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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머니뻘 되는 학교 청소노동자에게 막말을 한 '패륜녀' 사건으로 인터넷이 시끄러웠지만 진짜 패륜 노릇은 학교가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작년 말 고려대에서는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이 한 달 동안 폐지를 모아 버는 '벼룩의 간'을 용역업체가 빼앗으려 한 '폐지전쟁'이 있었다.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 층계참이나 창고, 화장실과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도 흔히 발생한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곳은 좀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현상소장이나 반장의 폭언, 인권모독, 성희롱 등도 문제가 된다. 경기도 안산 소재 한양대 에리카(ERICA) 캠퍼스 미화노동자들의 경우처럼, 십수 년간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쫓기도 한다.

한양대에서 쫓겨난 어머니들은 어떻게 됐나

지난 1월, 한양대 청소용역 33명 여성노동자 고용승계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의 기자회견 모습
 지난 1월, 한양대 청소용역 33명 여성노동자 고용승계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의 기자회견 모습
ⓒ 전국여성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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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차가운 세밑에 안산 소재 한양대 에리카(ERICA) 캠퍼스에서 33명의 청소노동자들이 해고됐다. 한양대는 미화원 64명을 두 곳의 용역업체에서 위탁고용해 왔는데, 연말에 계약이 종료되면서 2010년 용역업체 세 곳을 새로 선정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 미화원들이 재계약을 하지 못한 것. 이전에는 용역업체가 변경되어도 미화원들의 고용은 자연스레 승계됐다.

십여 년간 별 문제 없이 재계약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진 건 노조 활동의 활성화와 개연성이 있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2004년, 참다 못 한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노조를 만드니 근로 여건은 많이 나아졌다. 임금이 인상되고 정년이 보장됐다. 단체교섭도 할 수 있었고, 작년에는 조합원 교육이나 전국여성노조 행사에도 참여해 재학생들과의 연대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노조가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 2009년 12월 30일 문자메시지로 33명의 청소노동자들에게 해고가 통보됐다. 용역업체 측은 '인상이 나빠서' '이력서를 성의 없게 써서'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노조 활동에 적극적인 이들이었다.

용역업체는 노조에서 탈퇴한 노동자들만 따로 재계약하기도 했다. 길게는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은 청소노동자들10여 명은 올해 2월 말까지 투쟁했으나 성과없이 마무리됐다.

"한양대와 용역업체 측이 너무나 완강했다. 목요일마다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는데, 학교 안으로는 발 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김정임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의 말이다.

"건강이 안 좋아 입원을 해야 했거나 가족이 상을 당하는 등 사고가 많았다. 한양대 측에서는 책임이 없다며 무대응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방학이라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학생들도 학교에 없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투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과의 연대 방해하는 학교, 속내는

쫓겨난 노동자들 중 일부는 새 일자리를 찾았지만 대부분은 아직 구직 중이다. 오는 7~8월이 되면 실업급여도 끊기는데 나이가 많아 재취업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1월 본관 점거 농성 당시 학교 측은 총무처장 직인이 찍힌 공문을 통해 "즉시 농성을 풀지 않으면 단호히 대처하겠다. 농성을 풀면 직장을 알선할 것이다.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 중에 벌써 재취업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총학생회 황민수 집행위원장은 "당시 총학생회에서 전화로 확인한 결과 재취업한 아주머니는 한 분도 없었다"라며 "학교 측에서 아주머니들을 회유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활동을 하던 노동자들이 전부 해고됐으니, 노동조합은 자연스레 해체됐다. 매서운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는 용역업체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통화도 마음껏 하지 못 한다고 김정임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장은 말한다. 노동 조건도 더 악화됐다. 겉보기에는 급여가 조금 올랐지만 정원 자체가 55명으로 줄었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세졌고 휴가도 전처럼 쓰지 못한다. 아주머니 두 명이 청소하던 건물을 한 명이 해야하는 식이다.

학교 측은 총학생회에도 압력을 넣어서 청소노동자들과의 연대를 방해했다. 총학생회가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촛불문화제를 개최하고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자 본부는 각종 예산을 끊어버리거나, 공간 사용에 불이익을 주는 등으로 학생회를 압박했다.

황 집행위원장은 "연초의 확대간부수련회 예산은 원래 학교에서 지원이 나오던 것이었는데, 올해는 학생처에서 '(시끄러운 일을 제압하지 못해서) 학교 본부에 면목이 없다'면서 지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강의실 대여도 이런 저런 핑계로 해주지 않아 사정을 캐어보니 '상부'에서 학생회에는 강의실을 빌려주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더라"고 말했다.

학교 본부가 노조뿐아니라 학생회에도 압력을 가하는 것은 왜일까. 황 집행위원장은 "성신여대나 고려대 등에서 이루어진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 이를 알고 미리 차단하는 것"라고 주장한다. "해고가 방학 중에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도 학교 측에서 시기를 노린 것으로 본다. 많은 학생들이 아주머니들을 지지하지만 방학 중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한다.

한편 학생회에 가해진 압력에 대해서 김정길 기획홍보팀장은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만 답변했다. 또한 "학교에서는 용역업체 측에 가능한 한 고용승계를 할 수 있도록 제안하기는 했지만 결정권은 업체의 재량"이라며 학교 측에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십수 년 동고동락한 가족은 내치면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학술정보관에서 일하고 있는 미화원 아주머니의 모습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학술정보관에서 일하고 있는 미화원 아주머니의 모습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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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임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장은 "학교는 용역업체 책임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지만 원청인 사용사업주에도 책임이 있다는 판례가 있기는 하다"며 "하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명문 법규가 한 줄만 존재했더라면 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양대는 사랑을 실천한다면서 아이티 재난에도 몇 천만원씩 기부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십수 년 동고동락한 내 가족은 이렇게 내쳐버리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황민수 집행위원장도 "이런 일은 비단 우리 학교만의 문제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청소아주머니들의 권리를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아주머니들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한양대 학생들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비 아버지, 청소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조윤영(신문방송 07) 학생은 "학교에서 오래 일하신 아주머니들은 학교에 정도 많이 느끼고, 학교의 일원으로 자부심도 갖고 있다. 그런데 학교는 겉으로만 '친애하는 한양가족'이라며 챙기는 척 하면서 아주머니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했다"며 학교 측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조씨는 "물론 '패륜녀' 같이 생각하는 학생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내 경우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드리는데 아주머니들이 굉장히 좋아하신다. 우리들이 더 감사하는 마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태그:#패륜녀, #청소노동자, #한양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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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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