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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뮤지컬 표를 준다기에 신청을 했었는데, 당첨이 된 덕분에 뮤지컬 <메노포즈>를 봤다. 덕분에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두산아트센터(연강홀)에도 처음 가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문화공간이었다.

<메노포즈>는 제목에서 잘 보여주고 있듯이 폐경을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한 단락을 마무리한 아줌마들의 이야기다. 전문직 여성인 돌싱, 왕년의 잘 나갔던 스타, 전업주부, 귀농한 여성 네 명이 펼치는 중년여성의 이야기가 바로 뮤지컬 <메노포즈>다.

공감할 수 없었던 엄마의 이야기

뮤지컬 메노포즈 포스터
▲ 뮤지컬 메노포즈 뮤지컬 메노포즈 포스터
ⓒ 뮤지컬 메노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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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겠다. 난 조금 지루했다. 그리고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가 봤던 다른 뮤지컬들과는 달리 노래 템포는 평이한 멜로디였고, 배우들의 몸짓도 복잡하고 현란하지 않았다.

이런 뮤지컬의 요소뿐만 아니라 갱년기, 우울증, 중년 여성의 성적인 욕구 등을 노래하는 것으로 채워진 내용들은 나같이 젊은 남성이라면 좀처럼 공감해서 집중하기 힘든 이야기다.

그런데 공감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니, 문제는 뮤지컬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메노포즈>에서 노래하고 있는 폐경이 지난 여성들이 겪는 갱년기와 우울증은 바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엄마의 문제일 터.

나는 내 엄마가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에 무지하고 무식하다. 객석을 채운 관객들의 대부분은 중년의 부부들 혹은 아줌마들이었는데, 그들이 보내는 환호와 공감 그리고 '빵빵' 터지는 웃음을 보면서 바로 내 옆의 엄마에 둔감한 나를 발견한다.

난 엄마의 박자, 엄마의 노래, 엄마의 몸짓, 엄마의 인생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의 인생을 노래하는 <메노포즈>에 많은 엄마들이 공감하고, 박수치고, 함성을 지른다. 나는 엄마의 박자와 노래와 인생을 알려고 하기는커녕 여전히 그것을 지루해하고, 답답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이 어디 엄마에게 뿐일까.

앞으로 나와 함께 살게 될 여자에게도 나는 이렇게 몹쓸 짓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만나왔고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도 내 입장에서 함부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지루해하겠지. 그래서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뮤지컬 <메노포즈>를 보면 정신을 바짝차린다. 엄마와 다른 이의 박자와 노래를 이해해보겠노라고. 그 박자와 노래를 알려주는 메노포즈가 고맙다.

우리 엄마는 완경하셨다, 훌륭하게

폐경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여성들은 갱년기와 우울증, 인생에 대한 의미를 잃어간다. 그러나 네 명의 여성들은 이러한 문제를 목청껏 노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래서 폐경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한 단락의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폐경이라는 이름에 이의를 제기한다. 폐경이 아니라 '완경'이라고. 그래 나의 어머니, 그리고 이 땅의 어머니들은 폐경이 아니라 완경으로 여성으로서의 신비한 여정을 있는 힘을 다해 완주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서는 것이다.

차를 폐차시키고, 왕비를 폐위시키고, 신문지를 폐품으로 만들어버리듯 우리 엄마를 폐경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우리 엄마는 훌륭하게 완경하셨다.

그러고 한 가지 발견. 사실 나는 이영자라는 개그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부담스러워했다. TV를 통해 나오는 그의 모습, 그의 말, 그의 개그가 나는 부담스러웠고 때로는 거북하기도 했다. 왜 저렇게 주책인가 하는 생각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영자는 재미있기 보다는 부담스러운 개그맨으로 나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런데 나는 <메노포즈>에서 이영자를 직접 목격(?)하고 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 내가 고쳐먹은게 아니라 이영자가 나를 교정해주었다. 무대 위의 이영자의 모습은 TV속의 '부담스러웠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직접 만난 무대 위의 이영자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즐거웠고, 유쾌했고, 관객들을 휘어잡는 배짱을 보여주었다.

뮤지컬 메노포즈, 딱 4명만 나와서 2시간에 가까운 공연을 만들어 가느라 조금 힘에 부쳐보인 것이 내가 잡을 수 있는 흠이라면 흠이다. 홍지민의 격이다른 노래 실력, 이영자의 익살과 유쾌함 그리고 많은 엄마들에게 바로 내 이야기를 해준다는 공감을 일으키는 무대위 엄마들의 노래와 춤은 이 시대의 '완경여성'들에게 위로와 힘 그리고 응원이 되기에 충분하다.

괜히 내가 봤어. 괜히 내가 봤어. 엄마 보여줄 걸 그랬어. 엄마 보여줄 걸 그랬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http://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뮤지컬 메노포즈, #메노포즈, #이영자, #여성,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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