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통령 내외도 오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 꼬마 손님들을 직접 대통령 전용기에 태워줬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영부인 할머니는 어린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됩니다. 어린이 발을 밟지 않으려다 그만 넘어지기까지 했습니다."

80년대 '땡전 뉴스'가 아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KBS가 보도한 이명박 대통령 동정 보도의 일부분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KBS는 지난해 5월 5일에도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아저씨라고 불러요", "대통령 그만두면 녹색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세세히 전달하기도 했다. 보도 말미에는 "이 대통령은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정부에서도 초등학생들이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도 담았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 "KBS가 노골적으로 대통령을 홍보하고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23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야 5당 주최 KBS 수신료 인상, 쟁점과 해법' 토론회에서 김 사무처장은 KBS의 "친정부적 태도"를 조목조목 짚었다.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거만 알린 PR방송, KBS"

23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 'KBS 수신료 인상, 쟁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23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 'KBS 수신료 인상, 쟁점과 해법을 모색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김 사무처장은 "KBS는 정부에 불리한 의제는 외면하고 유리한 의제는 부각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이 '외면'의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은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사퇴를 발표한 지난달 30일 보도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경기지사 후보는 그날 "유시민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지만 3사 중 KBS만이 '지지선언'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 당시 심상정 후보의 사퇴 및 지지 선언은 지방선거를 2일 앞둔 시점의 가장 큰 이슈였음에도 KBS가 이를 외면했다는 설명이다.

'부각'의 대표적인 예로는 천안함 보도를 꼽았다. 김 사무처장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0일부터 이번 달 1일까지 선거보도와 천안함 관련 보도를 비교해 보면, 선거보도는 KBS 59.5건, MBC 55건, SBS 51.5건인데 반해 천안함 보도는 KBS 112건, MBC 81건, SBS 101건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KBS와 SBS의 경우 천안함 관련 보도가 두 배 가까이 많았던 것인데, KBS가 공영방송임을 감안하면 KBS의 보도태도가 더 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KBS의 보도태도를 비판한 김 사무처장은 "KBS는 다시 권력의 나팔수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임에도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KBS가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수신료 인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날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강상현 연세대 교수는 김 사무처장의 발표 내용을 정리하며 "한 마디로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거만 알린 정권 PR방송, KBS네요"라고 말했다.

"선 KBS 정상화, 후 수신료 인상"

야 5당 주최 KBS 수신료 인상 토론회에 참석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서갑원 민주당 의원, 진보신당의 조승수 원내대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야 5당 주최 KBS 수신료 인상 토론회에 참석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서갑원 민주당 의원, 진보신당의 조승수 원내대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이주연

관련사진보기


김 사무처장의 발표에 앞서 축사에 나선 야 5당 정치인들은 KBS 정상화가 먼저 된 후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KBS가 변해야 국민이 수신료 인상을 이해하고 합의할 수 있다"며 "KBS가 먼저 나서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도 "90년대 KBS가 공정 방송을 위해 노력해 당시 불었던 KBS 수신료 거부 운동이 잠잠해졌다"며 "그런데 지금 또 다시 KBS는 MB 방송이라는 비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KBS 수신료 인상은 말도 안 된다"며 "KBS의 공공성이 강화되는 날이 오면 내가 앞장서서 수신료 인상 운동을 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KBS 수신료프로젝트팀' 김대식 박사는 "수신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라고 주장하지만 정치적 독립 문제는 정연주 사장 때도, 지금에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며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되었느냐 여부로 수신료 결정한다는 것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신료는 인상해주고, 공영성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논의해보자"고 덧붙였다. 

곧장 비판이 이어졌다.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공영방송을 이야기할 때 정치적 독립 문제는 애초부터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라며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 역시 "정치적 독립은 거론하는 것조차 민망한 문제다"라며 "3년 전 정치적 독립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야말로 정치적 공세였고, 지금은 팩트다"라고 비판했다.

KBS 이사,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로 KBS 수신료 인상 추진 난항

한편, KBS 측은 그동안 "29년 동안 2500원이 유지 돼 수신료 현실화가 필요하다"며 "수신료가 인상되면 질 높은 콘텐츠로 세계 대표 공영방송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입장을 바탕으로 KBS는 23일 열린 KBS 이사회에 수신료 6500원 인상안과 4600원 인상안 등 2개의 안을 내놨다.

당초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표결을 통해 최종 인상안을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여당 추천 이사와 야당 추천 이사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이사회는 끝났다.

앞서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사회 직전,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수신료 인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야당 추천 인사들이 KBS 수신료 인상안 표결에 반발하는 이유는 KBS 이사회의 표결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이사회 표결 절차가 완료되면 이후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회 승인 절차 등을 거쳐 KBS 수신료 인상이 최종 확정된다. 

야당 추천 이사들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수신료 인상에 크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진실을알리는시민들의 모임' 등은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도 21일부터 100일 동안 'KBS 수신료 인상 반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반발에 부딪혀 KBS의 수신료 인상 추진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태그:#KBS, #수신료 , #6500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