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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병자(?)를 대동한 남편은 마음이 바빴겠지만, 든든한 인솔자가 있는 우리들은 느긋했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에서 쉽게 일어서지지 않았다. 세 여자는 냉찜질로 발바닥의 열기를 식혔다. 다리의 묵직한 느낌이 없어진다. 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뼈가 시리다. 현악기의 줄들이 팽팽히 당겨져 있는 것처럼 짱짱한 느낌이다.

 

비워진 물통에 먹을 물도 채워 가자고 했더니 남편 왈 "지금부터 지루한 길이 시작되므로 무거우면 안 된다, 벽소령에도 물이 있으니 가는 길에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배낭을 두 개나 앞뒤로 메고 있는 남편은 무게에 민감해 했다. 오후 3시 50분에 연하천을 출발했다.

 

 

벽소령까지 3.6㎞의 산길은 돌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길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조금은 지루하고 지치게 하는 길이다. 사람이 잠시도 흙길에 놓이는 것을 거부하는 듯 울퉁불퉁한 돌들이 길 위에 얽혀있다. 몇 번 종주한 남편도 이 구간을 짧지만 지루한 길로 기억하고 있다. 딸은 산행에서 개인차가 있나보다고 한다. 자신이 찾아본 자료에는 분명 '평범한 능선길'이라고 했는데,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얘기다.

 

벽소령을 1.5㎞쯤을 남겨둔 곳에서 남편과 딸은 바위에 앉아 도란거리며 천왕봉을 조망한다. 왼쪽 능선이 천왕봉, 오른쪽 평평해 보이는 곳이 내일 갈 세석평전, 가운데 분지처럼 생긴 곳에 있는 집이 오늘 묵을 벽소령이다. "벽소령 밑에 길 같은 하얀 것이 보이지?" 그곳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는데 발목이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말해야 한단다. 내일 걸을 세석까지의 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괜찮겠지 하다가는 큰일이라는 거다. 이상이 있을 경우 둘은 내려가고 여자 둘은 천왕봉을 오르란다. 자신이 없는데 어쩌나. 천왕봉을 조망하고 있자니 그대로 내려갈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오후 6시 10분,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이곳을 지나쳐 세석까지 걸었었는데,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금 버겁게 왔다. 그래도 해가 길어져서 푸른 하늘이 남아 있다. 저녁 때가 되니 바람이 꽤나 차다. 취사장 뜰에서 밥을 해 먹으려고 했는데 추워서 취사장 안으로 들어가 귀퉁이에 자리를 폈다. 식수도 가까이에 없다. 100m정도 산 아래의 식수 드럼통이 있는 곳까지 가야한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식사를 하는데 오후 9시면 화장실을 빼고는 모두 소등할 것이니 식사를 빨리 마치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8시쯤 되었나. 성삼재를 오를 때 차안에서 만났던 모자가 들어온다. 반야봉을 오르지 않고 내쳐 천왕봉 길을 잡았던 두 사람은 잠시 우리를 앞섰다가 지금에야 도착한 거다. 볼수록 대단한 모자다. 초등생 아들보다 엄마가 더 위대해 보인다.

 

대피소는 오직 잠자는 곳이다. 사람들은 다음 날을 염두에 두고 어두워지면 무조건 잠에 든다. 달리 할 일도 없다. 목적은 종주니까. 대피소 마당에 침낭을 깔고 누운 사람도 보인다. 벽소령은 그리 붐비는 곳도 아니라서 숙소의 여분이 있다고 하는데도 그렇게 잠드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에 정리를 하고 숙소로 들어가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은하수가 쏟아진다. 지인은 벽소령의 달빛이 지리산 비경중의 하나라면서 하늘에 떠 있는 조가비 같은 초승달을 바라본다.

 

대피소에서 제공하는 담요는 한 장에 1000원이다. 3장을 받아들고 여자들 숙소로 들어가니 깜깜절벽이다. 우리 번호는 1층인데 이미 누가 자고 있다. 더듬거리며 비어있는 2층에 들었다. 딱딱한 마루지만 등허리를 대고 다리를 뻗으니 만사형통이다. 온 몸이 근육통으로 뻐근하다. 산행을 자주 한 나도 이런데 딸은 어떨까 싶으니 안쓰럽다. 그래도 군말 없이 산행을 즐겨주니 고맙다.

 

야간산행을 하는 팀들이 오전 2시쯤에 일어나 나가느라 잠시 부산해진다. 새벽에 딸의 발목을 만져보니 괜찮은 듯싶다. 아파하는 기색 없이 잠도 잘 잔다. 원래는 오전 4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자고 있는 사람들한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어두운데서 꼼지락거리려니 출발이 늦어진다. 대피소 로비에서 남편을 만났다.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니 걸을 만 하단다. 남편은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안 되니 확실하게 말하라고 다짐을 놓는다. 배낭을 멜 수 있다고 해서, 제일 작고 무게가 덜 나가는 내 배낭을 메게 했다.

 

 

8일 오전 5시, 벽소령을 출발했다. 아침 먹을 세석까지 6.3㎞를 걸어야 한다. 벽소령의 달빛이 따라오다 시나브로 잦아들고, 겹겹의 능선들이 새벽여명에 발그레한 빛으로 꽉차든다. 잠을 잔 몸은 발걸음이 가볍다. 길은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어제의 연하천에서 벽소령 사이에서 만난 돌길에 비하면 힘들어도 굴곡이 있어 더 재미났다.

 

딸은 영신봉을 도는 급경사의 계단도 잘 올랐다. 보통 산행에 익숙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의 절벽이나 비탈에 놓인 계단을 오르내릴 때, 아래를 내려다보며 벌벌 거리는데 그러지 않고 앞서 잘 간다. 중간에 선비샘도 만나 물도 마시고, 배가 출출해져서 어제 남긴 약밥으로 간식시간도 가졌다. 날씨가 덥지 않으니 음식이 상할 염려가 없어서 좋았다. 지인이 싸온 약밥은 말 그대로 약밥이 되었다. 말랑하게 찰지며 달착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대피소에서 북적이던 사람들은 산으로 접어들면서는 순식간에 어디로 갔는가 싶게 산속의 인적은 드물다. 가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났던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지기도 했다. 날씨가  맑아서 좋다고 하니, 남편은 지리산의 비경인 운무를 볼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해야 한단다. 일장인단이다. 남편은 앞서 갔지만, 세 여자는 자연공부하며 가자니 자꾸 시간을 잡아먹는다.

 

오전 9시 20분, 세석평전이다. 너른 들판에 꽃은 보이지 않는다. 철쭉은 피지 않았고, 가끔 진달래 봉오리만 보인다. 지리산에서 '처녀치마'도 알게 되었다. 주름치마처럼 잎이 땅에 넓게 펴져있고 가운데에 보라색의 꽃이 핀다. 특이한 모습이라 잊지 않을 것 같다. 세석에는 습지생물서직지도 있다. 아침을 먹었다. 습지식물도 공부하고, 촛대봉에도 오르고 여유를 부렸다.

 

 

11시 10분, 촛대봉에서 내려와 장터목으로 향했다. 촛대봉에서는 2.7㎞ 지점이다. 능선이 험하지 않았다. 가끔씩 만나는 평원의 고사목과 연하봉을 넘는 오름길은 태고의 시간을 걷는 듯하다. 장터목 가까이 있던 흙길의 오솔길도 기억에 남는다.

 

 

오후 1시, 장터목 대피소다. 사람과 바람이 씨름하느라 더 부산해 보인다.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마지막 숨고르기를 하는 곳이다.

 

오후 1시 20분, 천왕봉으로 향했다. 장터목에서 1.7㎞다. 푸른 하늘을 인 고사목들이 빳빳하게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무둥치에서 뻗어 나와 있는 가지들의 날카로움이 위협적이다. 원래 제석봉은 울창한 삼림이었다고 한다.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고 불을 지르는 바람에 민둥산처럼 잎을 내지 못하는 고사목이 많게 된 것이란다. 그래서인가. 화살촉처럼 내 뻗친 가지들은 더 이상 인간들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처럼 보인다. 천왕봉에 가깝게 다가 갈수록 거대한 바위들에 압도되었다.

 

오후 2시 30분,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산속에 흩어져서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향하여 집중해 모였다. 온통 바위뿐인 곳에 사람 꽃이 피었다. 빼쪽한 고사목도 쓸어안고 태고를 견디어 왔을 천왕봉.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정신들이 없다. 우리도 그 대열에 끼어 사진을 찍고, 일상에 젖어들 시간에 쫓겨 서둘러 내려오고 말았다. 여유의 시간을 두고 잠시 천왕봉에 안겼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쉽다.

 

 

 

내려가는 길은 5.4㎞ 아래에 있는 중산리 쪽을 택했다. 처음에는 경사가 거의 직각으로 내리 꽂힌다. 거기다 매끄럽지 않은 돌길이다. 그래도 그 코스를 택하는 것은 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내려가면서 남강의 발원지인 천왕샘의 물도 마시고, 세석에서 남긴 밥으로 점심도 먹었다. 로터리 산장에서 칼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돌길과 계단 길이다. 신발 속은 화롯불 같아서 발바닥이 불에 데 인 듯 화끈거린다. 칼바위쯤에 내려오니 산은 푸른 잎으로 덮이려 하고 간간이 철쭉도 피었다. 깊은 계곡물이 물살을 가르고 흘러내린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우리 밖에 없다. 천왕봉의 그 많았던 사람들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중산리로 내려오던 사람들도 우리를 앞질러 모두 내려간 모양이다. 우리 세 여자는 종종 거리는 아기걸음을 걸으니 맨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

 

오후 7시 20분, 중산리 야영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벗어나게 돼서 다행이다. 평소 아스팔트길을 싫어하지만 이때만큼은 반가웠다. 그리고 모두 건강하게 일정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해발 1915m 지리산 천왕봉. 서에서 동으로 능선을 걸은 거리 약 38㎞. 이틀 동안 산길을 26시간 정도 꼬박 걷다 보니 발바닥을 화로에 대고 있었던 듯 했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힘들었던 순간들은 벌써 잊혀졌고, 무릎이 주저앉을 나이가 되기 전에 다시 종주하고 싶은 산이다. 두 번째 가니 더 다가왔고, 그래서 세 번째를 품고 있다. 내게 지리산은 그런 곳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역소식지<마주보기>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리산종주, #천왕봉, #세석, #연하봉, #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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