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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로렌스>영화의 무대로도 유명한 와디럼
▲ 와디 럼 (WADI RUM) <아라비아 로렌스>영화의 무대로도 유명한 와디럼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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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도착한 이집트를 가기 위한 관문인 요르단의 아카바는 오히려 사막보다 더 더운 듯하다. 후끈한 공기와 해상도시라 습하기까지 하다.

페트라에서 의기투합해서 사막에서의 일정을 함께 한, 부산 아가씨 세 명과 이집트까지 같이 건너게 되었다. 셋이 함께 세계여행 중인 이들은 나랑 동갑내기인 은정(이하 새은정), 둘째 남희(이하 장 마담), 막내 남희 (이하 막내).

부산이 집인 아가씨들이며 현재 세계 여행중이다. 이집트로 가서는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인 그녀들과 함께 난 열심히 그날 묵을 저렴하고 괜찮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정 안되면 갖고 있는 여행책자인 론리 플래닛에 나와있는 곳이라도 가야 하지만, 일단은 우리를 아카바까지 데려다주신 기사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전화를 해서 열심히 알아보는 눈치였다.

"아파트인데 괜찮겠어? 원하면, 지금 보러가고."
"아파트요? 하루에 얼만데요?"
"하루에 30JD래. 장기간 렌트해주는 곳이야. 그런데 어차피 너희는 하루니까 한번 보기나 하던가.."

장기 대여를 해 주기도 한다.
▲ 아카바에서의 숙소 장기 대여를 해 주기도 한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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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한 도미토리 룸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편하고 깨끗하다면 그 정도 가격은 감수하자는 합의 하에, 우린 아파트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아파트는 괜찮았다. 깔끔하고, 주방도 깨끗하고 화장실에 물도 잘나왔다. 간만에 현대적인 시설에 감동한 우리는 협상에 들어갔다. 그냥 한번에 오케이 하지 않는 나였기에 매니저와 협상을 시도했다.

"보시다시피 우린 네 명이다. 딱 28JD에 하자."
"노."
"생각해봐. 우리 네 명인데 30이면 누가 2를 더 내니. 7씩 낼 수 있게 28에 해줘."

피식 웃더니 (물론 본인도 그런 생각이 들겠지. 4명에 30JD는 불공평한거라구 ) "쏘리... 노" 란다. 깎아 달라고 네 번 시도했으나, 네 번 "노" 당했다. 이 정도면 물러서야 한다. 짜증난다고, 방 안 주면 어째… 딱 맘에 드는데.

'오늘은 드디어 봉지커피를 뜯어서 냉커피를 타먹을수 있겠구나. 야호~"

간만에 욕실다운 곳에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했다. 간만에 요리도 하고, 기분 좋은 마음에 난 폴라포로 골든벨을 울렸다. 역시 먹을 것에 환호하는 이 정상적인 아이들. 우리는 기분 좋게 요르단을 마감하고 이집트를 기대했다. 자, 이집트로 가자!

혼자가 아니면 교통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데에 큰 장점이 있다. 넷이 택시를 타고 트렁크엔 우리 짐을 다 쑤셔넣고 페리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남은 요르단 돈을 먹을 것을 사는 데에 얼추 정리하고 표를 끊고 기다렸다. 배를 기다리는데 여자 두 명에 남자 한 명 무리의 한국인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세요? 이집트에 여행가세요?" 라는 내 물음에 "저희는 여기 살아요"라는 남자의 떨떠름한 표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요르단에 사는 데, 이집트에 놀러 가요'라든가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할 수도 있을 텐데, 가끔은 해외에서의 한국 사람들은 좀 이상하다. 어글리 코리안을 많이 봐서 그런걸까? 같은 한국 사람을 보면 난 많이 반갑던데... 아니면 사람대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출발한다는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출발을 하고, 이집트의 누에이바에 도착해서도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다 내린 것을 보면, 슬로 페리는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될 듯하다. 가격도 그리 싼 것도 아니고.

하지만, 기다림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특히나 아프리카 대륙의 여행 중엔 기다림에 대해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관광대국인 이집트에서 이 정도 기다리는 것은 차라리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자 넷이 깔깔 거리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더 준 것이니.

누웨이바에 도착한 배.
▲ 아카바-누웨이바를 잇는 페리 누웨이바에 도착한 배.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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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웨이바에 내린 우리가 간과한 것은, 짐을 찾아서 얼른 나온 다음 다른 여행자들과 묻어서 여러 명이 함께 쉐어를 해서 좀 더 나은 조건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선상에서 받은 이집트 비자 때문에 일을 더 봐야하기도 했고, 짐 검사하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도 해서 이미 우리가 나와서 차를 알아볼 때엔 다른 여행자들은 이미 떠나고 난 후였다. 일단 다음 장소인 다합까지는 오늘 안에 가야 했다.

"다합까지 얼마예요?"
"200파운드!"

좀 비싸게 부르는 가격에 우린 손사래를 치며 등을 돌렸다. 그러면 그들은 또 우릴 불러 세운다.

"잠깐, 이리 와 봐! 그럼 얼마에 해달라고?"
"100파운드~!"
"에이, 안되~"

이러면서 그들은 고개를 흔든다. 결국은 등을 보이고 돌아서는 우릴 붙잡으면 말한다.

"120파운드에 해줄게."

이런 과정을 몇 번 거치면서 미니멈 가격이 얼마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며, 손님도 거의 빠져나간 이 시점에서 미니멈 가격에 우릴 태우고 다합을 갈 기사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한 두 기사와 흥정에 실패하고는 우린 그 날의 쌩쇼를 하게 만든 악질 기사를 만났다.

"다합! 얼마예요?~"
"300파운드."

말도 안되는 가격에 우린 그냥 별 말도 없이 등을 돌렸다.

"너무 비싸다."
"그래 알았어. 그럼 150에 해줄게."

돌아서는 우리에게 그가 말한다. 뻔히 다른 기사들이 흥정하고자 했던 금액보다 비싼 가격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한 가격보다 더 비싸잖아. 안 타요. 그냥 가자~"

확실하게 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따라붙는 인상 좋지 않은 이 기사님. 우린 이 사람을 벗어나 다른 쪽으로 가서 차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나타나 우린 알아듣지 못하는 아라빅을 하며, 모든 거래를 무산 시켜 버리는 것 아닌가. 이제는 단 돈 몇 푼이 아니라, 이미 맘이 상할대로 상해서 '저 인간 차는 그냥 태워줘도 절대 안타겠다' 라는 마음이 되어버린 우리였다.

"아니 왜 자꾸 따라다니는데? 안 탄다구 했잖아?"
"나, 너네 따라다니는 거 아니야. 내 맘대로 가지도 못해?"

아, 이제는 정말 얄밉다 못해서 꼴도 보기도 싫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능글능글대는 태도로, 가라는 우리의 말에도, 니가 가라며 응수하는 어글리 이집션이다.

종국엔 정말 사람 잘못 만났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사에게 말을 붙여도 우리 뒤에 인상 쓰며 눈짓을 하는 이 사람이 있는 한은 누구도 우릴 태우고 여길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급기야는 이러다 오늘 여길 못 뜨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까지 했다.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도록 우린 도로를 벗어나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곤 우리끼리 한국말로 얘기를 하며 이 사태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의논했다. 그러다가도 빈 차가 있으면 태워달라고 했지만 그 악질기사가 험상궂게 따라붙으며 다른 택시기사를 쫓아 보내는 것이었다. 아... 약은 오르고, 우린 아라빅을 못하고. 죽어도 저 인간 차는 못 타겠고. 결국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급격한 다이어트로 탱탱함이 사라진 것처럼, 가죽이 늘어진 낙타들을 보며 막내가 중얼거렸다.

"우리, 오늘 안에 다합에 갈 수는 있는 걸까? 못 가면 어떻하지?"

풀 죽은 막내의 목소리에 난 갑자기 울컥했다.

"막내야!"
"응?"
"걱정마. 언니가 오늘 안에 다합에 데리구 간다!"

난 비장하게 말했다. 그리곤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을 할까 생각했다. 더 있다간 완전히 해가 지고 말 것이었다. 일단은 우리에게 저 악질기사를 떼어놓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야 다른 차를 잡든지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앉아있던 우리에게 그 인간이 다가오자, 난 은정이의 핸드폰으로 번호 누르는 시늉을 하고는 수화기에 대고 나 혼자 얘길 해댔다.

"Hello? Can I speak to 철수?... 예쓰! 히이즈 코리언! …오케이 땡큐."

잠시 난 기다리는 시늉을 하며, 애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이집트 다합에서 기거하고 있는 우리의 가상의 친구 철수와 통화가 될 것이라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는 한국말로 통화를 계속 했다.

"응 철수야. 우리 여기 누웨이바 도착했어. 오니? 안 오니? 아…창피하다.."

민망했다. 삼총사는 혼자 쇼를 하고 있는 날 보면서, 그 인간 등 뒤에서 웃음을 참고 있고, 난  즉섭 애드립의 여왕이 되어있었다.

"아, 그래. 바로 온다구? 얼마나 걸리는데…어쩌구 저쩌구…"

통화를 마친 나는, 잔뜩 궁금한 표정의 악질 기사에게 말했다.

"나, 내 친구랑 통화됐어. 다합에서 지금 차 가지고 온대. 암튼 다 잘됐다."

그리고는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아이들과 흐뭇하게 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공포심까지 유발했던 그 어글리 이집션은 결국 완벽히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 이후에도 혹시나 우리가 다른 차와 거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수포로 돌려버리지 않을까, 우리는 전전긍긍하며 두 명은 망보고, 두 명은 딜을 해서 결국 우릴 다합에 데려다 주기 위한 차를 탔다. 네 명이서 백 파운드였다.

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태그:#아프리카 여행, #요르단, #누웨이바, #아프리카 종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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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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