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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 털렸다! 뉴스나 신문에서만 봐왔던 남의 일이었는데 우리집이 털릴 줄이야!

그날(2월 19일) 우리 가족은 사촌동생의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아침부터 집을 비웠다. 졸업식이 끝난 후 수학학원을 갔는데, 수업 후 휴대전화를 켜 보니 '언니, 괜찮아?'라는 사촌동생이 보낸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나는 바로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촌동생은 내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언니 괜찮아?"하며 물어 보았다. 당황한 나는 "뭐가?"하며 되물었고 뒤이어진 사촌동생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니 집에 도둑 들었잖아! 지금 언니네 집에 경찰들 와있대. 고모도 계시고…."

그랬다! 우리집에 도둑이 든 것이다! 놀랐을 엄마를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학원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경찰과 얘기 중이니 집에 와서 얘기하자고 하셨다. 경찰들이 와있다는 말에 나는 우리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가관이 따로 없었다. 경찰차가 아파트 앞에 3대나 서있었고 아파트 입구에도 경찰이 지키고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집에 내렸을 때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우리집 문의 가장자리는 휘어져 있었고 전동키는 부서져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 보니 경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그 뒤쪽으로 난장판이 되어있는 방안이 보였다. 집에 있는 서랍은 다 열어 놓고 장롱 속의 모든 물건은 다 꺼내놓고….

이날 도둑은 우리집 뿐만 아니라 옆집도 함께 털었다. 옆집 현관문은 우리집보다 더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도난당한 물건만 해도 결혼식 패물과 아기 돌 반지, 순금 2냥, 금시계 등 엄청났다.

옆집의 피해상황을 듣고 우리집은 얼마나 털렸을까 하는 불안감과 우리 집에 털게 있었을까 하는 의심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집 피해 상황을 물어 보았다.

"엄마… 우리집 괜찮아? 옆집 되게 많이 도둑맞았던데…. 그런데 우리집에 훔쳐갈 거나 있나…."

그러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 털어갈 게 진짜 없었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우리집에 훔쳐갈 것이 없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만 원밖에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도둑님, 유용하게 쓰세요.
 우리집에 훔쳐갈 것이 없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만 원밖에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도둑님, 유용하게 쓰세요.
ⓒ 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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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계속 말을 이으셨다.

"도둑이… 만 원 가져갔더라."

우리집에 훔쳐갈 것이 없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만 원밖에 없어지지 않았다는 말에 나는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그랬다. 우리집은 정말! 진실로! 참된 소박함과 검소함 그 자체였다. 있는 거라고는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들과 그 속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들뿐이었다. 순간 우리는 도둑에게 미안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이 털렸다는 소식을 전하자 아빠는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으며 명언을 남기셨다.

"털게 뭐있다고…."

그날밤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도둑이 힘들게 문까지 휘고 들어왔는데 만 원이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며 수고비 정도는 챙겨 줘야한다는 농담까지 해가면서 우리는 모두 웃었다.

이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박함이 행복'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부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금고의 돈이 털릴까 얼마나 걱정할까? 하루 하루 불안에 떨면서 두 팔, 두 다리 펴고 잘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집은 부자는 아니다(그리 가난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도둑이 들어도 웃을 수 있다. 검소한 것은 누군가에게 부끄러워 숨기는 그런 것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그런 행복이다.

나에게 훌륭한 교훈을 준, 이 지구 어딘가에 있을 우리집 도둑에게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 김가윤 기자는 중학교 3학년입니다.



태그:#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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