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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봉촌집 마당
▲ 3월의 봄눈 눈 내린 봉촌집 마당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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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봄도 있었던가? 3월의 봄은 이미 중순을 넘어섰지만 며칠 간격으로 내려대는 눈과 비로 농촌은 지금 일손을 놓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던 경운기 소리는 잠들고 있고 감자와 온갖 씨를 뿌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손은 할 일을 못 찾고 있다. 각종 농자재 값의 인상으로 희망 없는 농사라도 지어야 하는 농민들은 요즘의 기이한 날씨를 보면서
'하늘도 이제는 농사를 짓지 말라는 건가'라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도시처럼 다양한 문화와 정보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 시골에서 할 일 없는 농민들의 시간 때우기는 그야말로 고역에 가까울 정도다. 마음은 밭에 가있지만 몸은 방안에 있거나 이웃과 함께 심심풀이 화투 정도. 아니면 답답한 심사를 술로 풀다가 몸마저 피로해지곤 한다.

마을 끝에서 800미터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첫 해의 겨울, 우리 가족 역시 눈 때문에 신고식을 톡톡하게 치르고 있다. 도시에서는 손바닥만한 마당눈 치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곳 산골에서는 엄청난 양의 눈을 치워야 했다. 그나마 많은 눈이 내릴 때마다 트랙터로 치워주는 고마운 주민 덕에 고생을 덜 수 있었다.

대한민국 시골 대부분 분리수거는 유명무실

이렇게 요즘 눈과 비로 답답한 산골의 마을에 가슴 뿌듯한 일이 일어났다. 귀농 후 3년 차에 집을 짓고 이사한 마을은 경북 상주시에서도 70리 떨어진 화서면 봉촌리 앞재라고 불리는 20호 정도의 가구가 어울려 사는 마을이다. 대다수가 60~70대 이상의 고령이고 40대는 3~4명으로 쌀과 포도 농사, 곶감을 주로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주민들 모두가 부지런하고 농토가 많아 면에서는 부자마을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시골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 역시 생활쓰레기의 분리수거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 2년간 살았던 건너 마을 역시 집집마다 생활쓰레기를 집에서 태우는 게 일상이었다. 주변과 행정당국의 눈치 때문인지 주로 밤에 태우는데 그 때마다 유독성 냄새가 시골의 맑은 공기를 덮어버리곤 했다.

말하기 편한 젊은 이웃들에게 분리수거의 필요성을 강조해도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귀찮게 그걸 어떻게 모아서 분리하냐'는 투로 넘어가곤 했다. 플라스틱, 페트병, 비닐, 심지어는 유리병까지도 모조리 불로 태워버리면 된다는 편리한 습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었다. 그렇게 태우곤 난 잔해는 보기에도 흉칙스러웠지만 무관심 속에 그대로 방치되었다.

새로 이사 온 마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집집마다 집 앞 별도의 장소에다 생활 쓰레기를 태워왔고 다니는 길가에 방치된 시커먼 쓰레기의 잔해는 보기에도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이미 땅은 제초제와 농약, 비료 등으로 오염되고 있지만 시골만의 강점인 맑은 공기마저 쓰레기를 태워 오염시키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귀농 전 도시에서 이미 분리수거에 익숙해 있었기에 시골에서의 관습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분리수거에 대한 시골 주민들의 불편스러운 눈치 때문에 대놓고 강조하기도 힘들었다.

힘은 들어도 보람된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져

그러던 차, 우리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여 앞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젊은 사람들이 뭔가 변화되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마을 쓰레기의 분리수거를 제안했으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태우는 데 익숙해진 주민들이 불편할 거라는 의견이 주를 이뤄 더 이상은 진전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을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는 쓰레기를 현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접을 수는 없었다.

몇 차례의 모임을 가진 후 이제 뭔가 작은 일이라도 시작을 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모임의 중추 역할을 하던 주민이 분리수거를 시작하자는 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너무도 반갑고 귀가 확 열리는 말이었다. 시골에 살면서 가장 개선을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드디어 때가 왔구나'라는 감격까지 들었다. 

먼저 그동안 길가와 도랑에 방치된 쓰레기를 수집하고 쓰레기 태운 잔해들을 수습한 후 마을회관과 입구 두 곳에 쓰레기 분리수거함을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매주 돌아가며 젊은이들이 관리당번을 맡아 분리수거를 책임지고 봉사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분리수거에 앞서 도랑에 방치된 쓰레기들을 줍고 있다
▲ 분리수거 사전 작업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분리수거에 앞서 도랑에 방치된 쓰레기들을 줍고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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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촌리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의 역사적인(?) 첫날, 오전의 황사에 이어 세찬 바람이 몰아쳤지만 우리들은 약속대로 마을회관 앞에 모여 환경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포클레인이 고장나는 바람에 집게를 들고 먼저 도랑가에 방치된 비닐, 병 등의 쓰레기 제거 작업부터 시작했다.

주민 한 분은 정말 힘든 일을 시작했다며 너무 좋다고 호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은 오후부터 눈발이 거셌지만 다시 모여 태우고 방치된 쓰레기 잔해들을 포클레인으로 수습하고 주변 정리 작업을 마쳤다. 봄같지 않은 매서운 날씨에 장화 신고 도랑에서 오래된 쓰레기들을 치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의 눈빛에선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우리는 마을 회관에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앞으로의 진행과정에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임할 것을 다짐했다. 마을 어른들도 조금은 갑작스런 변화에 약간은 놀라는 기색이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젊은이들이 나서서 봉사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해주었다.

귀농하면서 때가 되면 내가 사는 마을을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어 왔다. 아름답다는 뜻이 서로가 다를 수는 있어도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의 참모습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의 변화를 일구고 나는 밀알이 될 수만 있다면 나의 힘든 귀농생활에 힘찬 활력소가 되리라 생각해 본다. 오늘 아침 또 눈이 내려 창밖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태그:#귀농, #분리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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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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