 되는 때는 편도에 2~3개도 들른 적이 있었다. 이 때는 거의 하루 세 끼를 휴게소 음식으로 때우기도 했다.

 

사실 휴게소 음식은 흔히 비슷한 가격으로 외식을 할 때 먹는 것들의 수준에 비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돈가스를 시켰더니 요즘은 웬만한 데서 먹어보기도 어려운 '냉동 돈가스'가 나와, "이게 언제적 거야. 추억의 맛이네"하며 헛웃음이 나온 적도 있었다. 가격은 일반 '생돈가스'류와 비슷했다.

 

가장 흔하게 먹는 우동도 인스턴트 제품을 끓여 내놓으면서, 가격은 일반 식당과 비슷한 6~8000원선이다. 심지어 라면이 5000원이 넘는다니, 동네 분식집의 두 배 가격이다.

 

식당 메뉴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휴게소 고객들이 즐겨 찾는 노점 간식류 코너는 더 심하다. 냉동 치킨볼을 여남은 개 꽂은 닭꼬치가 2천 5백원 정도, 마른 오징어 다리는 3천원을 넘었다. 호두과자 한 봉지는 5천원이다. 그럴듯한 포장을 뜯어 보면 몇 개 들어 있지도 않아 허탈한 경우가 많다. 명색이 호두과자인데 호두가 들어 있지 않은 불량 제품도 흔하다.

 

물론 명절 인파로 정신없는 휴게소에서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직원들 또한 명절에는 엄청난 과로에 시달리고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에게 무조건 친절하고, 일류식당 수준의 음식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는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선택권'이 적은 상태에서 이용하게 되는 곳이다. 특히 명절이면 교통 체증으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귀성객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인근 휴게소를 찾게 된다. 그러고는 아무리 터무니없이 비싸고, 맛이 없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휴식의 장소'가 됐으면

 

이렇게 문제 많은 휴게소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에 명절이 있는 한 적어도 일년에 한 두 번은 들를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휴게소가 진정한 '휴식의 장소'로 거듭나기에는 갈 길이 멀어보인다.

 

물론 최근들어 변화한 휴게소의 면모가 종종 보이기도 한다. 지역의 특성을 이용한 볼거리

·즐길거리 공간을 확대하고, 가장 많은 이용객이 몰리는 화장실 규모를 넓혀서 한층 편리해진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에 비해 '화장실 줄'이 부쩍 짧아졌다. 가격에 대해서도 바가지나 담합을 규제하고 있다는 보도를 들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휴게소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여전한 바가지에, 위생성과 품질이 의심되는 상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게다가 명절 인파를 틈탄 범죄의 위험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가올 명절에는 휴게소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다.


태그:#명절, #휴게소,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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