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6년 서울시청앞 광장을 찾은 한 '붉은악마'가 응원도구를 펼쳐 보이며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2006년 서울시청앞 광장을 찾은 한 '붉은악마'가 응원도구를 펼쳐 보이며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
ⓒ 최윤석

관련사진보기


"북한이 브라질을 이기는 것과 남북한이 평화를 이루는 것 중 어떤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브라질의 한 기자가 북한 축구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 안영학에게 던진 질문이라고 한다. 11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 미디어 담당관이 "정치적인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며 이 질문에 대한 안영학의 대답을 막았다.

그런데 이 질문 하나에는 오늘날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잘 담겨 있다. 분단 65년, 한국전쟁 6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의 냉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천안함 사태의 여파로 남북 간의 무력 충돌마저 우려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취재를 벌이고 있는 <한겨레> 김경무 선임기자의 전언도 다르지 않다. 그는 10일자 기사를 통해 외신기자들이 한결 같이 "남한 사람들이 북한팀을 응원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이 질문의 이면에는 '천안함 공격의 범인으로 지목된 북한을 과연 남한 주민들이 응원하겠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는 듯하다. 김 기자가 "물론이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 북한이 16강에 올라가기를 남한 사람들도 대다수 바라는 것 같다"고 했더니, 외신기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고 전한 것이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나는 2009년 가을, 한 매체에 '미중 핑퐁외교와 남아공 월드컵'이라는 칼럼을 실으며 다음과 같은 희망사항을 피력한 바 있다. 1971년 미국-중국 간의 핑퐁외교가 '나비 효과'를 연출하면서 냉전 시대 최대의 '지정학적 사건' 즉, 닉슨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 관계 정상화에 기여했던 것처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냉전으로 되돌아가던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아래는 당시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1971년 핑퐁외교를 보며 월드컵의 '나비 효과'를 기대했는데

남북한 월드컵 동반 진출의 의미와 이 속에 잉태되어 있는 기회는 한국은 7회 연속, 북한은 무려 44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다는 '축구사적 의미'를 넘어선다. 남북관계의 화해협력 촉진이라는 '한반도 차원의 기회', '전쟁과 분단'으로 각인된 한반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국제적 기회'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한국은 2022년 남북한 월드컵 공동 개최를 타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남아공 월드컵을 전후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남북한 공동 개최를 유치할 경우, 그 자체로도 남북관계는 새로운 장이 열릴 뿐만 아니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중국 간의 핑퐁외교를 통한 데탕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핑퐁외교는 1971년 4월 중국이 미국 탁구대표팀을 초청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뒤이어 미국도 중국팀을 초청해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친선대회를 열었고, 언론에서는 이를 '핑퐁외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미중간에는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태평양을 넘나들은 핑퐁외교는 냉전 시대 최대 '지정학적'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화해 무드에 힘입어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고, 1979년에 이르러서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5g의 가볍고 작은 탁구공이 '지구를 뒤흔든 것'이다.

(중략) 오늘날의 남북관계와 남아공 월드컵 동반 진출을 당시 핑퐁외교를 비롯한 미중관계와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미중관계는 핑퐁외교를 통해 처음으로 문이 열린 반면에, 남북관계는 길게는 1990년부터, 짧게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스포츠를 포함한 교류협력의 물꼬를 터왔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으로 '환상의 나비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다. 기실 2010년 6월은 '한반도가 미래로 가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6월 12일~7월 11일)은 물론이고, 6·15 공동선언 10주년과 한국전쟁 발발 60주년(6월 25일)이 조우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10년 6월이 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기회를 잘 살린다면, 남북한은 6월을 찍고 더욱 희망에 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반면 월드컵이 부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또 다시 '6·25 담론'이 지배하는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그 선택의 몫은 우리에게 달렸다.

골목마다 울려퍼질 '오 피스 코리아'를 꿈꾸며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를 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09년 가을의 소망을 오늘날의 상황에 비춰보면 '일장춘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2022년 월드컵 남북한 공동 개최를 타진하던 움직임은 올해 들어 남한 단독 개최 추진으로 굳어졌고, 6·15 10주년을 맞이해 추진됐던 남아공 남북합동응원단 파견도, 6·15 공동선언 10주년 남북공동행사도 무산됐다. 10년 전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손을 맞잡고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오늘날의 남북한은 '전쟁위기론'까지 거론될 정도로 대결 상태에 진입하면서 또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남북한 선수들이 강호들을 상대로 선전을 벌이고 있을 6월 하순께 '긴장의 바다' 서해에서는 한미 합동 대잠수함 훈련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의 반발을 초래해 또 다시 긴장 고조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란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유엔 안보리가 조만간 천안함 사태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혹시라도 대북 규탄 성명이 채택되면, '초강경 대응'을 천명한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나 3차 핵실험으로 응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싸우지 말자며 욕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 심리전을 위해 MB 정부가 설치한 대북 확성기가 요란한 방송을 시작한다면, 개성공단 폐쇄와 조준격파를 경고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도 걱정이다. 자칫 남한 주민 수백명이 개성공단에 억류되거나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군인들이 교전을 벌이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다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소망해본다. 남북한 지도자는 월드컵이 부여한 긴장완화의 기회를 잘 살려보라고. 혹시라도 무리수를 둬 한반도 주민들의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지구촌 최대 축제에 재를 뿌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고. 

6월 2일 선거에서 '북풍'을 기대했던 집권세력에게 '종이돌'로 준엄한 '옐로카드'를 내보인 국민들의 적극적인 의사 표시도 희망해본다. 때마침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외칠 서울광장에서는 6·15 10주년을 맞이해 '평화통일범국민대회'가 열린다. 한국과 그리스의 첫 경기 다음날인 6월 13일 오후 2시부터이다.

필자가 겪은 2002년 월드컵 때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전을 보면서 외국의 몇몇 지인들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주된 내용은 '한국의 평화롭고 활기찬, 그리고 스포츠를 이용한 평화운동이 인상 깊었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답장을 통해 물어보니 외국인들이 '오 필승 코리아'를 '오 피스 코리아(Oh Peace Korea)'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6월 12일 대한민국을 뒤덮을 '오 필승 코리아'에 이어 6월 13일 서울광장에서 '오 피스 코리아'가 울려퍼지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태그:#월드컵, #남북관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