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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50-60년대에는 웬 '귀신'이 그리도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풀어야 할 한(恨)이 얼마나 많았는지 학교 화장실에도, 길가에도, 물가에도, 산에도, 집안에도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화장실은 빠지면 살아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깊었고,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달걀귀신'은 비가 내리거나 한적한 날 오후에 오줌 싸러 가는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쇠망치로 때려도 깨지지 않고, 때리면 때릴수록 커진다는 얘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했지요.

자동차가 드문드문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렇게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혼령이 승천도 못하고 '지박령'이란 땅귀신이 된다고 하는데요. 땅귀신이 저주하면 사고가 또 일어나기 때문에 영혼을 달래주고 저승으로 보내는 거리제를 지내주었습니다.

물살이 급하기로 소문났던 ‘아흔아홉다리’. 물이 많이 마르고 교각도 높아졌는데요. 물귀신이 잡아당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구쟁이들의 발길도 끊겼지요.
 물살이 급하기로 소문났던 ‘아흔아홉다리’. 물이 많이 마르고 교각도 높아졌는데요. 물귀신이 잡아당긴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개구쟁이들의 발길도 끊겼지요.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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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는 '물귀신'은 어떻게 생겼는지 형체를 상상하기도 어려웠는데요. 놀다가 더우면 시커먼 잠방이 차림으로 냇가로 뛰어들던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등굣길이기도 했던 '꺼먹다리'와 경포천의 '아흔아홉 다리'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수영하러 왔던 아이들이 3-4명씩 익사했고, 모두 물귀신이 데려갔다고 믿었거든요. 

물살이 빙빙 회전하면서 급하게 흐르는 아흔아홉 다리는 익사사고 다발지역으로 시내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다리 위로 군산선이 지나가 스릴은 있었으나 위험도 뒤따랐는데요. 급한 물살에 휘말리면 수영을 잘해도 헤어나기 어렵다는 얘기가 '물속에서 물귀신이 잡아당긴다!'는 말로 와전되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인근 야산의 공동묘지 '상여집'에는 항상 귀신이 거주하고, 묘에는 귀신들이 잠들어 있다고 해서 여간 배짱으로는 혼자 공동묘지에 접근을 못 했습니다. 상여집 귀신이 잡아간다고 해서 산에 놀러 가도 맨 뒤에 서려고 하지 않았는데요. 묘지 근처에서 송장 썩은 물만 먹고 산다는 누런 '송장 메뚜기'도 귀신만큼이나 무섭고 징그러웠습니다.

그래도 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달랜다는 혼맞이굿이나, 죽은 자식의 넋을 건지면서 울부짖는 어머니를 보면 눈물이 나왔고, '처녀귀신'과 '총각귀신'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영혼결혼식은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군산 월명공원 아래에 있던 구 도립병원 시체실과 구 개정병원 시체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동네 친구들과 공원에 놀러 가거나 고려제지(페이퍼코리아) 뒷산으로 토끼몰이 갈 때는 시체실 부근 접근을 삼갔습니다. 귀신이 우글우글하다는 소문 때문이었지요. 병원 시체실 이야기는 육순이 넘은 지금도 떠올리기가 싫고 얘기하기도 찜찜합니다.

집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달걀귀신'

귀신은 집안에도 많았는데요. 가신(家神)의 으뜸인 성주님 외에 대문, 장독대, 우물가, 부뚜막, 측간, 곳간에도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귀신들이지요. 특히 집을 지키는 수호신 성주님은 부모 제사상 옆에 성주상을 차릴 정도로 특별히 섬겼습니다. 

우리 집을 헤치려는 악귀들은 '해망동 할머니', '이빨빠진쟁이 할머니', '뚝발이 양반', '총각점쟁이'가 막아주었는데요. 장구, 꽹과리, 주문(呪文) 등으로 물리쳤고, 손바닥이 닳도록 빌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귀신도 어김없이 따라다녔는데요. 그런 걸 보면 우리네는 모든 걸 귀신과 공유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집에 있는 귀신 중에 학교 화장실의 댤걀귀신보다 작다는 측간의 달걀귀신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목격은 한 번도 못했지만, 존재한다는 것은 100%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무서워서 혼자는 측간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측간은 안방에서 부엌을 지나 멀리 떨어진 곳간 앞에 있었는데요. 동생은 네 살이나 어려서 믿지 못하니까, 일을 볼 때마다 막내 누님과 교대로 보초를 서주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은 촛불을 들고 서서 기다리는 것조차 무서워 동생에게 함께 가달라고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요. 

일을 보면서도 달걀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무서움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촛불을 들고 기다리는 막내 누님이 "아직 멀었냐?"고 신경질적으로 묻는 말도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마음이 놓였지요.     

측간에 있는 빗자루도 무서운 물건 중 하나였는데요. '빗자루에 피가 묻으면 귀신이 된다'는 어머니 얘기가 생각날 때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막내 누님과 교대로 보초 서주기는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이어졌는데요. 어렸을 때는 왜 그리도 무서운 생각만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직접 본 귀신은 거리의 '우체통'

중학교 3학년 늦가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저녁밥 먹으러 들어오니까 형님이 "아버지 어머니는 논에서 고생하시는데, 너는 놀러만 댕기냐!"고 호통을 치더군요. 당시 어머니는 시내에 살면서 '나포면 십자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형이 타작 일손을 거들다 왔으면 용서를 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형도 집에서 놀았으면서 나보고만 뭐라고 해서 속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참고 있는데 질책이 계속 이어지니까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해서 밥도 먹지 않고 집에서 나와 논으로 향했습니다. 반항은 못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지요.

집에서 논까지는 17km가 넘는 거리였는데요. 막차가 출발한 뒤여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걸었어도 4시간 가까이 걸렸는데요. 논에 도착하니까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노적가리 아래 볏단 몇 개를 빼내고 만든 공간에서 논을 지키던 아버지·어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우리 아들 철들었네!"라며 반가워하더군요.

반색하는 부모에게 방에 들어가 눈 좀 붙이시라고 권하고 혼자 논을 지키다가 이튿날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세 시쯤 집으로 왔는데요. 가로등도 없는 한적한 시골 길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니까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가끔 보이는 초가집이며, 가로수들이 갈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허술한 길갓집을 받쳐주는 새카만 기둥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고, 길가에 놓인 손수레에도 사람이 누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갈길을 걷는 제 발걸음 소리 여운은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아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걸음을 재촉했지요.

길가 모퉁이에 서 있는 우체통. 제가 경험한 옛날 우체통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둥글었는데요. 귀신인 줄 알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경험은 훗날 심신을 단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길가 모퉁이에 서 있는 우체통. 제가 경험한 옛날 우체통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둥글었는데요. 귀신인 줄 알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경험은 훗날 심신을 단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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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벗어나 시내 갓길이었던 중동 산업도로에 진입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그래도 산업도로가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여서 공터가 많았고, 건물이나 도로가 휑뎅그렁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느꼈던 공허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동트기 전 거리는 캄캄한 밤보다도 음산한 기운이 더했는데요. 새벽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길모퉁이를 막 돌아서는데 새카만 옷차림에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 떡 버티고 서서 길을 막았습니다. 순간 '귀신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는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빨간 '우체통'이었습니다. 이마와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우체통으로 확인하고 헛웃음이 나오기까지는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으려니까 발이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만약 우체통인지 모르고 기절해서 병원으로 실려가 깨어났으면 지금도 '나는 어렸을 때 길에서 겉옷이 새카만 귀신도 만났었다!'며 우길 텐데요. 몸과 마음이 건강하면 귀신도 물리칠 수 있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태그:#귀신, #우체통, #달걀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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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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