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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26일 밤 서해 백령도 서남방 1.8㎞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옹진군청 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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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증언'을 통해 "우리 공동체에 심대한 영향을 주는 퇴영적 행태와 모순이 누적되어 분출되는" 재앙의 징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예로 권력에 도취·중독된 권력 주변 인사들의 오만한 발언과 행태를 들면서 '큰집 조인트' 발언의 주인공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과,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원에 출마하는 자신의 딸에게는 '잘 해보라'면서도, 여성 취업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현모양처가 여성의 길이라고 외친 '한 입 두 말'의 MB 멘토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경우를 들었다. 그리고 '신뢰'와는 거리가 먼 사례로 BBK와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 후보시절의 동영상 발언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신뢰의 붕괴', 천안함 참사 이후

그 뒤 초계함 천안함의 참사가 일어났다. 대형 사고가 대부분 그렇듯, 천안함 참사 역시 지금 우리 시대의 온갖 문제와 모순이 응집되어 나타났다. 그 한 가운데는 바로 정부와 군 당국의 발표나 설명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참사 이후 나온 각종 발언과 수시로 바뀌는 설명은 불신의 벽을 더욱 더 깊게 하였다.

천안함 참사 이후 나온 '신뢰의 붕괴'를 한번 보자. 수시로 말이 바뀌고, 설명이 바뀌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말이 엇갈리고, '북한 개입설'과 관련하여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불신과 의혹, 혼란이 더 가중되어 왔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배에 구멍이 났다는 '파공'에서, '선체 절단'으로 바뀌었고, 사고 발생 시각은 오후 9시 45분→ 9시 25분→ 9시 30분→ 9시 22분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열상관측장비(TOD)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40분 정도의 촬영 분량을 왜 1분 20초짜리 편집본으로 처음 발표했는지, 그리고 없다던 촬영분이 7일 발표에서 다시 또 나온 이유에 대해 국방부의 설명은 오락가락했다.

천안함이 사고 해역으로 항해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동안에도 15번 이상 초계함이 오간 작전지역"(김태영 국방장관), "북한에 대비해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국방부), "풍랑이 세서 피하려고"(국방장관). "피항과 경계작전이 동시에 이뤄진 것"(국방부) 등 몇 번이나 말이 바뀌었다.

속초함의 76mm 함포사격은 "구조작업을 위한 조명탄과 새떼로 추정되는 물체를 향한 경고 사격", "고속 북상하는 미확인 물체를 적 함정으로 판단한 격파 사격", "새떼로 추정되는 물체 공격"으로 오락가락했다. 함수 부분 부표 설치와 관련해서도 처음에는 "설치했으나 강한 해류에 끊어졌다"고 설명했다가 많은 의혹이 제기되자 "뱃머리에 접근할 수가 없어 해경에 부이 연결을 부탁했다"고 바뀌었다.

'어선이 발견한 함미'가 뜻하는 것

해저에 있는 천안함 함미를 누가 처음 발견했는가 하는 문제는 군의 위기 대응 능력, 군의 신뢰성 등 이번 참사 이후의 사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군은 처음에는 음파탐지기를 갖고 있는 해군의 기뢰탐지함인 옹진함이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민간 어선 해덕호 선장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군은 말을 바꾸었다. "대한민국 바다는 어부들이 지키느냐. 어떻게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군이 (가장 중요한 이틀 동안) 함미도 찾지 못했느냐"는 실종자 가족의 외침은 처절했다.

'북한 관련설'에 대해서는 국방장관의 설명이 하도 왔다 갔다 해서 도대체 군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북한군 동향이 무엇인지조차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군사정보의 독점적 우월로 인해 한국이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미국조차 "구체적 증거가 없다" "북한군 동향에 특이 상황이 없다"며 잇따라 부인하는데도 북한 관련설은 온갖 형태로 계속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어뢰의 가능성이 더 실질적"이라는 김태영 국방장관 발언이 청와대 VIP(대통령 지칭)에 의해 브레이크 걸리는 쪽지가 전달됐다. 이 쪽지가 공개되어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발언을 '마사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청와대에서는 국방비서관의 말이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발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발언을 '마사지'한 일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이번에는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대통령을 '참칭'했다는 이야기다.

천안함 참사 이후 각종 현안들에 대해 이처럼 수시로 바뀌는 설명과 발언은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놓았다. 여기에다 "해군의 초동 대응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초기 대응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낱낱이 밝혀지면서 대통령의 상황인식 능력과 그의 '말'에 대한 신뢰를 땅바닥으로 추락시켰다.

대통령의 세종시 발언, 명백한 '신뢰 파탄'의 증거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천안함 침몰로 소집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화면을 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천안함 침몰로 소집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화면을 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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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붕괴'는 천안함 참사 이전부터 정권 상층부에 심각하게 있었다. 가장 상징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뒤집기 발언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서울 봉은사 명진스님 관련 발언 ▲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각종 현안에서 보여온 이중성이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관련 발언을 한번 보자. 대통령 후보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세종시 원안 추진'을 약속했다. 

"이미 시작한 일이므로 바꿀 생각은 없다"(2006.12.13. 충북대 특강)
"중도에 계획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를 행정기능과 함께 과학, 산업, 문화 등의 기반시설이 함께 하는 자족능력을 갖춘 도시로 육성할 것이다"(2007.8.2. 오송역 방문)
"훌륭한 계획인 것 같다. 서울시장 시절엔 반대했지만 기왕 시작된 것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빨리 더 크게 해놓겠다. 행복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2007.9.12. 행복도시건설청 방문)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2007.11.27. 대전 유세)
"대통령이 되면 행정도시 건설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2007.11.28 행복도시건설청 방문)
"행정도시를 누가 축소할 것이라고 하던가. 행정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다. 그래서 행복도시건설청장과 본부장도 안 바꾼 것이다"(2008.3.20. 충남도 업무보고)
"부처 통폐합 때문에 몇 개 부처가 줄어들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행정부처 이전에) 변함이 없다"(2008.5.2. 청와대 시·도지사 회의 후 충남 지사에게)
"당초 계획대로 진행 중이고, 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2009.6.20. 청와대 여야 대표 회동) (이상 <경향신문> 2009.10.19일자에서 인용).

이 수많은 발언의 주인공이 그뒤 어떤 이야기를 해왔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올 1월 11일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와 교육과학경제도시로 추진한다는 이른바 '세종시 수정안'이 공식 발표된 날,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고심 끝의 결단" "지역 특성에 맞춘 차별화된 발전과 지역성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2009년 12월 17일 이명박 대통령은 과천 중앙공무원 교육원에서 있었던 '장차관 워크숍'에서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며 세종시 수정 의지를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말 바꾸기에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과 경제정책비서관, 재정경제부 차관 등을 지내면서 세종시 원안 작성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장관급)의 기회주의적 강성 발언은 땅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아예 땅에 묻어버리는 구실을 했다. 그는 세종시 원안 추진은 "국민과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 "세종시 원안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적용한 도시" 등의 해괴한 발언을 계속했다.

나라의 최고 책임자와 고위 인사들이 이처럼 쉽게 말을 뒤집는 상황에서 '신뢰'라는 말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언어폭력'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러 내용의 발언을 했는데 그 가운데 다음 내용이 특히 눈에 띄었다.

"우리 사회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 상대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이 최소한의 금도도 없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그의 '좌파 타령'이 부쩍 심했고,  그의 이런 '언어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인격이 적지 않았다.

"좌파 성향 판사가 사법부의 핵심 개혁 대상이다."(1월25일)
"비상식적 판결이 사법부에서 계속 생산되고 있다. 국가 중추기관이 더 이상 이념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좌파 정권이 박은 대못을 뽑아내야 한다."(2월19일).
"(좌파) 이념교육이 아동 성폭행을 발생시킨다."(3월16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6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6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송영길 민주당 최고위원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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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서울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지목하며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놔둬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하니, 그의 '언어폭력' 대상은 거의 전방위적이었다. 지금 천안함 참사로 묻혀 버린 듯한 명진 스님 '운동권 좌파 파동'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정권의 종교 장악 시도, 정·교 유착 내막은 반드시 실체를 밝혀야 한다. 이 사건은 발단과 그 뒤의 전개과정, 봉은사의 조계종 직영사찰 지정 시기, 명진 스님 폭로 뒤에 벌어진 안상수 원내대표의 거짓 해명 등 참으로 괴이한 대목이 한 둘이 아니다. 서해 바다 속으로 이 사건이 묻히지 않기 위해 사건을 재구성해본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13일 정기국회가 개원하는 날 아침, 서울 프라자 호텔 식당 모임에서였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 대표, 국회 문방위 위원장인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이 모임을 주선한 김영국 거사(조계종 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 등 네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템플스테이 등 불교지원 예산 문제가 모임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니 돈줄을 쥐고 있는 여당 주요 인사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범상할 수 없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나둬서야 되겠느냐" "용산 참사 1억 갖다 준 것을, 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성격은 뻔한 것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안상수 대표는 딱 잡아뗐다.

"황당한 이야기" "좌파 이야기 한 적 없다" "명진 스님을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 "세 사람이 만났다" (그 자리를 주선한 김영국 거사가 함께 자리했는지에 대해) "넷이 아니라 세 사람이 식사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바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4인 회동을 주선한 김영국 거사가 3월 23일 기자회견에서 그렇게 밝혔다. 김영국 거사는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손학규, 고흥길 의원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명진 스님의 발언은 모두 사실이며, 지난해 11월13일의 만남은 내가 주선해서 이뤄졌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석했다"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인 스님인 명진 스님을 향해 '운동권', '좌파'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안상수 대표가) 부인한다고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MB 말뒤집기, #안상수, #KBS, #재앙의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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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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