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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좁으니 참 좋구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바로 책상이네."
"지내다보면 커 보인다더니, 요즈음은 작은 줄도 잘 모르겠어."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는 하루아침에 외할머니의 빚을 떠안게 되면서 고시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28세의 이민수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경제구조의 덫에 완전히 고립된 모습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고립은 '탈출'이 아니라, '순응'의 범주에서 인간을 길들인다. 1.5평짜리 고시원 쪽방에 우회적으로나마 만족하는 모습은 사회구조의 모순이 오히려 인간의 수동성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이 역설적인 모습. 사회는 이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른다.

88만원세대는 정치적 세대가 아니라 '정치권에서 이용한 세대'

세대명칭은 '치킨가게'와 비슷한 운명이다. 1년에 6억 3천만 마리의 닭을 먹는 대한민국에서 '치킨집' 80%가 창업 후 1년을 버티지 못한다. 소비자는 닭을 '엄청' 좋아하지만, 이것을 '맛없게'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퇴출이다.

세대명칭도 비슷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특정세대를 지칭하는 세대명칭이 경쟁을 한다. 그리고 그 명칭과 실제 해당자들의 공명(correspond)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창업성공이다.

2007년 8월에 출간된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우석훈․박권일 공저)은 사회과학서적으로는 놀랄만한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단지 판매부수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대명칭이 일상에서 은유적 용법으로 자주 활용되었음을 말한다.

<88만원 세대> 책표지
 <88만원 세대> 책표지
ⓒ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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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칼 만하임(Karl Mannheim)에 따르면 세대란 특정한 세대의식을 공유하면서 '응답의 동질성'(identity of response)을 표출하는 집단이다. 386세대가 저항의 정신으로 응답한 것처럼, N세대가 정보기술의 능력으로서 응답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88만원 세대>의 응답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88만원 세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들에 '대한' 목소리만 메아리친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주마." (최근 88만원 세대의 목소리가 활발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연코 '88만원 세대가 아닌' 또 다른 20대의 목소리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88만원 세대>는 다분히 정치적 목적 아래 대중에게 전파된 개념이다. 2007년 대선과 2008 총선에서 이 세대명칭이 적극 인용되면서 세대'간' 구조불균형의 문제를 응축 표현한 <88만원 세대>가 단순히 '20대의 참담한 그 자체'라는 아주 감정적인 '현재의 이슈'로만 주목받았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무슨 문제가 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 과정에서 표출된 왜곡의 정도는 굉장히 크다. 후자는 '이 난국을 해결할 영웅의 등장'을 반드시 강조한다. 우리가 지난 3년간 접한 <88만원 세대>는 "그들을 구출할 자 누구인가?"라는 식의 다른 누군가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세대였다. 애초부터 고시원 이민수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는 '성공한 치킨'이다. 소비자와 공명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맛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 동네에 다른 경쟁치킨이 없어서인지는, 어쨌든 20대는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에 대한 주목이 아니다. 그저 정치권이 만들어놓은 <88만원 세대를 구원할 자 누구인가?>라는 담론에 낚였을 뿐이다.

그래서 20대들은 본인들을 '구원의 대상'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애초에 이 상황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변혁'이 아니라, '일단 살고 보자'는 모티브가 된다. 그래서 경제적 성장과 일자리 창출과 가장 어울리는 후보와 정당을 지지한다. 정말로 지지했고 앞으로도 지지할 듯하다.

이 과정에서 '혼자 죽도록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특정 캐릭터를 받아들인다. 그래야지만 세대'내'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거의 BBQ급이다.

88만원 세대의 비주체성

우석훈,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세대가 '표출될 때'의 순간이 아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한다. 만하임의 세대형성과정으로 볼 때, 이 단계는 '세대위치'(generation location)에 해당한다.

즉 특정한 행동양식의 표출하기 전에 비슷한 세대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하는 단계인 것이다. 세대사회학적으로 설명하면, <88만원 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88만원마저도 불안하게 받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

이 상황은 매우 거시적인 차원에서 분석된다. 그것은 지난 반세기동안 사실상 한국사회를 지탱했던 산업화와 경제성장 논리가 여러 출생코호트별 역학관계와 결합되면서 나타난 특정한 현상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문제가 거시적이라는 것은 그 책임을 쉽사리 미시적인 상황에 접목시킬 수 없음을 말한다. 행위자 개인이 이를 극복하기도 어렵고, 설사 '승자'가 된들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실상은 현재의 '그들조차도' 문제의 책임을 '내부적으로' 찾고 있다는 것. 이른바 20대의 보수화 현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의 이미지에 과거보다 더욱 집착하고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교수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학교이미지와 대학평가순위가 마치 그들의 모든 것처럼.

현재의 <88만원 세대>는 비주체적 세대이다. 이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이 세대의 특징을 정말로 그들의 '절대적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름의 '저항'을 한다. 물론 외부에서 '예상한' 저항이다. "일자리를 달라!"가 시작이고 끝이다.

이 저항은 곧 적절한 답변을 듣게 된다. "그래 일자리를 원한다면 나를 지지해라!"는 응답. 이번 선거에서 또 어떤 치킨집이 성공할지는 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강대학교 대학신문사>에도 게재예정입니다.



태그:#88만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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