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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의 변산에 가면 '마실길'이 조성되어 있다는 소리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듣게 되었다. 원래 '마실'은 '마을'의 방언이다. 국어사전에는 '마을 가다'로 되어있다. 즉 이웃에 놀러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 윗세대 어른들은 동네 이웃에 한담을 하러 가실 때 "마실 갔다 오마"라고 하셨지 '마을 갔다 오마'라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 정감 가는 말인데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네 삶속에서 멀어져간 단어라 변산 여행길에 듣게 되어 반가웠다.

 

또 아주 오래 전 농촌에 살고 계시던 외조부의 등에 업혀 이웃하고 있던 일가친척집에 '마실'을 갔다가 돌아오는 논둑길 내내, 머리 위로 집까지 따라 오던 둥근 보름달도 생각났다. 제주도의 올레 길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지리산의 둘레 길은 들길과 산길로 걸어본 터라 바닷가를 면하고 있는 지역의 마실 길은 어떤 느낌을 줄까 궁금했다.

 

 

변산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고 그곳 사람이 말했다. 여기저기 도로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저기 좀 보시오. 저렇게 마구잡이로 파내고 깎아 내고 하니 산천이 어찌 살겠오?" 그 사람은 개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난개발에 대한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난개발이 판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후손에게 남겨질 국토가 어떤 모습이 될까 두려울 뿐이다.


3월 1일, 마실길을 걷기로 한 날, 변산의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바다의 안개와 가랑비는 친구처럼 들러붙어서 추적추적 땅에 내려앉아 걸어야 될 여행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정말 이웃집에 '마실 가서' 빈대떡을 부쳐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꽃이나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라 우산 들고 일행들과 함께 마실길 탐방에 나섰다.

 

 

"마실길은 들이나 산길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썰물 시간을 맞추면 바닷길을 걸을 수 있기에 밀물과 썰물이 되는 때를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 쪽 지리를 얼추 알고 있는 사람이 안내역할을 맡았기에 조석의 시간을 잘 맞추어 주었다. 서해안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곳이라 부안군 관광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조석표가 있어서 몇 시쯤에 썰물이 되어 바닷길을 걸을 수 있는지 나와 있다. '변산마실길' 첫 코스는 새만금방조제 전시관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오전 9시 40분, 바다는 조용했다. 바닷물도 이웃으로 '마실'을 나가서는 수평선에서 노닥이며 제 땅을 밟는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변산마실길'은 썰물일 때는 바닷길을, 밀물일 때는 숲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갈매기가 꾸르륵끼룩 하며 마실 나간 바다 대신에 반기고, 가랑비는 바닷바람과 함께 우산 끝자락 속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옷을 적셨다. 모든 보이는 것은 회색이었다. 바다에 잠겨있다 모습을 드러낸 바위, 잿빛 하늘, 잿빛 개펄,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수평선의 경계도 잿빛이다.

 

 

 

바다 마실길은 평평한 개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울퉁불퉁 위험해 보이는 기기묘묘한 섬 바위도 오르내렸다. 바다라고 해서 맨발이나 슬리퍼를 신고 마실길 코스를 덤벼서는 안 된다. 반드시 발과 발목을 보호해줄 운동화나 등산화가 필요한 길이다. 바다 속의 바위나 돌들은 바다생물의 집터다. 물이 빠진 바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자잘한 각종 갑각류들이 껌처럼 달라붙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물이 빠진 틈을 타 그곳에서 양식을 얻고자 갑각류의 몸들을 제쳤을 테고, 남겨진 껍질은 걷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뽀작뽀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변산마실길 중 바닷길에는 소리가 있었다. 갈매기는 끼룩거렸고, 발밑의 조개껍질은 뽀그작 거렸으며 개펄의 모래는 사박사박했다. 소리들은 비 내리는 바다와 호젓하게 어울렸다. 그 속을 사람도 자연이 되어 함께 두런두런 소리를 냈다.

 

 

제 1코스는 변산해수욕장 근처인 송포항에서 끝났다. 5㎞에 약 한 시간여가 걸렸다. 아마도 비가 오지 않았다면 물 빠진 개펄에서 머물 시간이 더 길어졌을 수도 있었겠다.

 

제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인 송포항에서 고사포 송림해수욕장까지도 마을길과 바닷길을 선택해서 걸을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마을길과 산길을 이용했다. 바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실길 안내판도 보인다. 길에는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배려가 보이는 안내판들이 있었다. 산길에는 등산 할 때 길잡이 안내 리본처럼 나무에 리본을 매달아 놓기도 했다.

 

마을은 어촌과 농촌이 공존했다. 산비탈에는 새싹이 푸르게 돋고 있는 마늘밭과 양파 밭이 한겨울을 지내고 살아낸 장한 모습을 보였고, 길가에는 버려진 석굴의 잔해가 사람들의 발길에 묻혀가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바다가 살짝살짝 보여 지는 산길의 좁은 길을 걸어 사망(士望)마을을 지나서 산을 내려오니 갑자기 넓은 차도가 왼쪽으로 보인다.

 

산을 깎아 도로를 내고 있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원광대수련원이 있는 노루목까지 내려오니 '고사포'라는 돌 표지석이 보이고 바닷길로 마실길 안내판이 보인다. 바다에 접해있는 조그만 등성을 넘으면 고사포송림해수욕장이다. 계획한 '변산마실길' 걷기여행의 종착지에 거의 다다른 것이다. 4.8㎞로 또 약 한 시간여가 걸렸다. 등성을 넘지 않고 도로로 나와 고사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비가 소낙비로 내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끊임없이 가랑비로 내렸기에 산길이 미끄러워 도로를 택했다.

 

 

 

고사포송림해수욕장은 해변도 유명하지만 약 300m나 되는 방풍림인 송림길이 걸을 만하다. 비는 거의 그쳐 있었지만 우산을 접기에는 망설이게 했다. 송림 안에는 간간이 텐트족들이 보인다. 여름에는 빼곡히 사람들이 들어차는 곳이지만, 겨울, 더욱이 촉촉이 비 맞아 솔 향을 스치듯 풍겨내는 숲은 해변의 모래 길에 대한 미련을 거두게 만들었다. 송림 숲길을 끝으로 걷기여행의 마무리를 했다. 나머지 격포항까지 이어지는 걷는 길에 만날 적벽강과 채석강의 아름다움은 그리움으로 남겼다. 이런 아름다운 강산이 오래도록 이 나라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숙제다.


태그:#변산마실길, #전북부안, #새만금방조제, #고사포송림해수욕장, #사망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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