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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청포도> 중 - '이육사'
 

 

싸고 푸짐하고 안심하고 먹을 곳이 많은 듯한데
 
태양의 계절, 6월이다. 곧 7월이 돌아오면 전국적으로 휴가시즌이다. 부산은 해운대 해수욕장 등 있어 많은 피서객이 몰려오는 유명한 관광지. 그런만큼 먹을거리 문화도 화려하고 다양하다. 일급 호텔 수준의 레스토랑부터 일식 횟집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여름 휴가철이 돌아오면 부산에 산다는 것만으로 종종 외지의 지인 및 일가친척들이 "부산에 내려가면 싸고 푸짐하고 믿을 수 있는 맛집 좀 소개 해"라고 부탁을 한다. 이럴 때마다 난 늘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지게 된다.  
 
부산은 해산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그러나 부산이라도 해산물 가격이 만만치 않고, 해산물의 신선도 역시 자신있게 추천하기 힘들다. 사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름난 음식점은 많지만, 한푼이라도 아껴서 가족 휴가를 즐겨야 하는, 내 주위의 서민층에 속하는 여행객들이 원하는, '싸고', '푸짐하고', '믿고(음식 가공재료 등)'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청사포 다운 맛집 다릿돌
 
지난 16일 서울에서 일가친척 다섯분이 사전 연락도 없이 부산역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하던 일을 접고 달려나갔다. 새벽 일찍 행장을 꾸려 부산에 도착한 일행들은 아침도 사실 굶고 내려왔다면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디 싸고 푸짐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맛집으로 안내해라!"라고 부탁했다. 
 
나는 갑작스러웠고, 그러다 생각난 곳이 '삼포길(미포, 청사포 구덕포 해안산책길을 이름)'을 걷다가 두어번 먹어본 시원하고 얼큰한 '추어탕'이었다. 그래, 그 집이라면 일행이 원하는, '싸고 푸짐하고 믿을 만한 맛집'으로 추천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싶었다. 거기다가 주변 청사포 관광까지 함께 할 수 있으니, 최고로 적합한 장소가 아닌가. 
 
그렇게 해서 1시간 후 도착한 다릿돌 전통 음식점에 도착했다. 다릿돌 맛집은 삼포길 산책로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맛집 이름은 청사포의 유명한 다릿돌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그 속엔 사람과 사람 사이 '다릿돌' 구실이 되겠다는 큰 뜻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가게 입구에는 요즘 축구 열풍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건물의 창문들은 정말이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 전통 문짝으로 만든 출입구과 실내 장식들이 가히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가게 메뉴판을 가지고 나온 노(老) 종업원이 매우 낯익었다. 가만히 보니 해운대 미포 철길 부근에서 전통목공소를 운영하던 목수 김영일 옹이 아닌가. 목공소 일은 그만두셨느냐고 묻자, 김영일 옹은 목공소 일이 너무 경기가 없어, 시간이 날 때, 다릿돌 대표 강명심 씨( 김영일옹의 처)가 운영하는 가게에 나와서 식당일을 돌봐주고 있다고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다릿돌 인테리어는 직접 다 시공했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들에게 인기 많은 식당이면...
 
두어번 들릴 때 무심하게 봤던가. 음식을 차리는 상(식탁)과 의자, 조명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마치 어느 고향집 대청 마루에 올라 앉아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일행들은 우선 배가 고프니 이 식당에서 허기를 채울 음식을 먼저 달라고 하자, 가게 바깥 주인, 김영일 옹은 "우리 가게 음식 다 맛나고 '청국장', '추어탕', '잔치국수'는 금방 주방에서 내 올 수 있다"고 추천했다. 때마침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우르르 식당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우리 일행들은 시간을 다투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빨리를 외치면서 음식을 시켰다. 일행 중 누가 택시 기사 아저씨들 입맛이 대부분 까다로운 편인데, 기사 아저씨들의 단골 식당 같으니, 틀림 없이 맛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믿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어머니의 맛, 고향 음식...

 

일행들은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시킨 음식 메뉴 그대로 각자 다르게 시켰다. 잔치국수, 청국장, 추어탕과 해물파전을 시켰다. 각자 메뉴를 달리해서 시킨 관계로 너무 반찬이 많아 한 상에 다 올 릴 수 없을 정도였다. 반찬들은 그냥 보아도 인공 조미료 따위는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 일행 중 음식에 관해서는 무척 까다로운 한 사람이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는 주방의 주모를 일부러 불러내어, "음식에 넣은 고추가루가 혹시 중국산 아니에요 ?"하고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주방의 모든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주모는 웃으며 대답했다. 

 

"손님요. 우리집 음식은 겉보기는 화려하지 않아도요.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다 다시 찾아옵니더. 믿고 드셔도 됩니더. 주위 밭들의 임자들들은 대개 동민들이 직접 가꾸어 먹는 채소라서 믿을 수 있심더. 해산물도 요 앞바다에서 어부들이 새벽에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받아서 씁니더."

 

정말 요즘 식당 음식 겉은 화려해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다릿돌 주방 주모 말처럼 실제 시식해 보니 고향집 어머니의 맛 그대로였다. 비록 빛깔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다릿돌의 메뉴에 올라온 음식 값들도 대부분 오천원 미만이었다. 잔치국수는 3500원, 추어탕은 4500원 청국장 4000원 등이었다. 가격이 저렴한데 나오는 밑반찬 등 너무 푸짐해서 손님 쪽에서는 너무 좋은데, 이렇게 해서 남는게 있나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다섯명이 배가 부르게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총 음식 값이 3만 원에 못미쳤다. 도저히 이 가격으로 다섯명이 배부르게 먹을 식당은 찾기 쉽지 않을 터.
 

가장 청사포 다운 지역 음식맛....청술뱅이(용치) 매운탕 맛..깔끔 시원한 맛
 

 
일행들은 배가 어느정도 부르니 청사포 바다를 구경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녁 겸 간단한 술 안주로 추천할 싸고 맛나는 음식이 없느냐고 묻자, 이 가게 바깥 주인은 웃으며, 우리 집에 가장 청사포다운 음식 '청술뱅이 매운탕'이 있다고 했다. 가격은 1만 5천원~2만원인데, 1만 오천원짜리 매운탕으로도, 다섯명이 저녁식사 겸 술안주로 충분할 거라고 말했다.
 
맛이 있냐고 하니 맛 없으면 돈 안 받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일행들은 저마다 청술뱅이(용치) 매운탕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다고 한 마디씩 했다. 용치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물 좋은 청사포 바다에서 잘 잡히는 생선. 그 생선으로 만든 매운탕이니 가장 청사포적인 토착음식인 셈인가.
 
일행은 초하의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부는 삼포길로 접어 들었다. 찰싹찰싹 해안 절벽에와서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푸른 바다를 끼고 걸어가는 기찻길이 보이는 여름숲 속의 산책길을 걷는 일행들은, 정말 해운대에 이런 한적하고 운치 있는 숲길이 있었느냐고 무척 좋아했다. 나는 내가 해운대 관광안내원이라도 되는 듯, 달맞이 고개와 청사포에 깃든 슬프고 아름다운 전설 등을 얘기해 주었다.
 

 
산책을 2시간 정도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일행들이 짐이 있는 식탁에는 산책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맞춘 듯  펄펄 끓는 '청술뱅이 매운탕'이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사포 앞바다에서 생산된 청각나물무침이 별식으로 나와 있었다.
 
바다 내음 묻어나는 청사포 토착의 맛집, 다릿돌  
 
'청각나물'은 주로 김장김치만들 때 들어가는 김장 재료인데, 요즘은 바다가 오염되어 청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청사포는 청정해역이기 때문에 청각이 나온다는 말이 되는 셈... 다릿돌 가게의 특미 '청술뱅이 매운탕'은, 청사포 앞바다에서 나오는 물고기, 일명 용치를 조리해서 만든 음식. 그 매운탕 이름처럼 비린내가 전혀 없고, 속이 시원할 정도였다.
 
다릿돌 바깥 주인 김영일 옹의 말에 의하면, 주방의 요리담당 주모의 오래 숙련된 매운탕 조리 솜씨도 솜씨지만, 물이 좋은 바다에서 나온 생선이 싱싱하고 좋아서, 매운탕 맛이 더욱 좋은거라고, 청사포 바다가 청정해역임을 몇번이고 강조했다. 
 
정말 오랜만에 맛으로 된 해운대 청사포 맛을 제대로 맛보았다. 함께 온 일행들도 몹시 흡족해 했다. 어느새 주변은 어둠이 몰려왔고 바다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월출의 경치도 일품으로 다가왔다. 이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태그:#다릿돌, #삼포길, #맛따라, #길따라, #청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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