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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째 걷고 있다. 아침 일찍이라 덥지 않고 바람도 분다. 지나가는 차가 일으킨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만 빼면 괜찮다. 케냐 온지 일 주일, 몸도 마음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제보이 어머님께 물어 제보이 다니는 학교에 가는 길이다. 제보이도 봐야겠고, 친구도 나도 한국에서 장애가 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터라 케냐 특수학교는 어떨까 궁금해 나섰다. 1시간 30분 동안 마타투(케냐 대중교통) 타고 민딜릴루와(MINDILILWO) 특수학교가 있는 이튼지역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학교까지 걷는데 복장을 제대로 갖춘 러너가 여럿 지나간다. 이튼 지역에 러너들 훈련하는 학교가 있어 유독 러너들이 많다고 한다. 문 열고 나가면 마라톤 코스가 펼쳐지는 케냐, 꿈을 안고 뛰는 그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케냐 이튼 지역엔 러너들 훈련 학교가 많아 곳곳에서 러너들을 볼 수 있다. 꿈을 안고 뛰는 그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 케냐 러너들 케냐 이튼 지역엔 러너들 훈련 학교가 많아 곳곳에서 러너들을 볼 수 있다. 꿈을 안고 뛰는 그들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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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연락처 알 길이 없어 불쑥 찾아가는 길이다. 실례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염려였나 보다. 교문 열어 주시는 분을 시작으로 모든 분들이 우릴 반겨주셨다. 제보이를 기다리는 동안 수업이 없는 한 선생님 안내로 학교를 돌아봤다.

기숙사는 아주 깨끗했다. 아이들이 기숙사 정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숙사엔 아이들 챙겨 주시는 분이 계신다고 했다. 손끝이 살뜰한 분이 분명하다. 나무로 불 지펴 음식 만드는 학교 식당, 힘 좋아 뵈는 남자 두 분이 요리하고 계셨다. 재료는 식당 밖 텃밭에서 얻는다. 물자가 귀하니 필요한 것들은 웬만하면 자급자족한다. 텃밭 옆에 땅을 깊이 판 구덩이가 보여 뭐하는 곳이냐 했더니, 물 받아 물고기 키울 곳이란다. 먹을 물도 없는 판에 물고기 키울 생각을 하다니 좀 엉뚱하다 싶었는데, 그걸 완성하고 나면 옆에 수영장을 만들 거란다. 얘기 해 놓고 선생님도 머쓱했는지 웃으신다. 내리쬐는 햇볕 피해 풍덩 빠져 놀 수영장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나도 그 계획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했다.  

 아이들이 기숙사 정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숙사 정리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단다. 누구신지 알뜰한 손길이 느껴진다.
▲ 말끔한 기숙사 아이들이 기숙사 정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숙사 정리하시는 분이 따로 계신단다. 누구신지 알뜰한 손길이 느껴진다.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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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좋아 뵈는 남자 두 분이 장작 피워 요리하신다. 재료는 식당 밖 텃밭에서.
▲ 학교 식당 힘 좋아 뵈는 남자 두 분이 장작 피워 요리하신다. 재료는 식당 밖 텃밭에서.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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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둘러보는데 쉬는 시간인지 시끌시끌하다. 얼굴색이 달라 눈에 띄는 우린 영락없이 아이들 구경거리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아이들 눈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인사하고 손 흔들었더니 좋다고 낄낄거린다. 우린 서로가 재밌는 모양이다. 그 싱거운 놀이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니 말이다. 지켜보던 선생님 중재로 놀이를 중단하고 제보이가 공부하는 교실에 갔다.    

친구는 반가운 마음에 말 거는데, 자폐성 장애가 있는 제보이는 친구를 모른 척?^^
▲ 제보이와 친구의 재회 친구는 반가운 마음에 말 거는데, 자폐성 장애가 있는 제보이는 친구를 모른 척?^^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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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이를 만난 반가움에 펄쩍 뛰는 친구가 무색하게 제보이는 별 반응이 없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제보이에겐 너무나 자연스런 행동. 하늘 아래 이런 짝사랑이 또 있을까 싶다. 두런두런 제보이와 얘기 나눈 후 아니 제보이에게 얘기 들려 준 후 수업 시간이라 교실을 나왔다.

학교를 떠나기 전 선생님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케냐 특수교육 현황을 소개해 주셨고, 한국 특수교육에 관해 물으셨다. 안 되는 영어지만 알려 드리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했다. 모임 마치기 전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셨다.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엉성한 영어로 말했다.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랬다. 

'케냐까지 와서 동지를 만나다니 완전 좋아요! 사람들이 그래요. 멀쩡한 애들 가르치기도 힘든데, 그 아픈 애들 가르치려니 얼마나 힘드냐고. 하지만 우린 그 아픈 애들 안 가르치는 게 힘든 사람이에요. 그렇죠? 지치지 말고 이 길 가요! 선생님들은 케냐에서 우린 한국에서요.'

 케냐 민딜릴루와 특수학교 선생님들
 '지치지 말고 이 길 가요! 선생님들은 케냐에서 우린 한국에서요.'
▲ 케냐 동지들 케냐 민딜릴루와 특수학교 선생님들 '지치지 말고 이 길 가요! 선생님들은 케냐에서 우린 한국에서요.'
ⓒ 변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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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난 길고도 짧게 제자를 만났다. 어렵고 힘든 살림에 장애가 있는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먹고 살 길 걱정인 나라에서 장애 학생을 어떻게 교육할까 싶었다. 장애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절박하지 않지만, 생명은 모든 것을 뛰어 넘는다. 생명 앞에 두고 먹고 살 일만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봉지 가득 먹을 걸 나눠 주시는 어머님 손에, 마실 물 부족해도 아이들 수영장 만들 꿈꾸는 선생님 손에 제자가 자라고 있다. 거기 동지가 있다.


태그:#케냐여행기, #케냐특수학교, #케냐특수교사, #민딜릴루와특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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