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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고개 벚꽃 길
 안민고개 벚꽃 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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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만발했다. 한동안 때 아닌 추위에 몸을 움츠려야 했던 벚나무들이 요 며칠 날이 따뜻해지면서 가지에 한껏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예년의 꽃피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준비했던 지자체들도 비로소 웃음꽃을 피웠다. 진해시도 그중 한 곳이다.

하지만 관광객은 예년만 못하다. 한 마디로 '분위기가 이런데 누가 찾아오겠어?'다. 그 이면에 어쩔 수 없이, 피해 아닌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상인들이 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저 '허허허'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사실 요즘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그래도 벚꽃은 피었다. 어떻게 보면 참 속절없다.

지난 1일 축제를 개막한 지 7일째, 진해 시내는 지금 벚꽃 천지다. 대로면 대로, 이면도로면 이면도로,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벚꽃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며 쉬며 쉬엄쉬엄 내달리는 안민고개

안민고개 정상 생태터널. 이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창원시다.
 안민고개 정상 생태터널. 이 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창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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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에서 개최하는 이 축제의 공식 명칭은 '진해군항제'다. 1952년에 시작해 올해로 48년째를 맞이하는 유서 깊은 축제다. 초기에는 해군에서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것을, 1963년부터 민간에 이양되어 지금까지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 무렵 진해시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봐야 할 곳이 적어도 2군데다. 하나는 '안민고개'이고, 또 하나는 '행암동'에서 '안골포'까지 가는 해안도로다. 하나는 '고개'고 또 다른 하나는 '도로'라 그리 즐거운 여행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앞서 걱정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안민고개는 생각 밖으로 편안하고 안전한 고개다. 물론 자전거 타고 고개를 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안민고개는 다른 고개에 비해 비교적 경사가 낮은 편이다. 부드럽게 페달을 밟으면서, 흐드러진 벚꽃을 감상하면서 중간 중간 천천히 쉬어 가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을 금세 잊어버릴 수 있다.

장복산 중턱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안민고개 벚꽃길
 장복산 중턱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안민고개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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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시 태백동과 창원시 안민동을 잇는 이 고개는 장복산 산허리를 구불구불 돌아 올라간다. 멀리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하얀 선 하나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길이는 약 4km. 고갯길로는 길이가 좀 긴 듯하지만, 경사가 낮아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언덕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하다. 솔직하게 하는 말인데, 이런 고갯길에서는 남이 안 볼 때 시간 가는 대로 마냥 쉬어 가거나, 남이 보더라도 사진 찍는 척 잠시 섰다 가면 조금 위안이 된다.

안민고개를 하얗게 뒤덮은 벚나무는 거의 대부분 아름드리나무들이다. 두 팔로 다 껴안을 수 없을 정도로 굵은 나무도 있다. 키는 높고, 가지는 길다. 자연히 하늘을 가릴 정도로 가지가 무성하다. 이 고개는 진해 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로이기도 하다. 경치가 아름답고 공기가 맑아 걷기에 그만이다. 벚나무 그늘 아래, 나무판자를 깔았다. 고개 밑이 바로 주택가다. 시민들이 끊임없이 이 길을 오르내린다. 고개 정상에 다다르면, 진해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진해시 야경. 안민고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광경.
 진해시 야경. 안민고개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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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는 지나다니는 차량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주말에는 꽤 많은 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고 싶다면, 평일에 올라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차량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우려할 일도 아니다.

대부분의 차들이 거북이 운전을 하고, 자전거가 앞서 가면 슬금슬금 피해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개 위에서 차들이 밀려 정체가 심할 때 자전거 혼자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묘미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속편하게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된다.

길 중간 중간 쉬어가기 좋은 장소에 나무의자와 정자가 놓여 있다. 중간에 카페를 겸한 편의점도 있고, 오뎅이나 컵라면을 끓여서 파는 노점도 있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천천히 쉬어갈 만하다.

숨가쁘게 오르는 해안도로, 내려다보는 전경 죽이네

해안도로는 행암동 연세사랑병원 앞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해안도로가 그렇듯이 이 길 역시 오르막과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요행히 대체로 경사가 급한 편은 아니다. 언덕을 땀 흘려 오르고 난 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풍경이 눈부시다.

손바닥만한 포구에 몇 채 되지 않는 횟집들이 검은 바위 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소라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은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훌쩍 떠내려갈 듯 우쭐거린다. 그 모습들이 코끝이 찡해 올 만큼 정겹다. 그 같은 풍경들이 이 도로를 오르내리는 동안에 흘리는 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어쩌면 그 이상의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해안도로변 풍경.
 해안도로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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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안도로변에 노래 '삼포로 가는 길'로 유명한 '삼포'가 있다. 이혜민이 곡과 가사를 쓰고, 강은철이 노래를 불렀다. 이혜민이 삼포를 처음 찾았을 땐, 산길을 힘들게 걸어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아주 외떨어진 어촌마을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삼포가 '(어린 시절) 동경의 그리움을 충족하기에 충분한 마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삼포는 이혜민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삼포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순수하게 반농반어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어촌마을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요즘, 나 역시 문득 이혜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삼포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삼포마을 해안도로변의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삼포마을 해안도로변의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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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를 돌아가는 해안도로변에 노래비가 서 있다. 노래비 앞에 '삼포로 가는 길'을 들려주는 음향장치가 있다. 노래를 들으며 마을을 다시 한 번 더 내려다보는데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가슴 어딘가에도 그 옛날의 '삼포'가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이 해안도로는 안골포에서 끝난다. 황포돛대노래비가 있는 길까지는 그런 대로 길이 좋은 편이다. 거기까지 인도 겸용 자전거도로가 나 있어 나름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안골마을에는 갈비집들이 즐비하고, 안골포에는 생굴을 까서 파는 노점들이 즐비하다. 그곳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때는 안골포 뒤쪽의 아파트단지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 자전거로 행담동에서 안골포까지는 약 30km다.

해안도로변 자전거도로
 해안도로변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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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에서 내려다 본 안골마을. 고개 하나를 더 넘어가면 안골포가 나온다.
 해안도로에서 내려다 본 안골마을. 고개 하나를 더 넘어가면 안골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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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도시, 벚꽃만 만발이구나

진해시 여좌천 벚꽃.
 진해시 여좌천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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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진해시에서는 축제 기간 동안 꼭 가봐야 할 곳이 여러 군데다. 여좌천은 <로망스>라는 드라마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천변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들이 천을 하얗게 뒤덮은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젊은 연인들과 드라마를 본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그밖에도 제황산공원, 장복산조각공원, 경화역 등이 벚꽃을 감상하는 주요 지점들이다.

진해군항제는 벚꽃이 필 무렵인 4월 초부터 11일간 열리는데, 올해는 4월1일에 시작해 11일에 막을 내린다. 올해는 특히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너무 들뜬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시민노래자랑이나 연예인을 동원하는 것 같은 일부 행사를 취소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전체가 다소 진중한 분위기다. 도시 전체를 화사한 빛으로 물들인 벚꽃이 아니라면,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 정도다.

해안도로변 웅천 유채꽃축제 현장. 역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해안도로변 웅천 유채꽃축제 현장. 역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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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진해군항제, #안민고개, #해안도로, #자전거여행,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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