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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밀수출

 

.. 당시 아편은 주로 인도에서 재배되어 중국으로 밀수출되었다 ..  <조너선 D.스펜서/김석희 옮김-칸의 제국>(이산,2000) 139쪽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고, '주(主)로'는 '거의'나 '거의 모두'로 다듬습니다. '재배(栽培)되어'는 '길러'나 '키워'로 손질해 줍니다.

 

 ┌ 밀(密)- : x

 ├ 밀수출(密輸出) : 세관을 거치지 아니하고 몰래 물건을 내다 팖

 │

 ├ 중국으로 밀수출되었다

 │→ 중국으로 몰래 수출되었다

 │→ 중국으로 조용히 수출되었다

 │→ 중국으로 슬그머니 수출되었다

 └ …

 

'密-'을 붙이는 한자말이 제법 있는데, 국어사전에 이 말을 앞가지로 올리지는 않습니다. 퍽 뜻밖이라 할 만하지만, 다른 눈길로 헤아린다면 우리가 '密-'이라는 앞가지까지 굳이 쓸 까닭이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이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면 '밀'이라는 항목에서 '야드파운드법 길이 단위(mill)'하고, 영국 철학자 '밀(Mill)'에다가, 영국 경제학자로 또다른 '밀(Mill)'이라는 이름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이 '인명사전'이 아닙니다만, 서양 인명사전 또한 아닙니다. 국어사전이란 사람들이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쓰도록 도우며 이끄는 길잡이책입니다. 쓸데없는 낱말과 서양사람 이름까지 모조리 올려놓는 오사리막찌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삶터에 걸맞고 우리 넋에 알맞춤한 국어사전 하나를 곁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터전을 북돋우고 우리 얼을 살찌우는 낱말책 하나를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주어야 합니다.

 

 ┌ 중국으로 몰래 내다 팔았다

 ├ 중국으로 조용히 내다 팔았다

 ├ 중국으로 슬그머니 내다 팔았다

 └ …

 

  보기글에 쓰인 '밀수출'이라는 낱말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이 낱말을 그대로 쓴다고 해서 잘못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좀 더 알맞고 쉽고 바르며 좋은 낱말을 일구고자 마음쓰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생각을 기울여 본다면, '밀수출'이 아닌 '뒷수출'을 생각할 수 있고, '몰래수출'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어요.

 

몰래 하는 사랑이라면 '몰래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몰래 담가서 마시는 술이라 할 때에도 '몰래술'이라 할 수 있겠지요. '밀거래'란 다름아닌 '뒷거래'입니다. 또는 '몰래거래'입니다.

 

우리 낱말 '뒷-'과 '몰래-'를 알뜰살뜰 헤아리며 보듬을 수 있다면, 우리 느낌을 살리고 우리 마음을 다독이며 우리 생각을 일으켜세울 알차고 고운 낱말을 새록새록 일굴 수 있습니다.

 

ㄴ. 밀반입

 

.. 강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책을 저술하여 한국에 밀반입하고 있어 ..  <송건호-민족통일을 위하여>(한길사,1986) 56쪽

 

 '민족의식(民族意識)' 같은 말을 쓰는 일이 나쁘지는 않으나 '겨레얼'로 다듬으면 한결 좋습니다. '강(强)한'은 '짙은'이나 '거센'이나 '다부진'이나 '야무진'이나 '튼튼한'이나 '단단한'이나 '당찬'으로 손봅니다. '저술(著述)하여'는 '써서'나 '써내어'로 고칩니다.

 

 ┌ 밀반입(密搬入) : 물건 따위를 몰래 국내로 들여옴

 │   - 국내에 밀반입된 총기류 / 국내로 밀반입된 마약

 │

 ├ 한국에 밀반입하고 있어

 │→ 한국에 몰래 들여오고 있어

 │→ 한국에 조용히 들여오고 있어

 │→ 한국에 남몰래 들여오고 있어

 └ …

 

한자말 '密搬入'을 뜯어보니, '몰래(密) + 들여오다(搬入)'로 이루어져 있군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몰래 들여오다'라고만 써도 넉넉합니다. 아니, 처음부터 '몰래 들여오다'라고 썼다면 한결 나았을 테며, 오늘이든 앞으로든 '몰래 들여오다' 한 마디면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낱말로 '밀반입'이라고 지은 말얼개를 살피며 '몰래 + 들이다'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몰래들이다'나 '몰래들이기'처럼 써 볼 수 있겠지요. '몰래 + 받다'처럼 낱말을 엮어 '몰래받다'를 이야기할 수 있고, '몰래 + 쓰다'처럼 낱말을 엮으며 '몰래쓰다'를 말할 수 있습니다.

 

'몰래하다'나 '몰래먹다'나 '몰래듣다'나 '몰래보다'나 '몰래다루다' 같은 낱말을 하나하나 지으면서 우리 말밭을 알뜰살뜰 일구어 본다면 더욱 좋으리라 봅니다.

 

ㄷ. 밀입국

 

..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할매는 엄마, 엄마의 두 오빠, 여동생을 데리고 할배를 찾아 일본으로 밀입국했다 ..  <유미리/김난주 옮김-물가의 요람>(고려원,1998) 13쪽

 

'2년(二年)'은 '두 해'나 '이태'로 다듬습니다. 우리 말은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이지만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처럼 쓰는 분이 꽤 많습니다. 토박이 숫자말과 한자 숫자말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굳이 한자 숫자말로 적바림하지 않아도 될 자리에 '일 년 이 년'처럼 써 버릇하면서, '이태' 같은 말마디는 시나브로 자취를 감춥니다. 이와 맞물려 '올해'와 '지난해'와 '이듬해'와 '다음해' 같은 말마디 또한 쓰임새를 빼앗기거나 잃습니다.

 

 ┌ 밀입국(密入國) :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몰래 국경을 넘어 들어옴

 │   - 우리나라에 밀입국하다

 │

 ├ 일본으로 밀입국했다

 │→ 일본으로 몰래 들어왔다

 │→ 일본으로 몰래 넘어왔다

 │→ 일본으로 몰래 건너왔다

 └ …

 

'몰래'를 앞가지로 삼는 한 낱말이라면 '몰래들어가다'입니다. 이와 같이 한 낱말을 새롭게 써 보아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한 낱말로 삼지 않고 '몰래 들어가다'처럼 써도 괜찮습니다. '몰래 넘어오다'나 '몰래 건너오다'처럼 써도 괜찮아요. 온누리 온갖 일을 모조리 한 낱말로 지어서 가리킬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두어 낱말이나 서너 낱말을 엮는 관용구를 빚을 수 있어요. 어떠한 모습을 빗대는 상말을 쓸 수 있습니다. '돕다'라는 한 낱말을 쓰고 싶다면 이처럼 한 낱말을 쓰고, '서로돕다'처럼 꾸밈말을 붙이는 새 낱말을 쓸 수 있으며, '종잇장도 맞들면 낫다'처럼 상말을 쓸 수 있습니다.

 

말을 살리는 길은 갈래갈래 있습니다. 글을 북돋우는 길 또한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말을 살리지 않고 글을 북돋우지 않기 때문에, 좋은 길이든 아름다운 길이든 멋진 길이든 알찬 길이든 제대로 붙잡거나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우리 멋을 살리면서 우리 말을 할 수 있으면 더없이 반가울 텐데, 우리는 아직 우리 멋을 살리는 말멋을 살피지 않습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맛을 살찌우면서 우리 글을 쓸 수 있으면 그지없이 좋을 텐데, 우리는 아직 우리 맛을 살찌우는 글맛을 돌보지 못합니다.

 

아직은 섣부른 이야기일는지 모르고, 앞으로 퍽 힘든 일일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날마다 한 낱말씩 가다듬고 두 낱말씩 사랑하면서, 차근차근 북돋우고 다스리는 말이 되고 글이 되면 기쁘겠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부터 앞으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한테 해맑게 빛나는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말글을 이을 수 있도록 땀을 쏟고 힘을 바치는 우리들로 거듭난다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태그:#외마디 한자말, #한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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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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