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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위대가 아닌 지방자체단체의 공무원이 4대강을 마구 파헤치는 굴착기 앞을 가로막습니다. 인천 계양산에는 골프공 대신 맹꽁이와 반딧불이 넘쳐납니다. 서울광장에서는 시민들이 마음 놓고 촛불을 들고, 콘서트를 열고, 추모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눈칫밥'이 아닌 친환경 급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즐거운 상상'의 끝은 어디일까요? 6.2 지방선거로 한나라당이 독점했던 지방권력의 절반 이상이 교체되면서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투표가 내가 사는 동네를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오마이뉴스>가 미리 짚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5월 충청북도 충주시 앙상면 영죽리 이상국씨의 복숭아밭에 꽃이 활짝 핀 모습.
 지난 5월 충청북도 충주시 앙상면 영죽리 이상국씨의 복숭아밭에 꽃이 활짝 핀 모습.
ⓒ 정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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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복사꽃과 노란 민들레가 만들어낸 봄날의 풍경은 사라졌다. 복사꽃이 진 자리에는 갓난아이 주먹만 한 복숭아가 달렸다. 6월 9일, 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남한강 유역은 온통 초록빛이다.

이상국(44)씨는 오전부터 내리쬐는 햇살 아래서 복숭아 과실을 일일이 종이로 싸고 있었다. 이씨는 복숭아밭으로 들어선 기자를 보고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땀을 훔치며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은 1개월 전과 확연히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계속 추진하면... 다음 달 재보궐 선거에서도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두고 보십쇼!"

한달만에 만난 농심은 변해 있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린 과실을 이상국씨가 종이로 감싸고 있다. 부인과 단 둘이 일하지만 최근 농사지을 맛이 난다고 하는 그다.
 꽃이 진 자리에 열린 과실을 이상국씨가 종이로 감싸고 있다. 부인과 단 둘이 일하지만 최근 농사지을 맛이 난다고 하는 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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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다시 재보궐 선거를 이야기했다. 4대강 사업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부와 여당이 다시 심판받을 것이란 경고였다. 이씨의 표정과 말투에는 당당함이 넘쳤다.

이씨가 괜히 기자를 보자마자 대뜸 4대강 사업과 선거 이야기를 한 게 아니다. 우리는 지난달 9일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 구면이다. 당시 김씨는 4대강 사업으로 자신의 복숭아밭을 잃을 운명이었다. 그의 밭을 포함해 영죽리 일대 농지가 4대강 사업 남한강 7공구 '중원지구'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한 달 전, 그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종종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말을 반복했다. 그는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었다.

한 달 만에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의 복숭아밭은 여전히 4대강 사업 공사 부지에 포함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 추진 의지가 확고하다. 달라진 건 단 하나, 6.2지방선거에서 '4대강 사업 반대'를 전면에 내건 야당이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선거 결과가 농부 이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듯했다.

"선거 전에는 토지가 강제수용 될까 봐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년에 농사를 못 지을 수도 있는데, 일이 되겠나. 하지만 요즘은 마음이 조금 놓이고 농사지을 맛이 난다. 내년에 거름으로 쓰려고 한약재 찌꺼기도 발효시키고 있다."

이어 이씨는 "이시종 충북도지사 당선자가 일단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면 4대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며 "4대강 사업이 완전히 취소될 수는 없어도 땅 주인의 권리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며 바뀔 지방정부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의 밭 주변에는 농민들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살고 싶다, 농민 생존권 보장하라!"
"농지 주인 동의 없는 4대강 사업 중단하라!"

이씨와 마을 농민들은 지난 2일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투표소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내건 현수막 내용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 염원을 갖고 한 표를 행사했다. 정부가 주민들이 30년 이상 농사를 지어온 남한강변의 '옥토'에 자전거 도로를 깔고 축구장과 족구장을 조성하겠다고 하는데 투표를 안 할 수 없었다.

충청북도와 충주시는 이번 선거에서 모두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는 민선 1, 2, 3기 충주시장 출신으로 충주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우건도 충주시장 당선자는 충주시 부시장 출신으로 현직 시장인 김호복 한나라당 후보를 따돌렸다.

그의 기대처럼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이 당선자는 지난 1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를 쌓아 강물을 막는 것과 준설을 반대한다"며 "4대강 사업이 치수를 위한 지류정비 쪽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지사는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킬 수 없다. 하지만 준설토 적치장 인허가권과 공사현장에 대한 관리, 감독, 단속을 통해 얼마든지 공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나라당이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영죽리 남한강변에 감자밭. 감자밭 넘어로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영죽리 남한강변에 감자밭. 감자밭 넘어로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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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와 헤어진 뒤 흰 꽃이 핀 감자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박승덕(70)씨를 만났다. 박씨 역시 1개월 전 기자와 만난 적이 있다. 박씨도 선거 후일담을 꺼냈다.

"한나라당이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야당이 좀 많아져야 해! 전에는 (농지를 뺏기면) 농약 먹고 자살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들 좋아졌어.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아!"

선거 후 달라진 마을 분위기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멸종위기종인 단양쑥부쟁이 집단 서식지로 밝혀진 비내늪 일대의 공사가 재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충주에서도 한 시간, 여주에서도 한 시간, 원주에서도 한 시간이 걸리는 교통의 오지. 차량도 인적도 드문 조용한 강가에서 덤프트럭은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공사 진행이 늦은 충북지역의 4대강 공사현장도 공사를 서두르는 듯했다.

공사 현장을 관리하는 감리업체를 찾았다. 충주시 강천리에 위치한 감리사무소 옆에는 남한강에서 긁어낸 준설토가 30여m 높이로 쌓여 있는 적치장이 있었다. 하지만 덤프트럭이 쉴 틈 없이 오가는 경기도 남한강 유역의 적치장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다.

충주지역의 7공구, 8공구 지역은 공사가 올해 초에 시작돼 공정이 얼마 진행되지 못했다. 하도급 업체가 부도가 나는 일도 있었고 주민들의 반발로 공사는 더디게 진행됐다.

한강 7공구 관계자 "선거 결과 때문에 뒤숭숭"

한강 7공구의 공사 감리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현장 분위기는 선거 결과 때문에 뒤숭숭하다"며 "이전 한나라당 단체장들과는 협조가 쉽게 잘 됐는데 도지사 당선자가 사업에 반대한다고 하니까 이제는 조금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달까지 공사가 중단 되어 있던 비내늪의 공사가 재개됐다. 비내늪은 단양쑥부쟁이, 흰목물떼새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살고 있다.
 지난달까지 공사가 중단 되어 있던 비내늪의 공사가 재개됐다. 비내늪은 단양쑥부쟁이, 흰목물떼새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살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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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지방정권의 교체가 공사에 큰 지장을 주진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는 "도지사가 준설토 적치장의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필요한 적치장을 이미 다 확보했다"며 "차량의 운행 단속은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바뀐 주인을 따라가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이 취소되거나 공사가 크게 변경될 것 같지는 않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법의 영역 아니겠느냐"면서 4대강사업 중단 시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충주시장 당선자와 시민들의 엇갈린 반응

충주시청 청사. 우건도 충주시장 당선자는 4대강에 반대하지 않는 다는 입장을 밝혀 이 후 논란이 예상된다.
 충주시청 청사. 우건도 충주시장 당선자는 4대강에 반대하지 않는 다는 입장을 밝혀 이 후 논란이 예상된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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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종 당선자에게 70%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 충주시민들은 이번 선거 결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충주시청 인근에서 분식집을 하는 이아무개(51·여)씨는 "이번 선거에서 야당 후보들을 찍었다"며 "4대강 사업도 문제지만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당을 뽑아야 했다"고 밝혔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도 "4대강 사업 하면 안 된다, (4대강 사업 마친 뒤) 다시 다 뜯어 고치려면 돈이 얼마나 들겠느냐"며 "충주에 살면서 물난리가 나거나 물 때문에 고생한 적 없다"고 4대강 사업의 불필요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우건도 충주시장 당선자 측은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4대강 사업이 낙동강 위주로 가고 있는데 4대강 사업 전체 예산에 1%밖에 못 받은 충주에 예산을 더 가져와야 한다"며 "영죽리 등 농지를 강제수용하고 보상을 할 것인지, 아니면 보존할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4대강 반대'를 내건 민주당이 충북도지사 자리와 도의회(민주당 22석, 한나라당 4석, 자유선진당 4석, 민주노동당 1석)를 장악한 만큼 정부의 4대강 사업 강행은 조금이나마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충주 농민들과 시민들의 '자신감'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자신감을 회복한 충주시민들은 다시 '7.28 재보궐' 선거를 겨누고 있다. 충주시에서는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다.


태그:#4대강, #지방선거, #충주, #이시종, #우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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