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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에서 들뜬 기분의 아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나 오늘 자전거 처음으로 배웠는데 탈 줄 알아요. 애들이 운동신경이 좋다고 해요.'
'그래, 대단하네. 아빠랑 배울 때는 중심도 못잡고 넘어지기만 했는데 조심해서 타야한다.'

중학교1학년을 자퇴한 지 한 달여 만에 편입한 대안학교에 체험학습과정(서로에게 맞는지 경험하는 학교생활)을 거쳐 정식으로 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첫 통화에서 자전거를 배우고 시냇가에서 물놀이를 했다는 자랑을 늘어놨다.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한번 집으로 오는데 서너번 차를 갈아타고 오면 저녁 9시경이 된다. 아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준비하게 되고, 자연스런 대화를 위해서 각자의 밥그릇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하나의 접시에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준비를 했다.

집안으로 들어선 아들의 몸은 뱃살이 쪽 빠져서 수영선수 박태환을 보는 것 같았다.(박태환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음) 반바지를 입은 무릅 아래로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보였다. 자전거를 배우고, 농구를 하며 뛰놀다 생긴 상처라고 한다. 아내는 상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학교생활은 어떤지 물어보기 시작한다. 매일 통화하면서 뭐가 또 궁금한걸까?

학교(시험)에 대한 선택권은 학생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과 적성을 무시한채 학교 교육에 모든것을 맡기는 것은 도박이다.
 학교(시험)에 대한 선택권은 학생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과 적성을 무시한채 학교 교육에 모든것을 맡기는 것은 도박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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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후, 아내는 그렇게 된 것이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괜한 자책감과 아들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에서도 적응 못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나 역시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고 아내와 아들을 달래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뉴스에서나 듣던 셔틀(신종 왕따?)을 경험하게 된다. 본인이 그 대상은 아니었지만 당하는 친구를 보고는, 담임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선생님은 자리만 바꿔 앉으라는 것 뿐이었다. 오히려, 아들은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 보복의 대상이 되었다. 교묘하게 아들을 괴롭히는 일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면 학용품이 없어지거나, 수업중에 이야기를 하면 야유를 보낸다거나 체육시간에 장난을 빙자한 폭력이 있었다.

이때, 아들은 처음으로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면서, 공부에 대한 중압감도 털어놨다. 시험성적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시험 성적이 낮은 학생들만 남겨서 늦게까지 따로 수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학부모 동의서를 보내왔지만 제출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도 나도 원하는 학교생활이 아니었다.

사교육은 물론이고 학습지 한 번 안 하며, 시험성적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초등학교 생활을 했던 아들에게 중학교는 사육장에 불과하며 그 속에 갇혀서 재주를 부리는 곰에 지나지 않았고, 교사는 채찍을 든 조련사 역할이며 그 뒤에는 화려한 쇼만을 보려주려는 곳이었다.

그 외에도 아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분노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학교 안에서는 비상식이 되는 일들이 어디 한 두가지 뿐이겠는가마는. 결국, 아들은 탈학교를 선언했고,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의미로 나는 학교측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요청했다. 담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안인듯 체험학습으로 처리해주겠다고 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많은 모순과 불합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정도는 이제는 상식이 된 것 같다. 이 때문에 아들에게는 언제라도 학교를 그만 둘 수 있는 선택권을 초등학교때부터 주었다. 또한 상식적이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때로는 저항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었다.

아들에게 교묘한 집단폭력을 쓰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맞으면 같이 때리거나 사건이 될 만큼의 물리력을 쓰라고도 했다. 그것이 내가 경험으로 느낀 약자에게 폭력을 쓰는 자들을 응징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며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고 했고, 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어했다.

대안학교를 가겠다는 아들에게 맞는 학교를 찾기 위해 편입이 가능한 몇 곳의 대안학교를 찾아 다니며 상담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학부모와 학생들의 사연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원주의 한 작은 대안학교에서 아들은 비로소 짓눌렸던 그간의 고민들을 날려버리고 자유를 만끽하는 학교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월요일, 전화가 왔다.
버스를 잘못 타서 지각을 했다며 헤헤거리더니 동아리를 하나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아빠 시(詩) 동아리를 만들려고 해. 내가 글쓰는 것을 좋아하잖아. 애들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야.'


태그:#중학교, #대안학교, #시, #일제고사,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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