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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에게 '천안함 침몰에 관한 참여연대 입장'(PSPD Issue Report IR-20100601)을 보낸 것을 두고 여당과 극우·보수단체들은 단지 "유감" 표명 정도를 넘어 "국익에 반하는 비이성적 행위"(정운찬 총리), "반국가적 행위"(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반역행위"(이회창 선진당 총재), "이적행위"(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들의 6월 16일 성명) 등으로 그 비난의 수위를 높이다가 급기야 지난 16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비난 내지 고발의 이유는 참여연대의 서한이 "천안함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이명박 대통령 5·24담화)는 한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어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런 비난들은 전혀 근거가 없다. 참여연대 안보리 서한의 의의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두 국가가 "한반도 주민들의 안전을 담보로 한 일련의 공격적, 군사적 언행들" 끝에 "국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위태로운 조치들"을 성급히 결행함으로써 "현재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태에 있는" 남북관계가 전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하는 데 있다.

 

26쪽에 달하는 이 서한은 어느 쪽에서도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키지 않았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 점을 입증했다고 확신하여 북한에 압박을 가중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참여연대 서한은 천안함이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자료와 증거가 "여전히 불충분하여 숱한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 "조사 발표 이후에도 계속되는 번복으로 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다름 아닌 "북한" 잠수정이 침투하여 어뢰공격을 가했다는 것도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여 도출된 것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결국 집안을 망치는 확실하지 않은 속단과 예단

 

참여연대는 북한이 어뢰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이 점은 참여연대도 모를 일이다). 참여연대는 "북한"이 "어뢰공격"을 했다고 입증하는 데 "미진한 조사를 보강"하라고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자국민도 납득하지 못하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국제사회에 북에 대한 강력한 압박조치를 호소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를 일단 자제시키려는 것이다. 더불어 북에게도 절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조사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납득할 수 있는가? 다음에 열거하는 이름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파악해보자.

 

① 라피에르, 클래스비, 쉬너, 호욷스, 폴리아드, 보덴하이머 등 26명 ... 잘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다음 명단으로 이동하자.

② 모하메드 아타, 아흐메디 알감디, 하니 한주르 등 17명... 어느 정도 짐작이 갈까? 그래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면 여기에 오사마 빈라덴을 추가해 보자. 그럼 연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③ 강민철, 신기철 등 3명 ...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

④ 김승일, 김현희... 이제야 분명해질 것이다.

 

①은 올 1월 20일 두바이 특급호텔에 투숙했다가 살해된 하마스 고위인사인 마무드 마부의 암살용의자로 두바이 경찰이 지목한 이스라엘 모사드 특수부 키돈 소속 요원들의 공작명들이다. 두바이 경찰은 이들의 사진까지 제시하였다(두바이 경찰이 제시한 마부 암살사건의 용의자와 그 출입국 경로).

②는 9·11테러범으로 미국 정부가 공식으로 밝혀낸 알카에다 요원들로서 그 배후가 빈 라덴임을 적시했다. 미국 정부는 실명이 확인된 이들의 배후자인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결행했다(9·11테러범 명단과 그 사진들).

③은 1983년 10월 9일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에 투입되었던 북한 특수요원들로서 이들이 생포되자 당시 버마 정부는 북한과의 오래된 공식 외교관계를 장기간 단절했다. 당시까지 버마와 북한은 비동맹세력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거의 동반자 관계였다.

④는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를 감행했던 당시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들이었다. 당시 북한은 지금 천안함 폭발을 부인하는 정도에 훨씬 못미치게, 아니 아예 침묵을 택했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북한을 합법국가로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북한이 유엔에 가입까지 한 실효국가인 한, 단지 '정황증거들'만으로 그 국가가 범죄행위를 범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와 이명박 정권에 묻는다. '범인'은 누구인가? 우리 국가의 조사능력이 두바이 경찰만도 못하는가?

 

분명히 북한 체제는 안팎으로 호전적 폭력성을 숨기지 않은 위험한 행보를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이 연속적으로 공격성을 보였다고 해서 일어난 사건마다 북한이 범했다고 몰아친다면, 그런 추정은 자칫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확률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그것이 발생함에 있어서 자체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다. 앞에서 조커를 뽑았다고 해서 그 다음에도 바로 조커를 뽑을 것으로 예단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조커를 뽑지 못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도박사의 오류다. 이런 속단과 예단에 기대어 도박을 계속하면 집안이 망할 우려가 있다.

 

어떤 국가나 조직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의심되어 전쟁에 이를 수도 있는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실명으로 그 용의자를 적시해야 한다. 범인은 모르는데 범행만 갖고 그것을 저질렀다고 어떤 국가에 포괄적 혐의를 건 뒤에 그 국가더러 자발적으로 범행을 시인하고 처벌을 달게 받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위의 이름들은 그 범죄실체들, 즉 이스라엘, 알카에다, 그리고 폭파공작 당시의 북한으로 하여금 범행을 부인하기는커녕 최소한 침묵하게 만든 명시적 증거들이었다.

 

이 나라에 참여연대가 있어 너무나 자랑스럽다

 

2010년 3월 26일, 우리 젊은이 46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저 범죄적 행위를 북한의 정찰총국이 자행했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정보력을 투입하여 다음의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즉 북한 정찰총국의 어떤 부서, 어떤 계급의 누가, 어떤 경로로, '연어급 잠수정' '몇 호'를 몰고 백령도 앞바다까지 침투했는가? 그리고 우리 "천안함"이 그 날 그 시간 그 위치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1번" 어뢰를 쏘아 정확하게 격침시켰는가? 그 범인과 소속만 북한 안에서 확정되면 "무자비한 보복"을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인터폴에 국제수배령을 내릴 수 있고, 중국이나 러시아에 매달릴 것도 없이 반테러 국제연대는 자동적으로 가동된다.

 

만약 이것이 국가 안보의 기밀사항이라서 범인들의 실명 또는 공작명조차 적시할 수 없다고 한다면 분명히 되물어 보자. 갖가지 국가행위들 가운데 국가의 흥망이 걸린 전쟁보다 더 중대한 것이 있는가? 그리고 바로 이런 국가대사의 결단에 임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적시에 공개하라고 부지런히 모아온 것이 국가의 기밀 아닌가? 이럴 때 기밀을 공개하여 자꾸 숨으려드는 용의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군대와 정보부의 존립 근거가 아닌가?

 

국가가 잘못될 수도 있는 길을 성급하게 가고 있으면 몸을 던져 막는 것이 이 국가의 시민된 도리이다. 전쟁만은 피해야 하고 전쟁의 위험을 불사하는 도박의 기미가 있다면 서한이 아니라 무엇인들 보내지 못하겠는가? 두바이 경찰 수준에도 못미치는 조사 결과를 갖고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말릴 수만 있다면 유엔 아니라 어디엔들 편지 쓰기를 사양할까?

 

참여연대가 아니더라도 조국의 평화를 갈망하는 애국자라면 지금 이 순간 당연히 평화의 서한을 보내야 한다. 유엔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그리고 그 어떤 외국에도 말이다. 바로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이 나라에 참여연대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덧붙이는 글 | 홍윤기 기자는 동국대 철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천안함, #참여연대 서한, #평화의 서한, #홍윤기, #유엔 안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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