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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있다. 다가오는 7월 초가 되면 계약기간이 종료된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집을 구할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시간동안 정보신문을 가끔 들여다보면서 적당한 집을 물색해 가야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돌아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내가 서 있을 때가 있다. 왜 내가 여기 있지?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내가 서 있을 때, 그 난감함... 무엇엔가 등 떠밀려 온 같은 느낌...내가 나의 걸음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는 느낌 앞에서 때론 황망함을, 때론 인생의 신비를 느낀다. 삶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사를 앞두고 있다보니 문득, 그동안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이사를 다녔을까...생각에 잠긴다. 생애 첫 이사가 언제였을까.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우리 동네 외갓집에서 가까운 셋집, 햇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있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언젠가 엄마는 외할머니가 언니와 날 돌보던 때가 있었다고 했는데 아마 내가 기억하는 희미한 영상이 그 때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 기억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한 토막 기억이다. 작은 셋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우리 집엔 군용건빵이 많았고, 얼룩덜룩한 군복 무늬가 그려진 건빵봉지를 뜯어서 건빵을 볶아먹기도 하고 쪄서 먹기도 하는 등 건빵을 많이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어린시절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사는 내가 초등학교 일학년 입학하자마자 고향마을을 떠났던 때였다. 가슴에 하얀 가제손수건을 달고 엄마 손을 잡고 고갯길 넘어 입학하러 가던 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입학하자마자 그 다음다음날인가 이사를 했다. 날벼락처럼 갑작스런 이사였다.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그 집은 넓은 마당, 슬레이트(?)지붕아래 아늑하고 정갈하고 행복했던 것으로 추억한다. 그때 풍경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엌 옆에는 엄마의 장독대가 반짝반짝 빛났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부엌에서 따끈따끈한 막 쪄 낸 찐빵을 만들어 넓은 쟁반에 소복이 담아 우리들 앞에 내밀곤 했다.

 

어린 내겐 넓디넓은 마당과 장독들이 가득한 엄마의 장독대, 식당 방, 큰방, 작은 방, 긴 회랑, 반들거리는 미닫이문...비 오는 날에 엄마가 해 주는 찐빵...안온한 풍경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 부모님이 밤중에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듣고 어린 우린 불안과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갑작스런 이사...아직도 생생하다. 갑자기 생긴 우리 아버지의 배, 이름은 '궁기호'였다. 엄마는 고향사람들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것이 못내 서러워 배 안에 들어가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선창가에 나와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우리 집 세간은 궁기호 배 하나에 모두 싣고 이제 낯선 미지의 땅으로 가게 된 것이다. 드디어 배는 통통거리는 소리를 내며 떠날 준비를 했고 아버지는 선창가에 매여 있는 밧줄을 끌러 배에 싣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배가 선창과 마을을 벗어나자 외사촌 동생이 선창가에 주저앉아 앙~울음을 터뜨렸고 퍼질러 앉은 채 동생은 서럽게 울었다. 마을 사람들은 선창가에 선 채 우리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얀 손을 흔들었다.

 

배가 물살을 가르며 바다로 항해하는 동안 엄마는 선실 안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있었고 내 어린 마음은 우울했다. 함께 흙투성이 되도록 뛰놀았던 외 조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선창가에 주저앉아 울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파도를 거슬러 바다 길로 항해해서 당도한 섬, 그 섬의 첫인상은 음울했고 낯선 풍경이었다. 저녁 무렵이었고 마을은 조가비 엎어놓은 듯 집들이 낮게 엎드려 있었다. 우리 배가 닿은 선창가 바닷물은 흐리고 더러웠다.

 

사실상 고향마을을 벗어난 첫 이사였다. 밝고 넓고 따뜻하고 안온했던 집에서의 생활에서 남의 집 헛간 방에서 단칸방살이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잠시, 얼마 후 다시 이사를 했다. 그 마을에서 훨씬 더 동떨어진 외딴 마을에 새로 우리 집 세간을 옮겼다.

 

산 밑엔 대여섯 집이 보였다. 우리 집은 바로 옆에 바다가 출렁이며 한 눈에 뵈는 바닷가 옆 오막살이집이었다. 바다의 소리, 바다의 표정을 보고 들으며 지냈다. 학교를 가기위해선 집을 벗어나 바다 옆 오솔길을 지나고 산을 넘어야했다.

 

일년 반쯤 지나 우린 통영으로 이사를 했지만 오래 있지 않았다. 몇 개월 정도 있다가 다시 내가 태어났고 자랐고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집이 있는 마을로 이사를 했다. 돌고 돌아서 다시 고향으로 온 것이었다. 새로 얻은 우리 집은 마을 중간쯤에 다 쓰러져 가는 손바닥만한 초가집이었다.

 

몇 년 뒤 초가집을 헐고 새로 집을 지었다. 내 어린시절 대부분을 차지했던 그 집에서 머리통이 굵어졌다. 수년 동안 살던 그 집을 부모님은 잠시 비워두고 통영에서 꽤 오래 사셨다.

날이 갈수록 전원생활이 그립다고 아버진 말씀하셨고 다시 고향집으로 들어가신 지가 어언 20년. 그때 지을 당시만 해도 신식집이라 했는데 이젠 30여년이 된 그 집엔 세월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곳곳에 수리해야 할 곳이 많은 집이 되어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지난날이 숨쉬고 있는 고향집, 부모님이 살고 계신 그곳에 우린 가끔 간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두서없이 퉁탕거리며 반가이 맞이한다.

 

참 많은 지역과 도시를 찍고 찍었다. 한 도시 안에서도 몇 번씩 이사를 했던 것까지 치면 정말 이사를 많이 하고 살아온 것 같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양산이라는 도시는 말만 들었지 단 한번도 내가 여기 살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다.

 

또 다시 이사를 앞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주 이사를 했고 살면서 잦은 이사를 경험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나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나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걸어온 모든 나의 삶의 발자취가 결국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나의 인생이고, 나의 삶의 지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하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세상은 뿌리내리고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시 지나가는 생, 잠시 거쳐 가는 여행자의 집이다. 나는 여행자요 순례자라는 것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아직은 모른다. 삶은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우릴 이끈다.


태그:#이사, #여행자,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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