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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었지~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산울림의 회상 중에서)

 

부평동 원적로 482번지 입구, 백마교 작은 마을 복개천 주차장. 20년 전만 해도 오염된 시궁창 물로 이어진 동네 하천이었다. 그래도 이곳은 80년대 옛 모습 그대로의 추억을 간직하며 주변 아낙네들의 타박 소리와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었던 정겨운 사랑방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세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이젠 두터운 콘크리트로 뒤덮여 자취를 감춰버렸다.

 

15일 오후 2시. 무더위가 속살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그 무렵. 폐지를 손수레에 옮겨 실으며 무거운 하루를 보듬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의 여정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눈 속에 들어온 옛 마을 풍경에 그대로 카메라 셔터에 손이 옮겨졌다.

 

빌라 촌과 복개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기와지붕을 맞닿은 작은 마을은 마치 시대를 비껴가기라도 하듯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오래된 담벼락, 수풀로 뒤덮인 뒷마루 터, 담쟁이 풀, 항아리 단지, 작은 쪽문 등 어떻게 보면 낡아 보이는 허름한 집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래도록 누군가의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어준 소중한 공간일 것이다.

 

저녁 바람이 불 때면 작은 쪽문을 열고 정원의 꽃도 다듬고, 비가 올라 빨래도 걷어내면서 그들은 그렇게 가족 간의 정을 시나브로 나눈다. 세월의 시름을 굵게 뻗어 내린 손등의 혈관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할머니의 주름이 오늘따라 더욱 서글프게 느껴진다.

 

마을 입구를 상징하는 큰 느티나무 밑 쉼터에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화투장을 건넨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누비며 손수레 한 가득 실은 폐지 더미 위에 할머니의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한 알록달록한 고양이 한 마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팔자 좋게 누워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편하게 누워서 쉬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는구나.'

 

부평여고와 담벼락 하나 거리를 두고 높게 올라 핀 해바라기 꽃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도 전혀 부럽지 않을 만큼의 평온한 분위기다. 해바라기 꽃을 보니 어릴 적 예쁜 이웃 누나와 해바라기 씨를 발라 먹으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곧게 솟아 있는 잘빠진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다시 잡는다. 앞의 맞닿은 집보다 세 배나 더 커다란 풍경이 이채롭다. 나무 옆에 놓여진 아담한 개집도, 뿌리를 사이에 두고 적당하게 자란 고추 밭도, 모두가 이 나무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낡은 대문 위로 엉클어져 있는 전깃줄 또한 한 폭의 수채화 풍경이다. 정리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마을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겉에서 보기엔 그저 작고 아담한 집이라 생각했는데 안쪽으로 길게 늘어진 좁은 통로 사이로 여러 개의 문들이 이 곳 생활을 느끼게 해준다. 남들이 뭐라 해도 그들만의 방식대로 살가운 정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포근하다.

 

30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TV수리점이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다. 뒤태가 아름다운(?) 오래된 TV가 안주인을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다. '근데 저 TV가 제대로 켜지기는 하는 걸까' 주인아저씨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손님에 미련을 버리고 벌써부터 낡은 TV앞에서 드라마와 연애중이다.

 

식잡 및 음료, 주류일절-그 때 그 집.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문을 열고 주인 아저씨와 담소를 나눴다. 올해로 예순다섯 살인 김평호 주인장은 25살에 이 터를 잡아 40년째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자처하며 살고 있단다. 막걸리 한 병에 2천원, 밥 한 끼에 3천원, 아저씨의 소박한 웃음처럼 참 착한 가격이다.

 

가게 문 옆에 낡은 자판기도 일부러 그대로 놔두고 있다. 간판도 주인장의 결연한 의지?에 의해 '그 때 그 집'으로 재탄생했다. 그러고 보니 간판 밑 부분에 (구)호남상회라는 글자가 보인다. 군대생활도 집 옆 부대 터에서 15년은 근무했다는 김씨는 그야말로 이 마을의 살아있는 인간문화재였다.

 

출입제한구역이 된 미군부대 정화조 공간은 부평여고와 더부살이를 하며 아직도 그 끈질긴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그 안의 본 터는 반환 결정이 났지만, 어찌하여 이곳은 아직도 남아 사람들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공간 때문에 차량을 비켜가며 좁디좁은 인도를 위험천만하게 걸어 다니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의 작은 보금자리가 또 다시 카메라를 꺼내게 한다. 아이스크림이 놓여져 있을 작은 박스엔 어릴 적 먹었던 어린이용 우유들이 한가득이다. 체육대회와 소풍이 있는 날이면 이웃집 할머니가 저 우유를 건네주며 살가운 미소로 반갑게 배웅을 해주었던 추억이 새롭다. 가슴이 찡해 온다.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빛 바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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