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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아이돌 가수만큼이나 소녀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존재가 있을까. 치마 교복을 입은 채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는 미성년들에게 아이돌 오빠들은 그야말로 비상구다. 그들은 소녀들의 우중충한 하늘을 밝혀주는 강렬한 빛이요, 새장 속 생활을 견딜 힘을 주는 에너지 전도사다. 때로 소녀들은 오빠들과 한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환각에라도 빠진 듯한 표정으로 TV속 오빠들을 감상했고, 성적 올리면 콘서트에 보내주겠다는 엄마 말씀에 문제집이 새카매지도록 공부를 했다. 내 오빠들이, 영원할 줄만 알았던 그들이 해체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생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미지

이토록 광적인 팬이었음에도 그들에 대한 편견은 있었다. 화려한 세계 속 그들은 왠지 잘 놀 것 같았고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할 것 같았다. 노력보다는 타고난 외모와 감출 수 없는 끼로 로또 당첨되듯 아이돌 멤버로 발탁,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대 위 오빠들은 그렇듯,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로만 생각됐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요즈음도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내게 여전히 그런 이미지였다.

빅뱅 자서전 <세상에 너를 소리쳐!> 겉그림.
 빅뱅 자서전 <세상에 너를 소리쳐!> 겉그림.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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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역시 다르지 않다. 세간의 편견으로 삐뚤게 본다면, 옷 잘 입고 유행 따라 랩을 흥얼거리며 건들거리는(?) 양아치 연예인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녹음 장비들이 워낙 좋아져 가수가 노래를 잘 못해도 잘하는 것처럼 꾸며낼 수도 있고, 웬만큼 생긴 외모라면 유명 스타일리스트들을 동원하여 그럴싸한 외모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성형으로 더 그럴듯한 모습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꾸미고 속여도 감출 수 없는 것은 내면에 숨겨진 재능과 노력으로 빚어낸 '결과' 다.
- 빅뱅 자서전 <세상에 너를 소리쳐!> 소개글 중에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하고 있는 일의 자료조사차 읽게 된 빅뱅의 자서전 <세상에 너를 소리쳐!>(쌤앤파커스 펴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업적인 색채를 띤 아이돌 그룹의 자서전일 뿐이라고, 한 줄 건지면 다행일거라 생각하며 펼쳐 넘긴 페이지 속 빅뱅 멤버들은 내가 생각하던 딴따라 이미지에서 한참이나  빗겨나 있었다.

빅뱅,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그들의 연습일지

지드래곤(권지용), 탑(최승현), 태양(동영배), 대성(강대성), 승리(이승현) 다섯 멤버로 구성된 빅뱅은 데뷔와 동시에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등의 히트곡들로 명실상부 톱 아이돌 그룹이 되었다. 멤버들 개개인의 활동도 두드러져 지드래곤은 작곡과 작사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고, 대성은 예능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하며, 탑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따로 또 같이' 전략을 성공시켰다.

이처럼 아쉬울 것 없는 듯 보이는 그들이지만, '빅뱅'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기까지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된 수많은 날들이 있었단다. 다섯 멤버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기 시작한 날로부터 데뷔하기까지의 날을 모두 더하면 자그마치 13,140일, 36년이다. 다시 다섯으로 나누면 멤버 한 명당 7.2년의 시간이다. 이 긴 긴 세월을 그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참아내며 버텼을까.

우리는 모두 또래 친구들보다 더 이른 나이에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친구들이 학교에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을 때 우리는 랩과 안무를 암기했고,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릴 때 우리는 습기 가득한 지하 연습실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더위와 싸워가며 춤을 배워야 했다. (중략)

친구들이 아침부터 '밥 먹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지겨워할 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보는 엄마가 걱정할까 애써 밝은 웃음을 지어보여야 했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남들과 출발이 다르고 가는 길도 달랐기에, 여기서 물러서면 돌아갈 곳조차 없는 우리였다. -책 중에서, 지드래곤.

멤버 한 명당 데뷔까지 7.2년, 기나긴 시간을 버텨내며...

책 속에서 알게 된 빅뱅 멤버들은 그저 겉멋만 든, 운 좋은 가수가 아니었다. 수천 수만 명의 가수 지망생 중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발탁되어, 또 다시 연습생들끼리의 경쟁과정을 거쳐 데뷔하기까지 그들은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시간을 이겨내야만 했다. 어른들의 삐뚤어진 시선과 자칫하면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초조함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춤을 췄고 노래연습을 했다.

빅뱅 멤버들. 좌측부터 지드래곤, 승리, 태양, 대성, 탑.
 빅뱅 멤버들. 좌측부터 지드래곤, 승리, 태양, 대성, 탑.
ⓒ YG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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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꼬마 룰라' 멤버로 활동했던 지드래곤, 가수가 되고 싶다며 YG 사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연습생의 기회를 따낸 태양,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면서도 래퍼에 대한 꿈을 놓지 않은 탑, 독실한 기독교인인 아버지의 반대에 휘말려 가방까지 싸들고 나와 가수 준비를 했던 대성, 그리고 칠전팔기 오뚝이 정신으로 빅뱅 멤버가 된 승리.

다섯 멤버들은 타고난 재능에 가수가 되겠다는 열망, 끊임없는 노력과 성실성으로 지금의 자리에 선 것이었다. 운보다는 시련이, 지지보다는 반대가, 확실함보다는 불안정함이 그들을 주저앉히려 했지만 그들은 '긍정의 힘'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자신들이 그리던 미래를 현재로 만들었다. 그 어느 기성세대가 이들을 생각 없는 딴따라로 볼 것인가.

그들은 괜히 빅뱅이 된 게 아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저 틀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사느라 급급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목에 줄 매인 강아지마냥 주인을 쪼르르 따르며 살기에 바빴는데, 정작 내가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그 어떤 틀을 훌쩍 뛰어넘는 인물들이었다. 미적지근한 인생을 살며 함부로 평가할 그런 친구들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일종의 숙연함까지 느껴졌다.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해도 좋을 만큼 교훈적인 부분이 많다. 화려한 연예계, 무대 위 가수들의 모습만 보고 쉽사리 연예인의 꿈을 가지는 청소년들, 그런 자식을 둔 학부모들 역시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한다. 남들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직업일수록 숨은 고충과  감당해내야 할 짐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도 알아두었으면 한다.

'정직한 노력은 어디서나 빛난다'고 말하는 빅뱅에게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미래를 본다. 그들을 볼 때마다 쓰곤 했던 오해의 안경을 내려두며, 폭발적인 에너지로 더 큰 꿈을 향해 가고 있는 모든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 - 꿈으로의 질주, 빅뱅 13,140일의 도전

빅뱅 지음, 김세아 정리, 쌤앤파커스(2009)


태그:#빅뱅,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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