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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는 길에 기름을 넣었다. 기름을 다 넣고 우리에게 건네진 빳빳한 종이 한 장이 있었다. 경품 이벤트용 카드였다. 그런 거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 즉석에서 동전을 찾아내 긁었다. 또렷이 나타난 글자들은 '제주도 여행2인권 당첨'이었다. 남편은 막 주유소를 벗어나려다 차를 세우고 주유원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물어보고 왔다.

동전으로 긁고 제주 여행권이 나타났을 때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열광했는데.
▲ 이벤트 카드 동전으로 긁고 제주 여행권이 나타났을 때는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열광했는데.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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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대. 당첨이래. 그런데 인터넷에서 확인해봐야 한다는데…."
"그래, 정말 당첨이면 좋겠다."

그런데 잔 글씨를 자세히 읽어보니, 보너스 경품 제주도 2박 3일 여행 2인권에 호텔/펜션+렌트 48시간이다.

"어라. 이거 항공권은 아니잖아."
"그래애. 그래도 그게 어디야. 숙박하고 렌트카만 해 줘도 꽤 괜찮지."

우리는 열광했다. 이런 당첨은 처음이라는 둥, 안그래도 제주도 한 번 가려 했다는 둥. 그러다 한참을 묵묵히 가던 남편, 드디어 효도 본능까지 나왔다.

"그런데 말야. 이번엔 엄마를 모시고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 그 말이 왜 안 나오나 했어."
"그 비행기 타고 제주도나 함 가 봤으믄…."

86세이신 시어머니 해외여행을 갈망하시다 약간 눈높이를 낮추셨는데, 그 눈높이가 바로 제주도였던 것. 나도 이번 기회에 어머니 자랑거리도 만들어 드리고 잘 됐네, 생각했다. 

아무튼 우리는 '얼른 일보고 집에 가서 인터넷에 들어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종일 설렜다. 그리하여 평소 개인정보 유출이 신경 쓰여 가입을 꺼려하던 나 흔쾌히 보너스 카드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경품수령방법대로 차근차근히 입력해 나갔다. 입력하면서 카드를 다시 살펴보니 그제야 100% 경품 이벤트라는 글씨가 보인다. 그러니까 전원 다 이벤트에 당첨된다는 말이 된다.

수령 입력이 끝나자 이번엔 제세 공과금이 떡하니 나타났다. 우리가 받을 경품가격을 44만원으로 책정하고 22%가 제세공과금이니까, 제세공과금은 96800원이다. 그래도 경품신청은 끝났고 내 핸드폰으로 정상적으로 처리되었음을 알리는 문자도 왔다. 하지만 여행은 2년 안에 하면 되는데 제세공과금은 일주일 안에 납입해야 하고 납입 후 일주일 안에 취소를 해야 전액 환불가능하단다.

깨알 같은 글씨라도 자세히 읽어보아야...
▲ 이벤트 카드 깨알 같은 글씨라도 자세히 읽어보아야...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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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이나 되는 돈이 들어가야 하므로 카드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봤다. 이건 경품행사는 에스오일에서 하는데 제주도 여행권에 대한 모든 책임과 권리는 레이디투어라는 데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잘못 돼도 당초 경품을 시행한 에스오일은 아무 책임이 없다는 뜻인가? 이 점이 좀 애매했다. 레이디투어 홈페이지에 들어기 봤더니, 안내글이 먼저 떴다. 성수기라 상담 문의로 전화가 폭주해 연결이 잘 안 되고 있으니 질의 응답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순서대로 연락을 주겠다는.

다음 날, 레이디투어에 전화를 해 통화를 했다. 하지만 이미 10월까지는 거의 다 찬 상태, 예약이 어렵단다. 결국 비수기나 내년으로 정해야 하는데 한 번만 취소가 가능하고 두 번째 예약했다가 취소하게 되면 제세공과금조차 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거 참 통화를 하면서도 제주도 2박 3일 여행권에 낚인 느낌이 들었다. 

미심쩍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 경품 에스오일만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치킨점, 전자프라자, 피자집, 백화점 등에서도 같은 경품 이벤트가 있었는지 많은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 날을 잘 선택해 갔다 왔다는 댓글도 있었는데, 호텔이나 렌트카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했다.

당첨됐다며 열광하던 우린 김이 빠졌다. 우리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좋은 호텔과 근사한 조식 뷔페로 진짜 멋진 효도를 하고 싶었는데, 호텔은 모텔보다 약간 좋더라, 또 아침 식사는 그냥 집에서 먹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는 식으로 달아 놓은 댓글을 보더니 실망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대기업이 하는 이벤트니까 아무래도 기업 이미지에 걸맞는 알짜배기 경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아닌 것 같다. 에스 오일에도 전화했는데 제주 여행권 경품에 대해서는 무조건 레이디 투어로 미루면서 고객 달래기에만 급급했다.

사실 100% 경품 이벤트라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책임을 전가해야 할 만큼 애매한 경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기보단 단 한 사람에게 주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줘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이벤트였다.


태그:#경품 ,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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