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8가지 투표방식을 통해 총 3990명을 선발하는 금번 지방선거에 투입되는 공식 선거비용만 2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식 선거비용의 2배가 넘는 돈이 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유권자 수(19세 이상 주민 약 3870만 명)를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1인당 약 10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시다면, 민주주의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6.2 지방선거 비용, 유권자 1인당 10만원...당선확률 40%의 게임

 

평균경쟁률이 2.5대 1이므로, 10명 중 4명이 당선되고 6명이 탈락하는 확률 40%의 게임이다. 그렇다면 선거비용과 당선 확률 사이에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아직껏 통계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선거비용과 당선 가능성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그간의 임상실험 결과다. 그럼에도 '심은 대로 거두어 들인다'는 수확의 법칙이 작동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인 것 같다. (선거의 경제학에서도 자금조달은 승패를 가르는 핵심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선거에는 '두 가지 위험'이 존재한다. 뽑지 말아야 할 사람을 당선시킬 위험과 뽑아야 할 사람을 탈락시킬 위험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둘 가운데 어느 쪽의 위험이 더 높을까? 두 개의 변수가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할 경우, 선발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뽑는 위험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선택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이 '길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를 잘못 뽑았을 때의 위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선거는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의 싸움이다. 진실이란 일체의 거짓이 포함되지 않은 참(truth)을 말하며, 사실이란 사람들에게 '인지된 진실(perceived truth)'을 뜻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사실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선거의 판세는 진실보다는 사실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된 생각과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난 뒤, 알려진 사실이 진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뛰어난 선거 참모는 철저하게 사실(fact)에 주목하여 전략을 짜고 운영한다. 현재 천안함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진실공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선거전만을 놓고 판단할 때, 무엇이 진실이냐 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유, 불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2가지 위험 : 뽑지 말아야 할 사람 당선 - 뽑아야 할 사람 낙선

 

선거는 오직 승자와 패자만을 가리는 게임이다. 승리한 자는 모든 것을 얻지만 패배한 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선거에서 졌다는 사실과 '빚'뿐이다. 무승부가 없는 싸움.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의 전쟁이 선거라는 단기 이벤트의 맨 얼굴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모술수와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공약(空約)으로 바뀔 것이 뻔한 공약(公約)들이 수없이 남발되며,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줄타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무조건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사항 중 상당 부분이 '허풍'일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와 믿음을 가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순진해서? 진정성을 가진 후보자들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대목에서, 비록 드라마 각본 상 설정된 인물이지만 삼국시대 중기 신라(新羅)의 뛰어난 정치권력가였던 미실(美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은 버거워합니다. 소통은 귀찮아하며 자유를 주면 망설이죠.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백성은 비가 왜 오는지, 일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비를 내려주고 일식을 막아주면 그만인 무지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입니다.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모릅니다. 안다는 것, 지혜를 갖는다는 것.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이란 무언가 환상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미실이 하늘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백성도 이 미실을 이용한 것입니다."

 

무릇 백성이란 몽매한 존재이니 환상을 심어주면 된다? 백성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섬김의 파트너가 아닌 다스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전근대적 관점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횡으로 나누면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둘 만이 남는다'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녀에게 백성이란 지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미실은 일식이라는 자연현상을 재앙으로 둔갑시켜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등 다양한 통치기술을 용의주도하게 활용한다) 한마디로, 미실의 정치철학은 '철저한 정보 독점에 입각한 미신(迷信)통치'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미실의 통치관을 신봉하는 정치 후보자가 선거에 나선다면, 어떤 전략을 구사하려고 할까? (미실의 가르침대로) 사람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 정도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야말로 환상적인 약속들을 최대한 많이 던지려고 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대체적으로 안정을 희구하며, 약속어음의 액면가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믿어버리는 우매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불안은 대중들로 하여금 절대권력에 대한 심리적 의존을 증폭시키고 선동정치에 쉽게 말려든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교훈 아닌가? (미실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1400년이 지난 지금, 드라마 속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한 현상이 이곳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미실의 선거와 선덕여왕의 선거

 

이에 반해, 선덕(善德)은 백성이 주인인 사회를 꿈꾼다. 사람들을 미혹(迷惑)하는 환상이 아니라 희망과 비전으로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미실과 정면으로 맞선다. 신라의 오랜 전통이었던 신권(神權)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춤으로서 백성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미실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백성을 두려워하지. 그래서 백성의 말을 듣는 것도 두려워하는 거야. 그러나 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말과 질문들이 나를 결정할 거야. 앞으로도 백성은, 세상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할 거야. 난 언제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들을 것이고 또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을 거야."

 

마찬가지로 선덕의 정치철학을 믿는 사람이 선거에 나선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사람들에게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가능한 한 '지킬 수 있는' 약속들을 전달하려고 할 것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이해득실에 민감하며, 때때로 이중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거전략이며,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선덕은 믿었던 백성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간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H.Carr)는 '역사란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모든 역사적 판단에는 사람들의 관점이 개입되기 때문에 이른바 객관적, 역사적 진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결코 '순수한' 상태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같은 사실(fact)이라 하더라도 보는 이(역사학자)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실과 선덕, 누구의 정치철학이 사람들에게 먹히나

 

그렇다면, 한번 해석해보자. 당신은 미실과 선덕, 두 사람 중 누구의 관점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정치철학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먹힌다고' 보는가? 물론 지금은 왕조시대도 아니고 개발독재시대도 아니다. 하지만 정치가가 백성(국민)을 바라보는 태도는 신라시대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미실과 선덕 두 사람이 품었던 생각의 뿌리는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각각 비슷한 DNA를 가진 후예들에게 계승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치 생태계를 동일한 유전적 기질을 가진 집단으로 구분하면, (미실의) '지배이론'을 추종하는 세력과 (선덕의) '섬김정치'를 따르는 세력이라는 두 개의 종(種)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사는 마을에서 정치라는 영역이 완전히 망하기 전까지, 향후에도 오랫동안 두 그룹은 각자 서로 다른 맥(脈)을 형성해 가면서 치열한 싸움을 해나갈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선거란 무엇인가? 관찰자(Outsider)가 아니라 주인공(Protagonist)으로서 제대로 된 대리인(Representative)을 선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 각자가 '역사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과 실천이다. 자각이란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겠다는 진지한 생각과 접근을 말하며, 실천이란 가장 근사치의 인물에게 표를 주는 것을 말한다.

 

판단의 기준도 애매하고,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다. 맞다. 누구를 선발하건, 당선된 인물에 대한 만족도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에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오랜 기간의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사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며, 정치란 본래 유시유종(有始有終, 처음과 끝이 분명함)이 결여된 일종의 '연극' 같은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선이 아니면 차차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설사 모든 후보자가 수준 이하이고 그 가운데 한 명을 뽑아야 하는 '재미없는'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투표하지 않는 것보다 투표하는 것이 백 배는 더 옳은 일이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의사표현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표(死票)가 결국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어떤 후보자를 뽑아야 하는가?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좋은 후보자를 뽑아야 할 것이다. 좋은 후보자란 누구인가? 우리 지역을 위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일관된 삶을 살아온 사람, 낮은 곳으로 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행복지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미래의 창을 통해 현재를 조명해보는 사람, 개발보다 유지와 보전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 향기가 나는 사람, '바보' 같지만 왠지 마음이 동(動)하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후보자를 뽑지 말아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 없이, 나쁜 후보자다. 나쁜 후보자란 누구인가? 비슷해 보이지만 진짜가 아닌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짜인가? 경력만 화려한 사람, 한번도 제대로 된 봉사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 성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 과거의 틀(frame)에 갇혀있는 사람, 건설과 개발만이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구린내가 나는 사람, 똑똑해 보이지만 왠지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선거비용의 효용가치 극대화하면 손해보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이 '축제의 장'을 경제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거비용에 투입되는 총비용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하면 된다. 뽑아야 할 사람을 뽑고, 뽑지 말아야 할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몇 조원의 비용을 투입한다 해도 '선발된 주자들을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투자를 한 셈이다. 하지만 반대라면? 기회비용은 물론이고 선거에 쓴 돈의 몇 배에 달하는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뽑지 말아야 할 사람을 선발한 대가로 국민의 낸 막대한 세금을 헛되이 날리게 될 것이다. 선택도 책임도 모두 국민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므로(헌법 제1조 2항),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로서(헌법 제24조), 헌법이 부여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하자. 대의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엄중한' 정치적 행위가 바로 선거 아닌가? 그러므로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투표하러 가자.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해 '착한'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후보자에게 한 표를 던지자.

 

에드워드 카(E.H.Carr)는 '역사란 당대의 부당한 영향과 횡포 혹은 압박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지금 우리에게 부당한 영향과 횡포 그리고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면, 그 압박에 대항해 싸우는 것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몫이라는 뜻이다.

 

부당한 자들을 심판하려면, 술 취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으려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려면, 잘못을 바로 잡으려면, 우리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려면, 더 나은 마을, 더 좋은 환경,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행동하는 시민'이어야 한다. 누가 이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포기하려 하는가?

 


태그:#지방선거, #투표, #참정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