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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요? 눈을 떠보니 새벽 5시 40분이었습니다. 다른 날 같으면 깊은 잠을 자고 있을 이 시간에 저는 더 또렷한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잘 털어지지 않는 잠을 이기고 일어났지요. 오늘은 바로 당신이 잠들어 계신 그곳에 가는 날이니까요.

30일, 대전 '노일추' 대전방문단이 봉하 마을을 찾았다.
▲ 봉하마을 전경 30일, 대전 '노일추' 대전방문단이 봉하 마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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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은 일상을 이어가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그중에 일부일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참 희한합니다. 당신은 죽어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깨우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죽은 것 같이 살던 우리는 당신 때문에 깨어나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김대중 정부 말기였을 겁니다. 스치듯이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바보 같은 사람이지만 뚝심이 있어 보여!"라는 얘기들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는 지역구를 버리고 지역주의를 깨트리려고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정치를 불신하던 내게 어떤 솔깃함을 선사했습니다. "아, 저런 사람도 다 있구나!" 하는.

그 후였습니다. 당신에 대한 정보를 쌓아갈수록 내 안에 빛은 더 환하고 굳건해졌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모두 다 높아지려고 올라가는 사람들뿐인데, 당신은 애써 높아질 수 있는 기회들을 버리면서도, 손가락질에 놀림감이 되면서도 보다 낮은 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성스러움을 평가할 때 보게 되는 첫 번째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낮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자신의 행동을 통해 보여주고 있느냐는 것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었던 시절이 있더라도 '개구리 올챙이 때 기억하지 못하듯' 쉽게 잊어버리고 말죠.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배가 고파봤으니까, 어려운 시절을 당해보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만 잘 되면 그만이야!'라는 악의를 품기보다 '그러니 내가 그 손들을 붙잡아주어야지!' 하고 넉넉하게 품어낼 수 있는 따뜻한 품성을 지닌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정치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떠들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수만 번도 더 떠들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실제 삶을 통해서 실천하고, 가슴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정치인은 만나보질 못했던 우리들이었기에 당신의 행보는 참으로 우리 약한 자들의 가슴에 단비와도 같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말은 거짓으로 꾸밀 수 있지만, 사람의 가슴까지 숨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진실이란 것, 정의라는 것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게 아닐까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춥고 낮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씨를 지필 수 있었던 사람, 그래서 정치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낯설고도 신비로운 시간을 허락해준 사람.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말도 감동 한 번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경선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죽어있던 가슴에 쿵쿵 살아 울리는 심장소리가 뜨겁게, 뜨겁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게 비록 하룻밤의 꿈처럼 날아가 버릴 허망한 것일지라도 이번만은 꼭 한번 믿어보고 싶다'고 말이죠.

30일 아침 8시경, 함께 당신이 묻혀 계신 봉하에 가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서거1주기추모문화제대전시민추진위(노일추) 26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오직 한 사람이 그리운 마음이기에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세 시간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봉하마을 입구에는 끝도 없는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질 만도 한데, 길을 가득 메운 그 행렬이 오히려 반갑기만 했습니다.

이렇게도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언론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또 다른 현실이 여기 이렇게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에 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인이 죽은 후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찾아오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까 하는 놀라움에 다시금 살아계실 적 당신이 더욱 그리워졌습니다.

우리 안에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촛불 우리 안에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 국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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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청률을 압도해 나가던 '경선 드라마'를 보던 어느 날, 당신이 극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는 것을 보며 저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노사모'에 가입을 했지요. 정식으로 회비를 보태줄 수 있는 형편(?)도 깜냥도 되지 못했지만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아있는 당신을 보고 싶었던 바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지역으로 당신의 거리 유세가 있기로 한 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치후원금(?)이라는 것을 준비해갔습니다. 더 많을 돈을 보태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리 삶이 넉넉하지 못한 서민이었기에, 그동안 모았던 동전을 모두 가지고 나갔습니다.

부끄럽게 건네는 손이었지만 "감사"를 잊지 않고 우리를 향해 고개 숙이던 모습! 처음으로 나간 대통령 후보 거리유세전에서 어색하게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우리는 그렇게 '정치도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온 맘과 온몸으로 느끼고 실감했습니다. 그래요,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했고, 이렇게 작고 부족하지만 당신에게도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많은 인파에 떠밀리듯 나에게도 당신과 악수할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말없이 내민 손을 잡아주던 그 작은 손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그 손은 "당신의 희망을 배신하지 않을게요!"라는 말을 건네주는 것만 같았지요.

선거 전 날, 우리는 '라디오로'라는 인터넷 생방송을 들으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표심을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때 마침 우리 지역에 타 후보 진영에서 불법으로 신문을 유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카메라 하나만 들고 대책도 없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경찰이 나와 불법으로 대량 유포되던 신문과 그것을 유포하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지요. 경찰조차 함부로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넘쳐 보이는 그들은 모르긴 해도 온몸에 문신을 빼곡하게 채우고 계실 듯한 분들이었습니다. 경찰들은 그들에게 "들어가시라고, 어서 들어가시라고!"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억지를 부리는 그들을 애 타이르듯 달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즉시 그들이 불법으로 신문을 유포했다는 지역의 아파트를 돌면서 밤새 그들이 뿌려둔 신문들을 수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방대했던지, 신문은 아무리 거두어 들여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했던 분의 거실에는 그날 거둬들인 불법신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을 맞았습니다. 얼마나 밤새 뛰었을까, 우리의 몰골은 모두 하얗고 노랗게 변해 있었지요.

그리고 제 입술은 보기 좋게 부르트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저를 보면서 혹자는 "그 사람들이 너에게 돈을 주더냐? 그렇게 미치도록 뛰게?" 하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 저는 그저 웃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대도 그렇게 미치도록 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그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믿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불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 타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거짓말 같이 아침이 밝았습니다. 저는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함께 투표소로 이동했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대통령 선거라는 것도 있었지만, 우리의 희망이 될 그 사람에게 주는 단 하나의 표 앞에 서 있던 제 손은 참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도장을 찍고 나서야 아주 평화롭고 깊은 호흡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기적 같은 일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지요. 바로 당신이 당당하게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주셨습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난 후 저는 인터넷에 접속해서 제일 먼저  '노사모'를 탈퇴하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그때 전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아니 우리가 함께 이룬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저는 당신의 응원자가 아니라 당신의 감시자로 돌아가려 합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권력을 잡은 자는 그 이전의 신념을 쉽게 잊어버리고 변질 되어 가기 쉽다는 걸 잘 알기에 이제 저는 조용히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요. 부디, 너무 큰 상처와 실망은 안겨주지 마세요! 끝까지 당신만은 달랐다고 회고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요.

그랬습니다. 크고 작은 사안들에서 당신은 나를, 또 우리를 실망하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슴까지 가면을 씌우고 우리를 실망과 분노로 몰아넣었던 저들에 비하면 당신이 보여준 것은 지극히 작은 것들에 불과했지요. 그리고 되먹지 못한 그들이 당신을 쫓아내려 했을 때,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갔고 촛불을 들었습니다. 여전히 당신을 믿고,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의 촛불들이 당신을 지켜낼 수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그의 뜻을 차마 어기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잠들어서까지 낮은 곳으로 가려던 당신이란 존재가 너무 높고 너무 거대하고 너무 깊어서 헤아리기 부족한 한 사람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故 노무현 대통령 묘소 그의 뜻을 차마 어기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잠들어서까지 낮은 곳으로 가려던 당신이란 존재가 너무 높고 너무 거대하고 너무 깊어서 헤아리기 부족한 한 사람은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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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네 시간이 걸려서야 무사히 당신이 잠든 봉하에 도착했습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인파들이 당신을 보러 달려와 있었습니다. 자석처럼 우리를 끌어들인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당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살아서도 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죽어서도 하고 있는 그 생생한 희망들을 직접 보기 위해 모인 것이었지요. 머리보다 가슴을 움직이던 한 사람, 그게 바로 당신이니까요.

'심장이 뛸 때마다 그립습니다.'
▲ 박석 위에 새겨진 글귀 '심장이 뛸 때마다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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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영원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일 것입니다.
▲ 박석 위에 새겨진 글귀 2 당신은 영원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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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비서관이 나와 인사와 함께 당신에 대한 생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떠났지만 또 누군가 남아서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했다.
▲ 김경수 비서관 김경수 비서관이 나와 인사와 함께 당신에 대한 생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떠났지만 또 누군가 남아서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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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재단에서 나온 관계자 분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국화꽃을 놓았고 준비해온 마음들을 모아 묵념을 했습니다. 그리고 발바닥 밑으로 자욱하게 깔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새겨 넣은 박석의 글귀들을 읽으며 한걸음 또 한걸음 당신이 묻혀 계신 묘소에 닿았습니다. 당신의 유언을 받들어서 만들어진 그 묘소를 마주하고 있을 때엔 흐르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뜻을 차마 어기지 못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잠들어서까지 낮은 곳으로 가려던 당신이란 존재가 너무 높고 너무 거대하고 너무 깊어서 헤아리기 부족한 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몇 명은 등을 토닥여 주었고, 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는 말없이 화장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래요, 거기 당신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리고 그게 당신의 뜻은 아니기에 아픈 눈물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울리기 위해 떠난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모든 죄를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예수그리스도처럼 당신은 참으로 외롭기 추운 길을 선택하신 거니까요.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던, 그리고 우리 대신 아프고자 했던 그 마음을 위해서라도 우린 울지 말아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거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 전시품들을 보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 집' 앞에 전시된 생전 사진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거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 전시품들을 보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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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에 오기 며칠 전 꿈을 꾸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부엉이 바위로 향하던 그 길 위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몇 발자국을 떼었을까, 저는 그 마지막 당신의 심정을 심장이 반응하는 그 깊이만큼 느끼고 더 이상은 단 한 걸음조차 더 걸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잠이 깨어서 깨어났을 때 베개는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꿈속에서 시작되었던 울음은 현실까지 쫓아와 이어지면서 더 큰 울음으로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꼭 한번은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다짐 같은 것이 생겨났던 모양입니다. 일 년이 지나도록 믿고 싶지 않은, 믿어지지 않는 당신의 죽음을 저는 그제야 조금씩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결국 이렇게 부엉이 바위로 오르는 길 위에 섰습니다. 멀리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 않은 바위에서는 봉하라는 마을 전부가 한 눈에 다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리곤 생각했지요. 당신의 마지막이 왜 그곳이어야 했는지에 대해서요. 가장 배가 고팠지만 가장 아름답고 평화롭던 시절의 고향이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말이에요. 나무와 철망으로 더 이상의 접근을 막은 그곳에 놓인 국화꽃이 가장 외로웠던 당신의 그 최후를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다 보았을 거라 믿어요, 당신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높이의 부엉이 바위,
멀리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멀리에서 본 부엉이 바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높이의 부엉이 바위, 멀리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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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 않은 바위에서는 봉하라는 마을 전부가 한 눈에 다 훤히 내려다보였다.
▲ 부엉이 바위 멀리에서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높지 않은 바위에서는 봉하라는 마을 전부가 한 눈에 다 훤히 내려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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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를 내려와 당신의 초라하기 짝이 없던 생가에 들렀다가 곳곳에서 모여드는 관람객들 때문에 급하게 지어졌다는 기념관(추모의 집)을 찾았습니다. 기념관 앞에는 활짝 웃는 당신을 담은 커다란 걸개그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거나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 전시품들을 보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꺼지지 않는 그리움처럼, 당신을 지켜냈던 촛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또 기념관 안에는 당신의 생전 유품들과 영상물이 전시, 상영되고 있었지요. 그 편 어딘가에서 금방이라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불쑥 말을 걸어오실 것만 같은 그 생생한 모습들이 또 한 번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절대 울고 싶지 않아서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 잠깐 들렀습니다. 체 게바라가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전락해가는 것을 우려한 가족들이 소송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부디 당신을 기억하게 하는 물건들과 함께 그 속에 깃든 당신의 정신도 함께 구매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동행은 "죽음의 장소가 관광지가 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는 이곳은 당신의 시작이면서 끝도 함께 존재하던 곳이기에 단순히 죽음의 장소라고 정의하기엔 많은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도 함께 할 공간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이기도 합니다.

떠나기 전 우리는 잔디밭(그들이 '호화 골프장'이라고 선전했던)에 모였습니다. 그곳에는 생전 당신을 보필하던 김경수 비서관이 나와 인사와 함께 당신에 대한 생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또 누군가 남아서 당신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했습니다.

수많은 인파들과 일정에 쫓겨 더 많이 느끼고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기념 촬영을 마친 후 그렇게 봉하와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만 했습니다. 돌아오면서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하는 것은 그곳에 죽어서도 살아있는 당신의 넋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오늘 멀리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할 것입니다. "친구야! 그는 절대 죽지 않았어!"라고요. 그 친구는 아마도 당신을 웃으며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그는 머리보다 가슴이 앞섰던 사람이었어. 가슴이 부족한 건 머리로 메울 수 없어도, 머리가 부족한 건 가슴으로 다 채울 수 있으니까, 가슴이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거야!"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멋진 가슴들이 모여 나약해진 마음들을 다잡고, 그럴 때마다 당신이 가르쳐준 것들을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도 이젠 울지 않을 테니, 그곳에서 당신도 울지 마세요! 사랑합니다, 우리의 심장이 뛰는 그날까지 사랑하겠습니다.


태그:#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 #추모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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