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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8일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이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일방적인 행보에 반발하여 사장직에서 사퇴했다. 언론계에선 이미 예정된 코스라고 보고 있었다. 이전에 MBC 핵심임원들과 엄기영 사장이 방문진에 일괄적인 사표를 제출한 바도 있었다. 어쨌든 방문진은 MBC 신임사장으로 김재철 전 청주MBC사장을 내정했다. 문제는 김재철 신임사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MBC노조는 명함만 안 팠지 '특보'보다 더하다는 말을 한다. 대외적으로도 김재철 신임사장을 '낙하산 또는 폴리널리스트'(political+journalist의 합성어로 '정치권력에 편승한 언론인'을 뜻함)라고 평하는 게 지배적이다. 또한 MBC노조는 '방문진 개혁'을 외치다가 지난 4일 김재철 신임사장과 합의를 하고 파업을 풀었다. 노조는 방문진이 추천한 황희만 보도본부장, 윤혁 TV제작본부장의 보직을 철회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를 두고 MBC노조와 구성원사이에서도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실상 앞으로 'MBC저널리즘의 칼날'은 무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공영방송 MBC의 독립'을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신임사장 저지'도 '방문진 개혁'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정부가 '친정부적인 공영방송 이사회를 꾸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문제였다.

 

방문진은 1988년 방송문화진흥회법에 근거하여 설립됐으며, 현재 MBC의 대주주로서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방문진은 MBC 사장의 임명권, 해임권을 갖고 있는 등 MBC에 관해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방문진 이사들의 임명권은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 있으며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방문진의 설립목적'은 87년 6월항쟁 이후 5공의 언론장악 음모에 반발하여 정치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을 독립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국영방송과 다른 '공영방송 체제'이다. 그러나 MBC와 KBS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은 모두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제도적으로 남아있다. 사실상 공영방송의 사장을 정부가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정한 공영방송 체제가 아닌 오히려 국영방송의 색깔을 유지할 수 있게하는 수단으로 지금도 작용하고 있다.

 

이 정부의 언론장악과 그것이 표면으로 들어난 낙하산 사장 선임의 시초격인 YTN 또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정부가 회사주식 지분의 일부를 여러 공기업(한국전력,KT&G,마사회,우리은행 등등)이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공기업적인 성격이 강하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구조인 건 마찬가지다.

 

80년대 5공화국시절 '방송과 언론'은 국민에게 정부의 목적을 가장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용수단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언론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군사정권에서 나왔던 말이 '보도지침'과 '언론통폐합'이다. 이런 폐해를 증명하는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한 국민들은 민주화 이후 언론이 적어도 정치적으로부터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그렇지 못한 현실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밀어부치고 있는 '미디어법'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 방송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제도에까지 최소한의 공영방송 독립성을 침해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앞으로 정치권력의 '방송장악 가능성'을 계속 남겨두는 것이다. 종국적으로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방송독립'은 힘들 것이다.

 

언론과 '자본권력'

 

 

그렇다면 언론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를 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최근 <경향신문>은 삼성과 관련하여 여러가지로 혼이 났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의 신문광고를 거부했고, 김상봉 교수가 쓴 삼성 비판 칼럼 또한 거부한 것이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이와 관련해 연일 '진보언론인 경향신문까지 그럴 수 있느냐'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래서 <경향신문>은 이내 힘겨운 '자기고백'을 했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대기업에 대한 엄정한 보도'를 다짐했다.

 

최근 <오마이뉴스> 또한 삼성관련 김상봉 교수의 칼럼 게재를 거부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김병기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본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오마이뉴스>는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라며 "김 교수의 칼럼이 몇몇 부분에서 명예 훼손 등 소송으로 문제될 법한 표현이 있다고 판단했고 자문을 구한 변호사의 의견도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이와 관련 편집국 총회를 열어 오연호 대표와 김병기 본부장을 상대로 김상봉 교수의 칼럼이 실리지 않은 경위를 묻는 등 갈등을 겪었다.

 

오마이뉴스 평기자들은 "차라리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과의 관계 때문이라면 이해하겠으나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했다. 이에 더해 오마이뉴스의 애독자들 또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오마이뉴스는 작년 '10만인클럽'이란 것을 만들어 '자발적 유료회원'을 모집하며 기업의 광고료가 아닌 독자들의 힘으로 전체 재정의 50%가 차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언론을 만들겠다고 그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프레시안>에 따르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오마이뉴스> 매출의 80%가 광고인 상황에서 경영자로서 삼성은 파트너라고 생각한다"면서 "삼성은 거꾸로 우리에게 왜 나쁜 이야기만 싣느냐고 한다, 나는 정당한 항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최대 광고주에게 내가 갖춰야할 예의"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오마이뉴스 한 애독자는 블로그에 10만인클럽 탈퇴이유를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이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아무리 돈이 없어도 회사가 곧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더라도 할말은 해야 했다. 왜냐하면 할 말을 하는 언론을 보고자 했던 수많은 10만인클럽 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끝까지 자발적 참여를 외치다 경영여건이 악화되 회사가 문을 닫았다면 그 사건하나만으로도 이 사회에 하나의 큰 교훈 한 가지는 남기지 않았을까?"

 

기자도 사실 놀랐다. 오마이뉴스나 경향신문 모두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믿을 만한 언론이기 때문이다. 두 매체는 모두 '언론 자립'과 관련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기업의 광고의존'이라는 태생적인 '언론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었나 보다. 김상봉 교수는 두번 거절된 칼럼 전문을 <프레시안>에 냈고, 덧붙여 이런 말을 전했다.

 

"경향신문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이 땅의 진보 언론들이 처해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언론독립'을 위해 제안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정치권력'보다는 '자본권력'으로부터 더 자유롭기 힘들다. 언론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생존을 보장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요새 우리나라 언론계는 '자본권력과 정치권력'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자유롭기 어려운 듯하다. '언론의 태생적인 수익구조'를 걱정한다면 해당 언론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자발적 유료화'가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언론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에 맞게 가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다. 그렇다면 그런 언론을 유지시키는 것도 국민이 해야할 몫인 것 같다. 그러나 강요는 할 수 없다. 이에 기자는 몇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미디어펀드 또는 주식을 만들어 일반 국민이 이곳에 투자를 하면 공정하고 투명하게 종이, 인터넷, 방송 언론에 적절한 규모와 방식으로 알맞게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각각의 언론이 어떤 행태를 보이느냐에 따라 국민이 그것을 철저히 평가할 수 있는 제도 또한 만들어졌으면 한다.

 

'정부와 대기업' 등의 권력은 언론을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언론을 이용해 자기집단의 이미지를 구축할 생각을 하지 말고 언론의 역할을 존중했으면 한다. 언론은 홍보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이 나쁘다고 여기거나 그러지 말고 '이런 점이 잘못됐으니 참고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비판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원래 '언론의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이니 제발 이것 때문에 해당 언론의 수장이 편향적으로 바뀌거나, 또 해당 언론의 돈줄이 끊기거나 하는 일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많은 저널리스트 또한 절대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이것이 우선조건이 되어야 진정한 '언론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이다.


태그:#언론독립, #엄기영, #MBC,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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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2021년까지 서울에서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고, 그 이후로는 광주로 내려와서 독립 언론 <평범한미디어>를 창간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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