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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글ㆍ사진 : 신미식

- 펴낸곳 : 푸른솔 (2007.7.7.)

- 책값 : 27000원

 

 (1) 구경하는 사진과 살아가는 사진

 

제가 마지막으로 마친 학교는 고등학교입니다. 제가 마친 고등학교는 여느 인문계 고등학교이기에 따로 어떤 특기나 재주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마친 학교가 이곳이든 저곳이든 저로서는 학교에서 배웠다고 내세울 만한 대목이 따로 없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거나 중학교만 마친 사람이 대학교에서 강사나 교수가 되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대학교라는 자리에서 대학생을 가르치는 몫을 맡는 사람은 모두 자격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졸업장이란 숱한 자격증 가운데 하나이며 거의 언제나 어디에서든 내밀어야만 하는 자격증입니다. 흔히 말하는 전문 일자리를 얻으려면 대학교 졸업장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출판사이든, 온누리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언론사이든, 아이들 가르치는 터전이라는 학교이든, 동네사람을 보듬는 일을 맡는다는 공공기관(동사무소)이든, 졸업장이 없고서는 입사지원서 하나 내놓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글쓰기를 가르치거나 배운다 할 때, 그림그리기를 가르치거나 배운다 할 때, 노래부르기를 가르치거나 배운다 할 때, 춤추기를 가르치거나 배운다 할 때, 사진찍기를 가르치거나 배운다 할 때,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왔다거나 어느어느 사람한테서 배웠다고 하는 경력이나 자격을 들이밀어야 합니다.

 

나아가,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 따위를 처음으로 배운다든지 새롭게 배운다든지 하는 우리들 스스로 '어느어느 대학교'라든지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온 아무개'라든지 '이런저런 강좌나 특강'이라든지 '어찌어찌 이름난 누군가'를 찾아나섭니다. 하다못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우리 삶에 따라) 밥하기를 배운다는 자리에서도, 우리를 낳아 기르며 먹여살린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밥하기를 배우려 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요리학원에 나가야 하고, 요리교실을 들어야 하며, 요리책을 들여다보거나 요리방송을 보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렇다고 대학교라는 틀이 나쁜 틀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섬돌을 밟아 올라가듯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틀입니다. 샛길로 빠지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잘 붙잡아 주며 이끄는 틀입니다.

 

 

그런데, 대학교라는 배움터는 열린 마당이 아닌 갇힌 틀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길을 찾으며 저마다 다른 삶을 꾸리도록 길벗이 되어 주는 열린 마당이 아니라, 어떠한 자격증을 따내도록 한 가지 길을 걸어가도록 하는 갇힌 틀입니다.

 

열린 마당에서는 무슨 솜씨나 재주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따로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밥물 맞추기와 나물 무치기를 알려주는 할머니가 무슨 솜씨나 재주를 부려서 더 맛나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저 밥을 할 때에는 물을 어찌 맞추고 나물을 무칠 때에는 어떻게 하면 된다고 가르칠 뿐입니다. 갇힌 틀에서는 언제나 솜씨와 재주를 가르칩니다. 따로 가르치지 않고서는 따로 배울 수 없습니다. 밥물을 맞출 때에 비율을 따지고 부피를 셈합니다. 쌀알을 몇 그램 떠서 몇 차례 씻어서 어느 높이가 되도록 맞추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나물은 몇 그램을 마련하고 어디를 어느 만한 길이로 다듬어서 몇 분에 걸쳐 어떠한 그릇이나 냄비나 불판을 쓰는데 어떤 양념을 얼마 만한 부피를 어느 때에 넣어서 무치라고 가르칩니다.

 

지난 주부터 어찌저찌하여 어느 대안학교 선생님들한테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저처럼 대학교를 안 나왔을 뿐 아니라, 사진 전공조차 안 했으며, 가르쳐 준 사진 스승이 없는 사람한테 사진을 배우겠다고 하는 분들이 참 용하구나 싶은데, 저로서는 즐겁게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너덧 해쯤 앞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자원봉사 활동가 아줌마 아저씨한테 사진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나 이때나 제 마음은 매한가지입니다. 저한테 '사진 배우기'를 하겠다는 분들은 '가르쳐' 주기를 바라시지만, 저는 사진을 가르치지 못하고 가르칠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가르치려 한다면, 모든 사진기마다 딸려 있는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손전화를 장만해도 이 손전화에 딸린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잘 다룰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마련해도 이 자전거에 딸린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됩니다. 자동차를 사서 몰든 오토바이를 사서 몰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물건에 딸린 설명서를 찬찬히 읽으면서 이 물건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스스로 익힐 노릇입니다. 사진이라고 다르지 않고, 그림이나 글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볼펜을 쓰는 솜씨를 익히고자 글쓰기를 배운다 하지 않겠지요? 붓을 놀리는 재주를 알고자 그림그리기를 배운다 하지 않을 테고요.

 

 

사진기 다루는 재주나 솜씨 때문이라면 저 같은 사람한테서 사진을 배울 까닭이 없습니다. 아니, 누구한테서든 배울 까닭이 없어요. 이는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요, 사진강좌나 사진교실 같은 데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재주나 솜씨는 어느 누구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재주나 솜씨는 '사진기 사용설명서'를 읽으며 스스로 알아차릴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사진기 단추를 눌러 사진을 만드는 일이란, 빨래기계 단추를 눌러 빨래를 하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사진을 배운다고 할 때에는 사진기 다루는 재주가 아닌 사진 한 장에 담을 내 넋과 삶을 배우려 한다는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진 한 장을 어떠한 눈길과 매무새로 바라보는가를 돌아보고, 사진 한 장을 얻고자 어떻게 마음쓰고 애쓰고 힘써야 하는가를 살피며, 사진 한 장을 얻고 나서 이 사진으로 내 둘레 이웃과 동무하고 즐거운 눈물과 웃음을 주고받느냐를 헤아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따라 사진을 찍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따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사람을 사귑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배운다 할 때에는 우리 삶을 배우겠다는 셈이요, 이제까지 보내 온 내 삶을 찬찬히 되새기고 되짚으면서 앞으로 꾸릴 내 삶이 어떠한 모습과 매무새가 되면 좋을까 하고 내다보는 셈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로 사진을 읽을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려는 걸음걸이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맨 먼저 내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사진찍기는 못합니다. 내 삶을 모르는데 무슨 글쓰기를 하며, 내 삶을 알려 하지 않는데 무슨 그림그리기를 하겠어요.

 

 

오늘날 숱한 사람들이 사진기를 쉽게 장만하고 사진을 쉽게 찍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사진찍기란 몇몇 부자나 예술쟁이들이 겉멋 부리듯 하는 놀음놀이가 아니니까요. 비싸구려 사진기만 사진기가 아니요, 값싼 1회용 사진기 또한 사진기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어야 하며, 사진기는 누구나 장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빼어난 장비를 갖추었다고 빼어난 사진이 나오지 않으며, 허술한 장비밖에 없다고 허술한 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숟가락을 들고 주걱을 들며 칼을 든 살림꾼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밥이듯, 사진기를 쥔 우리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왜 어디에서 언제 찍으려 하느냐는 마음가짐을 다스리는 만큼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기를 들고는 겉멋을 부리고 싶다면야 얼마든지 겉멋을 부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겉멋에 들린 삶을 꾸리며 겉멋을 한껏 뽐내는 또다른 길로 사진기를 쥘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길을 걸어간다고 잘못이라거나 몹쓸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을 찍어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길로 접어들지 못할 뿐이니, 이렇게 겉스치는 길로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구경꾼 사진을 얻습니다. 나 스스로 속알을 채우며 보듬는 길을 걸어가려 한다면 시나브로 속알이 야무지거나 단단하여 그윽한 멋이 풍기는 사진을 얻습니다. 사랑스레 꾸리는 삶이기에 사랑꾼 사진을 얻어요.

 

그런데 사진 가르치기를 두 번째로 해 보면서 적잖이 걱정스럽습니다. 저로서는 제 삶을 아름다이 가꾸고 싶어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고 싶은데, 사진을 배우려는 분들은 어떤 길을 걷고자 하시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따로 사진 재주만을 배우려 하지 않느냐 싶어 근심스럽습니다. 대안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하루하루란 아이들한테 지식을 집어넣는 일이 아닐 텐데,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배우려 하는 사진이란 당신 스스로 '사진 다루는 지식'으로 흐르지 않느냐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구경하는 삶이라 할 때에는 오로지 구경하는 사진만 얻으며 구경하는 사진이 아름다운 듯 여길 뿐 아니라 구경하는 사진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라 할 때에는, 그러니까 땀흘리고 마음쏟으며 꾸리는 참삶일 때에는 땀흘리는 사진이고 내 마음 깊이 바쳐진 사진이며 참다운 사진으로 나날이 거듭납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아름다우나, 오늘은 오늘대로 어제까지 보낸 삶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디는 새로우며 빛나는 삶을 사랑하고 싶다면, 티없는 사랑꾼 사진을 즐기고 싶다면, 우리는 사진 지식을 내려놓고 사진 사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사람 삶터를 담는 사진이란

 

"사진가가 아름다운 풍광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34쪽)." 하고 말하는 신미식 님은 당신 사진을 그러모은 작품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얼마 앞서 <사진은 감동이다>(2010)를 엮었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을 때>(2009)라든지 <천국의 땅, 에티오피아>(2009)라든지 <행복 정거장>(2008)이라든지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2008)이라든지 <미침,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2007)라든지 <카메라를 던져라!>(2006)라든지 <마다가스카르 이야기>(2006)라든지, 지난 2002년부터 숱한 사진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2007)는 사진찍기 한길을 걸어가는 당신 삶과 넋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책을 여러 번 되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틀림없이 '사진쟁이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기쁜' 일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쟁이 스스로 내가 남긴 사진에 아름다운 모습이 담겼을 때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이 아름다이 찍은 사진 한 장을 이튿날이 되어 보잘것없다고 느낄 줄 안다면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든 '어제 쓴 글'과 견주어 '오늘 쓴 글'이 더 아름답거나 훌륭하기 마련이요, '어제 그린 그림'과 맞대어 '오늘 그린 그림'이 한결 빛나거나 놀랍기 마련입니다. 사진쟁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책을 내놓으려고 하는 이들은 으레 한 가지 사진감을 놓고 아무리 짧아도 열 해는 잇달아 꾸준히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까닭은 오직 이 한 가지 때문입니다. 어제 찍은 사진이 제아무리 훌륭했어도 오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 보잘것없거든요.

 

사진쟁이가 되었든 그림쟁이나 글쟁이가 되었든 모두 한 가지 매무새입니다. 첫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내 사진에 아름다움이 담겼으면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오늘 찍은 사진은 오늘로 잊고 이듬날에는 이듬날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이 일이 나에게 물질적으로 풍요를 채워 주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사진은 직업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호흡법이기 때문이다 … 이곳에 실린 사진의 인물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에겐 잊혀지지 않을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와 동떨어진 피사체가 아니라 나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친구로 다가가 찍은 사진들이 결국 내 마음을 만진다 …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작품성의 의미를 떠나 신미식이 만난 귀한 친구들이라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사진을 찍기 전에 사람을 먼저 사랑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아져 결국은 지금의 내가 되었다. 카메라를 장만한 지 이제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 나는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스스로 감사하며 감동이 있는 사진을 계속 찍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로 남길 원한다. 만들어진 틀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가 아닌 스스로 찾아낸 삶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가 된 것은 나에겐 행운이다 ..  (책을 내면서)

 

 

사진 한 장 아름다이 찍은 사람은 누구보다 사진쟁이 스스로한테 영향을 끼칩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아름다움 그대로 담아낸 사진쟁이는 이웃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며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이끌기 앞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손이 덜덜 떨리면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사진쟁이라는 사람은 당신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죽이거나 밀어내어 손가락이 덜덜 떨리지 않도록 다그치면서 차분하게 아름다움을 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손가락이 덜덜 떨리면서 찍은 사진이 아니고서는 이웃사람한테 벅차오르는 가슴이 무엇인지를 나누지 못합니다. 벅차오르는 가슴일 때에 벅차오르는 그대로를 담아야지, 벅차오르는 가슴을 다독이며 담은 사진에는 '벌써 차분해지고 만 재미없거나 따분한' 사진이 박히고 맙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으로서는 '이 사진을 찍을 때에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데?' 하고 말할는지 모르나, 사진을 보는 사람으로서는 '사진쟁이가 덧붙이는 말' 때문에 '그렇군요!' 하고 생각하지, 사진을 보는 사람 스스로 가슴이 울렁거리지 못합니다.

 

신미식 님은 2007년에 열여섯 해째 사진찍기를 했다 했으니, 2010년이면 열아홉 해째요, 2011년에는 스무 해째가 될 테지요. 그렇다면 궁금합니다. 이제는 신미식 님이 "(당신 아닌 다른 사람들한테) 감동이 있는 사진을 계속 찍을" 생각인지, '누구보다 당신 스스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삶을 꾸리며 사진을 즐길'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신미식 님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는 그런 존재로 남길" 바라기 앞서, 신미식 님 스스로 찍은 사진으로 남들보다 당신 스스로한테 영향을 끼치며 당신 삶을 스스로 티없이 맑고 밝으며 곱게 다스릴 수 있기를 바라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소금호텔을 나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한다. 길 하나 없는 하얀 사막을 달리는 운전사는 이정표도 없는 길을 잘도 찾아간다. 아마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에게만 보이는 특별한 길이 있는 듯하다 … 난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플라밍고의 동작 하나하나를 담기 위해 숨죽이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렇게 분홍빛의 플라밍고는 처음으로 내 카메라의 포로가 되었다. 한참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운전사가 오더니 나를 보고 웃는다. 왜 그러냐고 어깨를 들썩이니, 이곳은 플라밍고가 많은 곳이 아니고 다음에 가는 호수가 진짜 제대로 된 플라밍고 서식지라는 것이다. 난 이곳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는데, 이보다 더 큰 서식지가 있다니 그저 놀라울 수밖에 ..  (30, 33쪽)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라는 사진책에서 신미식 님은 '사진쟁이로서 당신 나름대로 아름다이 걸었던 길'은 그다지 밝히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로 걷는 아름다운 길'이 아니라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아름다움을 본 길'만 자꾸 되풀이합니다. 당신이 두 눈과 두 다리와 온몸으로 부대낀 여행지에서 마주한 아름다움을 그저 '풍광'으로 받아들일 뿐, 당신 '삶'으로는 삭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딛었을지도 모르는 낯선 자연과 그들의 소중한 삶 속에서 난 미치도록 행복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82쪽)" 같은 말을 해야 하고 들어야 할까요. 우리는 이런 말마디에 뭉클해 해야 할는지요. 우리는 우리 둘레 여느 삶터 여느 이웃하고 복닥이는 삶에서 '미치도록 즐거운 삶자락'을 느끼고 잡아채며 담아내는 사진쟁이 길을 걸어야 참다이 아름답지 않으랴 싶습니다.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름다움을 깨달을 때에 내 이웃 보금자리에서도 내 이웃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를 깨닫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진쟁이 신미식 님 말은 슬픕니다. 아직 한국사람이 안 내디뎠다는 그곳 모습을 처음으로 찍어야만 미치도록 즐거울는지요. 수많은 사람이 다녀간 곳에서 '수없이 스친 사람들 어느 누구도 깨닫지 못하거나 마주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 모습을 신미식 님 당신만은 날카롭고 포근하며 따스하게 잡아채거나 느껴 사진 한 장으로 옮길 노릇이 아닌지요.

 

아무도 못 본 모습을 처음으로 사진으로 담을 때에 즐겁다면, 그예 1등주의와 다름없는 최초주의로 머무는 삶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사진찍기란 1등주의가 아니고 최초주의가 아닌데, 사진찍기란 글쓰기와 그림그리기와 다름없는 아름다움 찾기일 텐데, 사진찍기란 사진기를 든 사람부터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둘레 이웃과 동무한테 아름다움을 나누는 일일 텐데, 왜 '(구경꾼한테)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일컫는 곳에만 찾아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벌어진 틈이 있는 곳에서는 아름다운 연기가 올라온다. 함께 온 여행자들의 입에서는 탄성소리가 터져나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함께 기쁨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 이곳에 서면 사람은 모두가 작아진다. 그리고 한없이 작아진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그랬듯이, 이곳을 여행하는 모든 여행자가 그랬듯이. 감격에 겨워 흘린 눈물은 새로운 여행자들을 이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 직접 오를 수는 없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여행자의 특권 앞에 난 심장이 뛰었다 ..  (50, 62, 77쪽)

 

여행하는 사람은 당신한테 낯선 곳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여행하는 사람 당신으로서는 낯선 곳이지만, 여행하는 사람이 찾아간 곳에서 태어나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하나도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여행지'라는 곳이 '고향'인 사람하고 여행지가 말 그대로 '여행지'요 '낯선 곳'이요 '처음 내딛는 곳'인 사람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여행지 모습을 당신으로서는 '처음 사진으로 담는다' 할지라도 여행지를 여행지 아닌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은 '늘 으레 보던 모습'이요 '늘 으레 사진으로 담은 모습'입니다.

 

 

플라밍고 호수를 사진으로 찍는 신미식 님을 보며 웃던 운전기사는 '플라밍고가 조금 모여 있는 곳은 이 나름대로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 한편 '플라밍고가 구름처럼 모여 있으며 대단히 아름답다'고 하는 곳을 함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는 소리가 아니라, 두 곳이 저마다 달리 아름다운 줄을 알고 있습니다. 고향땅 운전기사는 어느 곳에 가든 그곳에 알맞춤하게 아름다움을 맛보며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러나 여행하는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땅 사람'처럼 머물고 살고 일하고 놀며 지낼 수 없으니 겉훑기처럼 몇 가지만 살짝 보고 그치겠지요.

 

여행이란 '눈을 넓히는 일'이 아닌 '좁은 눈을 자랑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며 내 삶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본다지만, 내가 보았다는 사뭇 다른 모습이란 '속내를 알고 보면 내가 찾아간 낯선 땅 참모습이 아닌 몇 가지 겉스친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내가 찾아간 낯선 땅을 속속들이 느긋하고 너그러이 돌아볼 수 있으면 여행이란 더없이 '눈을 넓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여행을 한다는 분들은 얼마나 '눈을 넓히고자 넉넉하고 느긋하고 따스하게 여행하는 발걸음을 떼고' 있으려나요. 우리들 여행자는 나라밖에서는 나라밖에서대로 좁은 눈으로 몇 가지만 겉스쳐 보고 있는 한편, 나라안에서는 나라안에서대로 내 삶터와 동네와 이웃을 넉넉하고 속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그저 밖으로만 눈을 돌리고 있지 않는지요. 우리들한테 고향을 우리 고향으로 여기지 못하면서, 다른 '여행지가 고향인 사람들 터전' 또한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곳인지를 살피지 못하는 쳇바퀴 돌기가 아닐는지요.

 

..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 가슴으로 남기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남긴 수많은 사진들이 전부 가슴에 담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 바쁘게 살아갈 필요가 없는 이곳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두고두고 나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줬다 … 아마존의 숲을 걸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이 숲속 길을 걸으면서 내가 정말 아마존의 밀림에 와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져야 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온 내 여행의 여정들을 생각해 봤다. 여행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후로 가장 가슴에 남는 여행이라고 생각되어진 이곳에서 난 너무나 행복했다. 여행이란 꼭 대단한 것을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꿈꾸던 그곳에서 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114, 141쪽)

 

 

신미식 님은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라는 사진책에서 끊임없이 스스로한테 말합니다. "여행이란 꼭 대단한 것을 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이런 말 뒤에는 어김없이 "하늘의 신이 이들에게 선물한 최고의 자연" 같은 말마디가 이어집니다. 입으로는 대단한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진으로는 대단한 모습만을 사진으로 담아야 하는 듯 책을 엮었습니다.

 

.. 인도의 골목에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사진을 찍을 것인가, 그냥 지나칠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진가의 선택이다 … 여행자들은 사파의 순수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 찾아오지만 정작 이들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겠지 … 모른다바 바닷가의 눈부시도록 신비한 오렌지색 하늘과 그 아래 휴식을 취하러 나온 사람들의 찬란한 오후는 하늘의 신이 이들에게 선물한 최고의 자연이다. 난 이들이 매일 접하는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하늘을 잠시 훔쳐본 이방인일 뿐이다 … 니켈의 주요 생산지이자 뉴칼레도니아의 수도인 누메아는 흔히 작은 프랑스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적인 프랑스의 모습을 닮았다. 태평양에서 프랑스의 문화를 느껴 보는 즐거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프랑스의 니스를 옮겨 놓은 듯한 건물들과 부둣가에 정박돼 있는 화려한 요트들을 구경하는 것도 이곳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다 ..  (214, 251, 323, 355쪽)

 

인도 골목길이든 한국 골목길이든 숱한 이야기가 서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골목동네 사람들이 잘 읽거나 깨달을 수 있으나, 토박이 아닌 구경꾼 또한 어느 만큼 읽거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머무는 사람이라고 더 잘 읽거나 깨닫지 않으며, 구경꾼이라고 하나도 못 알아채거나 못 읽지 않습니다. 저마다 살아낸 만큼 읽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려는 몸짓만큼 읽습니다.

 

사진책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를 덮을 무렵, "태평양에서 프랑스의 문화를 느껴 보는 즐거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하는 대목을 읽고는 무릎을 칩니다. 그렇군요. 신미식 님은 태평양에서 태평양 문화를 느끼는 즐거움 못지않게 '프랑스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었군요. 태평양 한복판에 뜬금없이 프랑스 문화가 있는 까닭을, 프랑스사람이 왜 뜬금없이 태평양 한복판까지 저희 문화를 심어 놓았는지를 읽지는 못하는군요.

 

 

스스로 더 읽으려 하지 않거나 스스로 더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더 아름다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더 바라볼 수 없으며 스스로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한국땅 곳곳에 숱하게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가 심어 놓은 집과 건물과 문물' 또한 즐겁게 맛볼 수 있는 노릇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못박혀 있는 일제강점기 문화를 얼마든지 즐겁게 맛볼 수 있습니다. 신미식 님이 태평양 한복판 '프랑스 식민지 자국'을 즐겁게 맛본다고 하는데 토를 달거나 말꼬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하는 분들 마음이 이토록 가난하다면 어떤 사진이 태어날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I am a Photographer 나는 사진쟁이다 - 신미식 포토에세이

신미식 지음, 푸른솔(2007)


태그:#사진책, #사진읽기, #사진찍기, #책읽기, #삶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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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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