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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욕지도 풍경.  
 섬마을 욕지도 풍경.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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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섬을 바라보면 낭만처럼, 꿈처럼 그저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는, 치열한 삶의 터로 생각할 섬사람들에게는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내게 있어 섬은 팍팍한 일상을 잊게 하는 숨구멍 같은 것, 그래서 머릿속으로 섬 풍경을 그저 그려만 보아도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지난달 30일에 직장 동료들과 함께 욕지도(경남 통영시 욕지면)에 다녀왔다. 연화도, 우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두미도 등 9개의 유인도와 30개의 무인도가 있는 욕지면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 소재지이기도 한 욕지도는 통영시에서 남쪽으로 32km 떨어져 있고 뱃길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에 통영 삼덕항(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서 출발하는 욕지영동고속호를 타게 되었는데, 욕지도에는 택시가 없어 마산서부터 타고 온 자동차를 배에 같이 실었다. 선상 휴게실에 앉아 따끈한 커피에 준비한 간식거리를 곁들여 먹으면서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욕지도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학생 서른다섯 명인 욕지중학교, 그리고 정겨운 욕지도 골목길

욕지도 고구마 밭.  한 폭의 그림 같다.  
 욕지도 고구마 밭. 한 폭의 그림 같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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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는 섬에 왔다. 출렁대는 바다가 주는 상쾌함에 삶도 유쾌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직장 동료의 신랑으로 이날 운전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 욕지도 가이드 역할을 자청한 송의섭 선생님이 근무하는 욕지중학교(경남 통영시 욕지면 동항리)에 먼저 들렀다.

욕지중학교는 선생님 아홉 분에 학생은 서른다섯 명이다. 건물 바깥 벽에 걸려 있어 운동장에서 볼 수 있는 큼직한 시계와 기둥 두 개만 있을 뿐이지 문을 달아 놓지 않은 교문이 좋아 보였던 학교이다. 예전에 대문이 아예 없는 시골집에서 살고 있던 화가의 집에 놀러간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문이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어 놓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섬이다 보니 통학선도 있다. 현재 부근 연화도에 사는 학생 한 명이 그 배를 이용하고 있다 한다. 운동장 한쪽에는 장승들이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서 있는데, 송의섭 선생님의 작품이다. 노란 은행나무가 옆에 있어 늦가을 무렵에 더욱 예쁘겠다. 학교 사택에서 바라다본 고구마 밭 또한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들의 시선을 끌었다. 욕지도 하면 고구마가 먼저 생각날 정도로 욕지도 고구마 맛은 전국에서도 이름나 있다.

욕지중학교 장승.  하루 동안 욕지도 가이드를 해 준 송의섭 선생님의 작품이다. 
 욕지중학교 장승. 하루 동안 욕지도 가이드를 해 준 송의섭 선생님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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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욕지도 골목길 풍경 
 정겨운 욕지도 골목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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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골목에서. 
 욕지도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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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욕지중학교에서 나와 한적한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어 내려갔다. 요란스레 멋 부리지 않아서 오히려 정겨워 보였던 골목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햇볕이 좋아 빨래를 씻어 널고 화분까지 내놓은 골목길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요즘 도시에서 보기 힘든 다방 간판들도 보여 엷은 웃음이 절로 입가에 번졌다.  

천하 일미 섬마을 방어회 맛보고 새에덴동산으로

전망대에서. 부리가 긴 펠리칸을 닮은  '펠리칸바위(오른쪽)'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부리가 긴 펠리칸을 닮은 '펠리칸바위(오른쪽)'가 보인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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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빠져 나오자 2인승 카트를 볼 수 있었다. 섬으로 자동차를 싣고 오지 않은 관광객들은 카트로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욕지도를 한껏 느껴 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미리 부탁해 둔 민박집으로 곧장 가서 생선회를 먹었다. 방어, 쥐치, 광어와 농어회를 먹었는데, 처음 먹어 본 방어회 맛이 기막혔다. 섬마을에서 맛보는 생선회 맛은 기분부터 달라서 그런지 천하 일미였다.

맛있는 점심을 하고 우리는 해안 도로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전망대에서 잠시 내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섬 풍경도 즐겼는데, 펠리칸 바위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락없이 부리가 긴 펠리칸이 먼 바다를 향해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섬마을에서 맛보는 생선회는 천하 일미!  
 섬마을에서 맛보는 생선회는 천하 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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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욕지도를 한껏 느껴 보세요. 
▲ 카트 카트를 타고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욕지도를 한껏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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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40분께 새에덴동산(경남 통영시 욕지면 서산리 양지촌)에 이르렀다. 최숙자씨가 13년 전 위암 말기였던 딸 윤지영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와서 모녀가 함께 이룬 믿음의 동산이다. 첫 작품으로 일 년 반 동안 맨손으로 지었다는 '야곱의 우물'을 비롯하여 '실로암' '신의 제단' '새벽별' '신의 면류관' 등 종교적 색채를 띤 독특한 작품들을 볼 수가 있다.

건축 공사 장비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손수 정으로 돌을 깨고, 흙을 으깨어 손바닥으로 두드려 가면서 미장을 했다는 것이 도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눈에 보아도 훌륭한 조형물들이다. 딸의 위암 덩어리가 깨끗하게 없어지는 기적 또한 일어났고, 언제부터인가 자발적으로 일을 돕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다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그들이 지인의 초청으로 중국 여행 중이라 만나지 못해 좀 아쉬웠다.

 
▲ 새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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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의 맛집, '한양식당'의 짬뽕.  요리사는 칠순 할아버지! 
 욕지도의 맛집, '한양식당'의 짬뽕. 요리사는 칠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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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덴동산에서 나와 서촌윗길에 자리 잡은 한양식당으로 갔다. 점심을 배불리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평소 점심 때가 되면 줄을 서서 먹을 만큼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해서 서둘러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후 4시 35분에 욕지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배를 타려면 사실 40분 밖에 시간 여유가 없었지만, 우리는 칠순 할아버지가 맛있게 요리해서 내놓은 짬뽕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워했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 배를 기다리고 있으니 구수한 군고구마 냄새가 또 우리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흐릿하고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더욱 구수하게 냄새를 풍겼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사 먹은 욕지 고구마 맛은 정말이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태그:#욕지도, #새에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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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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