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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G 번호 이동이 차단된 01X 이용자들에게 스마트폰이나 3G 영상폰들은 그림의 떡이다.
 3G 번호 이동이 차단된 01X 이용자들에게 스마트폰이나 3G 영상폰들은 그림의 떡이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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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를 지키면서 금전적 손해 당연히 봤습니다. 그런데 상관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이니까요. 이 번호에는 첫딸이 나왔을 때의 상황을 가족에게 전해준 기쁨, 처음으로 사업 시작해서 물량 수주했을 때의 환희, 계속적으로 나를 찾고 이용해주는 고객 분들에 대한 신용이 녹아 있습니다. 통합 정책 철회해주시고 쓰던 번호 계속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01X 사용자 93% "쓰던 번호 바꾸지 않겠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대표 서민기)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제출할 청원서에 지난 9일 011 사용자 임아무개씨가 올린 글이다. 16일 현재 320여 명에 이르는 서명인들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소원만은 한결같다. 짧게는 10년 남짓, 길게는 20년 가까이 써온 휴대폰 번호를 계속 쓰게 해달라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010으로 바꾸지 않고도 2G 폰에서 3G 영상폰이나 스마트폰으로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신규 가입이나 3G 전환 시 010 번호 사용을 의무화한 번호통합정책에 힘입어 올해 1월 말 010 이용자가 전체 80%를 넘겼지만 011, 016, 017, 018, 019 등 이른바 '01X' 번호를 유지하는 이들도 1000만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93%는 번호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010 번호통합 정책 토론회'를 앞두고 한국정보통신연구원(KISDI)이 1년 만에 외부에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다.

지난해 4월 서울 등 6대 도시 이동전화 이용자 1800명(010 720명, 01X 1080명)을 대상으로 010 번호통합에 대한 성향을 조사한 결과 번호 변경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나타났다. 특히 017 번호 이용자 77%는 번호를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01X 이용자 61%는 '010 번호 통합'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010으로 번호를 바꾼 이용자들 역시 50%가 불편을 호소했다. 

이에 한국YMCA전국연맹은 하루 전 "번호이동성 제도가 성공적으로 시행되면서 번호 브랜드화 문제와 특정 식별번호의 시장지배력 전이 방지 등 정책 목표가 이미 달성됐다"면서 010 번호통합 정책 폐기를 촉구했다.   

16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010 번호통합 정책 토론회'
 16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010 번호통합 정책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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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통합'은 없지만 번호통합정책은 불가피?

방통위와 이통3사 실무자가 모두 참석한 이날 정책토론회에서 이런 이용자들의 바람은 사업자와 정책자 논리 앞에 외면당했다.

발제를 맡은 김봉식 KISDI 책임연구원은 "번호 통합의 긍정적 효과는 정책 수립 당시에 비해 감소"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통합 폐지는 정책 일관성 및 정책당국 신뢰 훼손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우려된다"면서 번호통합 정책 유지의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한번 정해진 번호를 바꾸기 힘든 이용자 성향을 무시하면서까지 추진된 '번호통합정책'의 원인 제공자 역시 정부였다.

애초 휴대폰은 단일 식별번호를 써야 했지만 SK텔레콤, 신세기통신(SKT에 합병), KTF(KT에 합병), LG텔레콤, 한솔PCS(KTF에 합병) 등 5개 사업자에게 각각 별도 식별번호를 부여한 게 화근이었다. 이후 사업자들의 식별번호 브랜드화 경쟁으로 특정 사업자에 가입자가 쏠리는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는 뒤늦게 번호이동성제도와 010 번호통합 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정부에선 번호를 통합하면 외울 번호가 8자리로 줄어드는 '이용자 편익'과 한 번호당 8천만 개씩 4억 8천만 개에 이르는 '번호 자원 효율성' 문제도 함께 내세웠지만 '정책 실패'에 더 무게가 쏠렸다.    

2004년 당시 정보통신부는 5개로 나뉜 2G 번호 '01X'를 010으로 통합하면서, 010 전환율이 80%에 이른 시점에서 '완전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통부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방통위는 일단 '강제 통합'은 오해라며 신중한 모습이다.

이날 박준선 방통위 통신자원정책과장도 "전환율이 80%에 이르면 강제 통합한다는 건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전문가 연구, 이용자 설문 통해 번호 통합 여건을 검토한 후 세부 시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SKT "점진적 통합" - KT·LGT "조속한 통합" 엇갈려

이날 KISDI는 ▲ 이용자 기준으로는 시장 자율에 의한 자발적 번호 전환이 중단되는 시점, 즉 가입자들의 자율 전환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는 전환율 상승폭 1%p 미만일 때 ▲ 사업자 기준으로는 2G망에 비효율이 발생하는 시점을 '완전 통합' 시점으로 제시했다.

통신사업자들의 견해는 크게 엇갈렸다. 대체로 번호 통합 정책 자체에는 찬성하면서도 SKT가 시기를 못 박지 않은 점진적 통합 안을 제시한 반면 SKT의 2G 장악력을 경계한 KT와 LGT는 급진적 통합 안을 제시했다. 
   
SK텔레콤 정책개발그룹장 하성호 상무는 "번호통합 폐지는 3G에서도 01X 사용을 가능하게 해 사업자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점진적으로, 가입자 이익과 의사를 감안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 상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줄어들 텐데 성급하게 시점을 정해 통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숫자로 50만 명 정도 남게 되면 정부와 같이 설득 노력을 통해 통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KT 사업협력담당 공성환 상무는 "KT의 경우 2G 이용자가 최대 250만~260만 정도인데 망 이용에 비효율성을 초래해 2G 사업 조기 종료가 불가피하다"면서 조속한 '강제 통합'을 주문했다. 다만 강제 통합의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 기존 번호변경안내서비스와 별도로 01X 번호와 010 번호를 한시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번호변경표시서비스'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통신사업자 주장이 갈리자 김진기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번호 통합도 정부가 직접 나설 게 아니라 사업자별로 각자 비즈니스 전략에 맞게 추진하게 하고 정부는 남은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봉식 연구원 역시 "번호통합 이용자 파급 효과 면에서 번호변경안내서비스 무료화와 단말기 보조금이 가장 컸다"면서 "차세대 서비스가 나왔을 때 번호통합정책 기조에 맞춰 제도 개선을 통해 이용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010 번호통합 정책 토론회'는 평일 낮에 열린 데다 일반에 홍보가 덜 된 탓에 일반 참가자보다는 관련 사업자나 정책 관계자들이 많았다.
 '010 번호통합 정책 토론회'는 평일 낮에 열린 데다 일반에 홍보가 덜 된 탓에 일반 참가자보다는 관련 사업자나 정책 관계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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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X로도 3G·스마트폰 이용할 수 있게 해야"

소비자를 대표해 토론에 참석한 임은경 한국YMCA전국연맹 소비자팀장은 "010 변경 이용자 50%가 불편을 호소하는데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면서 번호 통합을 꼭 해야 하는지 국민에 대한 설득이 있어야 한다"면서 "01X 이용자들도 3G로 가고 싶어 하는데, 3G가 꼭 010이어야 하는지도 고민해 달라"고 제안했다. 

IT회사를 운영하며 01X 번호 유지를 위해 휴대폰 4대를 쓴다는 정원석(36)씨 역시 방청인 발언에서 "번호 때문에 3G 못 쓰는 사람들은 스마트폰 쓰려고 따로 신규 가입해 착신전환 서비스로 전화를 받고 있다"면서 번호통합정책 때문에 통신 비용이 이중 삼중 들어가는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이날 사업자 중심의 토론에 큰 실망감을 나타낸 서민기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대표는 "010 번호 강제 변경을 막기 위해 집단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법리상 번호를 '공물'로 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애초 정책 목표였던 특정 통신사 독점을 막아 취지를 완성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전용권을 개인에게 부여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태그:#010번호통합, #011,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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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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