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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국가가 부여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고자 합니다.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제 마음의 외침에 따라, 더구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에 동참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받는 것에 대해서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 징병제 하에서 일방적인 군사훈련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공공에 이익이 보탬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는 이들을 위한 활동으로 대체복무를 하고 싶었으나, 작년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백지화로 인해 저는 결국 병역거부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집에서 언제나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족하지만 제 힘껏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냥 져 주는 게 마음 편했고, '바보'처럼 살아서일지 모르지만 그 누구와도 다툴 일도 없었고, 남자 중학교와 남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흔한 몸싸움조차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못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때리고, 얻어맞는 그런 행위 자체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여러 부분에 있어서 소극적이기도 했고, 수동적인 학생,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으로 10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은 불과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윤리시간과 사회시간에 배웠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남들과 겨루고, 경쟁해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뒤, 저는 제 자신을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선배들과 여러 문화제와 집회,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현실 속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우리를 언제나 정부와 경찰이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왜 내 또래인 전·의경들과 대치하고, 몸싸움을 하며 서로를 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 또래인 전·의경들은 이 주장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권리 주장이 싫은 것일까?'하는 생각에 답답한 마음이 들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 군대라는 조직을 잘 몰랐습니다. 군대라는 조직은 내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그 행위가 내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하고, 나의 주장과 다르더라도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어서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키고 싶어 했던 제 행동에 대해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고, 이제는 많이 줄어든 것이라고 들었지만,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들이 많아서인지 제가 입학한 2001년도의 대학 사회는 군사문화가 매우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위계적 학번질서와 남성중심의 분위기, 술자리에서의 군대 이야기와 성적 대상화된 여성에 대한 농담들은 저를 많이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고, 두려웠던 것은 군대에 가기 전에는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고 했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성매매를 반대하고 평등한 관계를 논하던 선배들이 자랑스레 자신의 성매매경험을 늘어놓거나 후배들을 자기 부하를 부리듯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도대체 군대가 어떤 곳이기에 사람이 저렇게 변하게 되었을까?, 군대에 다녀오면 나도 그렇게 변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신체뿐만 아니라 내면의 양심과 신념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2년, 20여명이 학생들이 양심에 따른 예비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며, 더 많은 시민들에게 동의를 얻고자 캠페인 등 여러 활동을 했었지만, 내 자신이 병역거부를 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감옥에 간다는 것이, 그 이후의 사회생활이 두렵기도 했으며, 아직 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몰랐으며, 나의 신념에 대해 나 스스로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과대학 학생회를 하던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침공이 시작되면서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어릴 적 람보로 대표되는 여러 미국의 전쟁 영웅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늘 불편했던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군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 여성과 남성을 포함한 민간인들까지 학살하는 전쟁은 어릴 때부터 보았던 성경 속의 지옥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파병을 통해 수많은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침략전쟁에 동조했습니다.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한국은 자국의 군대를 전쟁터에 보냈지만, 저는 '국익'이라는 '돈'보다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자연, 그리고 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으로 부모와 자식을 잃은 사람들,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그 누구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때부터 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영 영장이 나온 지금 제 결심은 분명해졌습니다.

 

제 결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 일은 지난 2008년 촛불 집회 중에 있었습니다. 비폭력을 외치는 시위대를 전·의경들이 물대포와 곤봉, 무섭게 내리찍는 방패로 진압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속에 있으면서, 군대라는 조직의 폭력성에 다시 한 번 병역거부의 마음을 다잡고 있던 제 눈에 한 청년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이길준. 그는 의경으로 입대해 방법순찰대원으로 복무하던 중 촛불집회 진압에 동원되어 진압을 했으나, 시민들을 향한 폭력진압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외박 후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건은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줬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군대는 현실 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보다는 권력의 안전과 강화를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며, 그 조직 안에서 나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부여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를 하는 행동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회당 당원입니다. 차별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당, 일상적 연대로 나눔을 실천하고,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불철주야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지난 2009년 11월 개정한 사회당의 강령에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 군비축소, 국외파병의 금지와 함께 대체복무제의 도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회당의 당원으로서 저에게 지워진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고자 합니다.

 

대학시절 대학생정치조직인 대학생사람연대의 1기 대표를 맡았었습니다. 대학생사람연대는 '가장 낮은 곳을 향하는 연대'라는 슬로건을 걸고 끊임없이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이른바 '배제적 통합'에 반대하며, 모든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국가의 수립을 요구하며, '53년 체제'라는 정전협정이후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만들어 사회를 지배해 온 구조를 해소하고,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체제를 수립할 것,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인정 등을 강령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생사람연대의 회원으로서, 1기 대표로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병역거부의 길을 선택하면서 가장 저를 망설이게 했던 것은 감옥에 가는 것도, 사회적 편견도 아닌 부모님께 드릴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한평생 자식을 아끼며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자신의 몸을 돌보시기 전에 자식을 먼저 살피며 한 평생을 살아오신 것을 알고 있기에 부모님께 드릴 상처가 너무도 죄스러웠습니다. 제 스스로가 아무리 당당하다 하더라도 감옥에 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부모님께는 죄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미웠습니다.

 

입대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저는 무거운 입을 부모님께 열었습니다. 부모님은 화도 내시고, 부탁도 하시며 저를 말리셨고, 어머니께선 많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눈물을 보며 저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배운바 대로 착하게 살고자 하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아끼는 양심이, 이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 선택이라는 말씀을 드리자 어머니께선 당신께서 저를 잘못 가르쳤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나빠도 평범하게 사는 것을 가르칠걸 그랬다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그 가르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감옥에 가야하는 이유가 제가 특별한 놈이라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아직 개인의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지켜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내내, 그리고 부모님의 만류를 듣는 내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포기 할까하는 망설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내 양심을 속이고, 내 양심이 죽어가는 시간이 저를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지 알기 때문이고, 그 결과가 어떤 결말로 치닫게 될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도, 부모님도 서로를 설득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마음이, 그 상처가 저를 사랑하고, 걱정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다녀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적응하여 사는 것이 제게 불안한 요소가 줄어들 것이라 믿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은 비록 힘들더라도 부모님께서도 제가 당당히 양심과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기계는 입력된 대로,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그 요구가 옳고 그른지, 자신의 양심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판단을 하며 행동을 합니다. 저는 기계가 아니기에 사람인 나로서 할 수 없는 것들, 군사훈련과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군대의 일원이 되는 것, 그리고 내 양심과 신념을 벗어난 행동을 명령받고 행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내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한 인간으로서 병역을 거부합니다. 긴 시간 고민을 하는 제게 많은 조언과 응원, 염려를 해주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계시기에 저는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걱정해주시고, 비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김영배


태그:#병역거부, #김영배, #양심, #군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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