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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방송된 'PD수첩' -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의 한 장면.
 29일 방송된 'PD수첩' -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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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에서의 폭로와 MBC <PD수첩>의 보도를 계기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PD수첩>은 6월 29일 방영한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라는 고발 프로그램에서 사유화된 권력이 한 민간인의 인생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은 불법사찰 및 표적수사 과정을 생생하게 고발했다.

자신이 30년 동안 몸담았던 한 은행을 명예퇴직한 뒤에 그 은행의 용역업체를 운영하던 김종익(56)씨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평범한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2008년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쥐코>라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갈무리한 순간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고졸 은행원 출신의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의료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패러디해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과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 등을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웹서핑 중에 우연히 발견해 블로그에 스크랩해 놓은 것뿐이었다. 그의 블로그 또한 하루에 지인 20~30명 정도가 방문하는 평범한 블로그였다.

<식코>와 <쥐코> 그리고 사유화된 권력 '영포회'

그런데 공직자를 조사하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개인의 블로그에 링크해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 이들은 김씨 회사에 하청을 주던 K은행을 통해 대표직 사임과 주식 이전을 강요했으며, 수사기관이 아닌데도 직접 회사를 찾아가 회계장부를 강제로 가져가고 직원을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김씨는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

이같은 불법사찰과 직권남용은 제6공화국 시절 국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보다 더 폭압적이다. 기무사 사찰은 대공 용의점 내사라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민간인을 사찰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사법처리를 기도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자신들이 불법적으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공금횡령과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으며, 경찰이 공문을 요구하자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 명의로 서울 동작경찰서장에게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김씨가 3년 동안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까지 이 잡듯이 뒤지는 '먼지털이 수사'를 벌였으나 혐의가 나오지 않자 검찰은 2009년 10월 김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결정했다.

이에 김씨는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반발해 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그동안 진행된 공직윤리지원관-경찰-검찰의 내사 및 수사기록을 입수해 야당과 언론 등에 고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1년 동안 진행된 이같은 불법사찰과 직권남용은 국가폭력이라는 점에서 유태인을 사냥한 독일 나치의 게슈타포와 반체제 인사를 색출한 구소련의 비밀경찰 KGB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국무총리실이라는 '모자'만 빌려서 썼을 뿐, 실제로는 '영포회'(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라는 대통령과의 사적인 연고를 토대로 형성된 사조직을 통해 지시-보고된다는 점에서 사유화된 국가폭력이나 다름없다.

국무총리실장도 모르는 '유령조직'...'뒤 봐주는 사조직' 없인 불가능

실제로 이들은 김씨의 공금횡령 혐의가 나오지 않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수사를 지시할 만큼 소름이 끼치도록 집요했다. 마치 사인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위압과 폭력으로 해결하는 '조폭' 집단을 보는 듯하다. 문제는 정운찬 국무총리는 물론 권태신 국무총리실장까지도 이들이 총리실 산하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는 사실상의 '유령조직'이라는 데 있다.

<피디수첩> 화면.
 <피디수첩> 화면.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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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에 참석한 고위공무원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 국회의원들이 민간인 사찰 문제를 질의하려하자 슬그머니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이를 뒤쫓아 간 PD에게 보인 안하무인의 행태는 조폭집단 '막가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도 권태신 총리실장은 의원들의 민간인 사찰 질의에 "이인규 지원관으로부터 '문제 없는 건'이라고 간단하게 보고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영포회 회원인 이인규(54) 공직윤리지원관이 사찰을 주도했고, 활동 내용을 공식 보고 라인이 아닌, 역시 영포회 회원인 이영호(46)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이와 관련 영포회측은 이인규 지원관은 포항이 아닌 영덕 출신이어서 정식회원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오래 보좌한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인맥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고향인 경북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 공무원 모임인 '영포회'의 배후가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현행 '국무총리실과 그 소속기관 직제'(대통령령 제21910호, 2009년 12월 29일 일부개정) 제13조2항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의 업무는 ▲ 공직자 사기 진작 지원 ▲ 공직자 고충처리 지원 ▲ 우수공무원 발굴 ▲ 공직사회 기강확립 ▲ 부조리 취약분야 점검 및 제도개선 ▲ 그밖에 공직윤리 지원과 관련한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국한돼 있다.

김씨는 공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간인 신분이다. 공무원이 민간인의 뒤를 캐는 일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불법행위이자 형법상의 직권남용이다. 따라서 행정고시(29회) 출신의 고위공무원이 이 정도의 불법행위를 할 때는 '뒤를 봐주는 사조직'이나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관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영포회' 출신들이 비선으로 청와대 '하명사건' 담당?

<'Secret of Koreans' Protest Against US Mad Cow Beef>, 일명 '쥐코'의 한 장면
 <'Secret of Koreans' Protest Against US Mad Cow Beef>, 일명 '쥐코'의 한 장면
ⓒ 인터넷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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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의 한 관계자도 "이 지원관이 성격이 급하고 캐릭터가 강한 편이지만 불법행위를 할 사람은 아니고, (은행 부행장을 만나 김씨를 조치하라고 압력을 넣은) 원 사무관도 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똑똑한 직원이고 위법행위라는 것을 충분히 알 만한 사람인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노동부 감사관 출신인 이 지원관이 이 조직의 팀장으로 총리실에 입성한 것도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추천이 있었고, '포항 인맥'에 의한 발탁 인사라는 평이 나온다. 이영호 비서관은 평화은행 노조위원장을 지낸 한국노총 출신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도운 공로로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7월 출범할 때부터 청와대 민정수식실의 일부 업무가 옮겨졌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규정상으로는 총리실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직할조직이라는 게 관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총리실의 공식 지휘·보고라인에서서 빠져 있는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권력 핵심부의 '하명사건'을 맡아 별도 비선을 통해 보고하며 별동대처럼 활동했을 개연성이 크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 촛불시위의 혼란 직후에 신설된 조직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찰 수사기록에서 드러나듯 지원관실은 여권의 핵심인 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에 대한 관련 자료를 폭넓게 수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는 이 의원과는 고향이 같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인물이었다. 당연히 김씨 말고도 수많은 인사가 사찰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파문이 확산되자 총리실은 조사반을 구성해 이 지원관의 직권남용 등 위법사실이 밝혀지면 검찰에 이첩하는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지원관은 조사에서 "총리실에 제보가 들어와 조사를 시작했으며 김종익씨가 민간인인줄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원관실은 김씨에 대한 조사자료를 동작서에 이첩하기 전에 원청업체인 K은행의 부행장을 만나 압력을 넣었고, 또 직접 김씨 회사를 방문해 회계자료를 압수해 갔기 때문에 이같은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영포회'는 권력 사유화한 '범MB파'의 한 '행동대'일 뿐

비유하건대, '영포회'는 이처럼 권력을 사유화한 '범MB파'의 한 '행동대'일 뿐이다. '막장 정권'의 행동대격인 '영포파'의 실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11월26일 서울 한 호텔에서 가진 비공개 송년의 밤 행사가 언론(경향신문 2008년 11월 27일자)에 보도됨으로써 알려졌다. 당시의 풍경 또한 '조폭 모임'을 연상케 한다.

당시 행사가 열린 A호텔은 '이대로'와 '나가자'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대로'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라는 뜻으로 대선 캠프에서 쓰던 건배 구호였다. '나가자'는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해'의 줄임말이다. 역시 포항이 고향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대로'를 선창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우렁차게 '나가자'로 답했다.

포항이 지역구인 이병석 의원(당시 국회 국토해양위원장)은 "(우리는) 이명박 정부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다지고 뒷받침할 후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후원한 박승호 포항시장은 "이렇게 물 좋은 때에 고향을 발전시키지 못하면 죄인이 된다"고 말했고, 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은 "(위에서)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고 말했다. 심지어 포항 인근이 지역구인 강석호 의원(영양-영덕-봉화-울진군)은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예산)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영포회 모임의 발언이 소개되자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국회 예결위에서 이명박 정부를 '영포 정권'으로 규정하며 "영 국민을 포기한 정권, 영 상식을 포기한 정권, 영 경제를 포기한 정권, 영 지역균형발전을 포기한 정권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한민국은 '범MB파'의 '나와바리'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촛불시위'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정권 초기부터 '강부자'(강남 땅부자)니 '고소영 S라인'(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서울시청 출신)이니 하는 여론의 비판에 귀 막은 인사전횡에 대한 누적된 반발이 국민 정서를 무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기로 점화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정권은 오히려 촛불시위를 반성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유령조직'을 만들어 촛불민심에 '복수의 칼'을 품었다. 이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그 칼로 공무원 아닌 민간인을 윽박지른 '영포파'는 이 정부 초기부터 활동한 '강남파' '고대파' '소망파' '영남파' '서울시청파'를 거쳐, 4대강 사업의 낙동강 구간을 독식한 '동지상파'(대통령의 모교인 포항 동지상고 출신 건설업체들) 등으로 '나와바리'(구역)를 확장한 '범MB파'의 한 행동대일 뿐이다.

MB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푸는 명진 스님(서울 봉은사 주지)은 이런 '시츄에이션'에 대해 묻자, 이렇게 죽비소리를 날렸다.

"대~한민국은 '범MB파'의 '나와바리'가 아니다."


태그:#영포회, #범MB파, #봉은사, #명진 스님, #공직윤리지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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