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랜만에 김냉국을 대하고보니 어머님이 무척 그리워진다.
 오랜만에 김냉국을 대하고보니 어머님이 무척 그리워진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남쪽바닷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길이 고향길이다. 남도답사 1번지 강진, 포근하고 아늑한 강진고을이 나의 고향이다. 고향 가는 길에는 호수같이 아름답고 잔잔한 강진만이 동행을 한다. 넉넉하고 푸근한 고향마을은 찾아갈 때마다 마음마저 따뜻하게 감싸안아준다. 평야가 많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강진은 인심도 후하고 볼거리도 많다.

고향 가는 길목에는 300여년 된 푸조나무가 있다. 사당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으로 여겼다. 마을에서 제주를 뽑아 동제를 지내기도 했다. 옛날 한 나무꾼이 푸조나무의 나뭇가지를 잘라 그만 급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나무에 손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나무는 지금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당리 마을 사람들이 신목으로 여기는 300여년 된 천연기념물 제35호 푸조나무다.
 사당리 마을 사람들이 신목으로 여기는 300여년 된 천연기념물 제35호 푸조나무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가지가 바닥까지 휘늘어진 나무는 여름철 쉼터로 아주 그만이다. 고향마을에 오갈 때면 항상 이곳을 지나간다. 푸조나무 그늘에 앉아 바라보는 고향마을은 한 폭의 동양화인 듯 아름답다. 천태산의 양지 녘에 똬리를 튼 계치마을은 삼면이 산에 둘러싸여있고 남쪽에는 툭 트인 바다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감칠맛이 가득한 고향 밥상

강진은 예로부터 남도에서 손꼽히는 맛의 고장이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게 차려낸 한정식과 옛 춘궁기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이 담긴 건강식 보리밥은 빼놓을 수가 없다. 목리의 민물장어, 병영의 돼지고기불고기, 마량의 회, 백반, 전복죽, 매생이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먹을거리가 많다.

강진은 예로부터 남도에서 손꼽히는 맛의 고장이다.
 강진은 예로부터 남도에서 손꼽히는 맛의 고장이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갖가지 나물들이 먹음직스럽다.
 갖가지 나물들이 먹음직스럽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남도의 진미 육전과 해물전이다.
 남도의 진미 육전과 해물전이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맛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고향 밥상이 가장 먼저다. 고향 떠난 지 오래이다 보니 이름난 식당의 산해진미보다 더 고향의 정이 듬뿍 담긴 고향 밥상이 먼저 떠오른다. 소반에 고기반찬이 올라오지 않아도 싫지 않았고 생선이 없어도 좋았다. 남새밭에서 뜯어온 푸성귀 몇 가지면 밥 한 그릇은 뚝딱 해치웠다.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고향 밥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김냉국을 자주 만들어주셨다.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김냉국은 시원하면서도 입안에 감기는 감칠맛이 각별했다. 시원한 냉수에 김 가루와 양념 몇 가지만 풀어내도 그 개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다른 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김냉국에서 숟가락이 멈출 줄 몰랐다. 오랜만에 김냉국을 대하고보니 어머님이 무척 그리워진다.

어머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김냉국은 잃어버린 입맛까지도 돌아오게 했었다.
 어머님이 손수 만들어 주신 김냉국은 잃어버린 입맛까지도 돌아오게 했었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어머님이 손수 만든 김냉국은 잃어버린 입맛까지도 돌아오게 했었다. 어머님이 김냉국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아궁이 불에 김을 바삭하게 구워내 김을 잘게 부쉈다. 잘게 부순 김을 그릇에 담고 시원한 냉수를 부어 국간장과 참기름 참깨를 뿌렸다.

오랜만에 마주한 김냉국에는 그 옛날 고향집의 어머님이 아른거린다. 고샅길을 누비며 함께 뛰놀았던 옛 친구들의 모습도 보인다. 시원한 김냉국에 다른 설음식은 눈에도 안 들어왔다. 김냉국의 풍미에 푹 빠졌나보다.

고향마을 '범바우'에 얽힌 전설

고향 마을 어귀에는 범바우가 있다. 어릴 적에는 무척 컸었던 것으로 기억되나 최근에 다시 보니 바위가 정말 조그맣다. 계치 마을은 창녕 조 씨 집성촌이다. 범바우에는 조선 말기 순조 때 창녕 조씨 석관이 낫 하나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호랑이를 만나면 단숨에 잡아버리겠다며 평소에 힘자랑을 하고 다니던 조 석관이 어느 날 산에서 풀을 베다가 갑자기 호랑이를 만났다. 조 석관은 이에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웃옷을 벗어 호랑이에게 던졌다. 화가 난 호랑이가 옷을 덥석 물더니 옷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이런 행동을 침착하게 지켜보던 조 석관은 호랑이에게 틈이 생기자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왼쪽 팔로 호랑이 목을 힘껏 조르며 빨리 낫을 가져다 달라며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어릴 적 기억은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고향집은 예나 지금이나 그곳에 있다.
 어릴 적 기억은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고향집은 예나 지금이나 그곳에 있다.
ⓒ 조찬현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호랑이가 무서워서 그 어느 누구도 쉬 나서질 못했다. 이를 참다못한 조 석관은 호랑이를 옆구리에 끼고 낫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지게에서 낫을 꺼내든 조 석관은 낫으로 호랑이의 배를 단숨에 갈라 숨을 끊어버렸다. 이후로 조 석관은 마을에서 영웅대접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조 석관이 잡은 호랑이 가죽을 벗겨 마을 어귀의 바위에 올려놓았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조석관이 키우던 황소가 호랑이 가죽이 씌어져 있는 바위를 여러 차례 머리로 들이받아 골병이 들어 죽었다. 아마도 조 석관의 손에 죽은 호랑이의 원혼이 황소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닐까.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범바우'라고 부른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는 이 바위가 호랑이처럼 떡 버티고 있다. 

언제 찾아가도 정겨운 곳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갖가지 사연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어귀의 범바우 뒤에서 어릴 적 함께 뛰놀았던 친구들이 금방이라도 나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올 것만 같다. 다들 잘 살고 있는지, 이곳 지면을 통해 안부를 물어본다. 뒷산에 참꽃 흐드러진 돌아오는 봄날에 우리 다함께 범바우에서 만나면 좋을 텐데.


태그:#고향, #강진 대구면 계치, #범바우, #어머님, #김냉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