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마사이마라국립보호구(Masai Mara National Reserve)로 가는 중간쯤에 나록(Narok)이 있습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ey)의 끝없는 지평선을 달리다 처음 만나는, 꽤나 혼잡한 작은 읍내 나록의 어수선함은 평원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반가운 친구입니다.

유럽에서 온 몇 나라의 젊은 친구들과 그룹을 이룬 우리 일행은 버스 정류장을 중심으로 한 몇 개의 식당 중에서 제일 큰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읍내로 나들이 나온 마사이부족들이 주로 이용하는 로컬 식당입니다. 우리는 이 원주민들의 식당에서 먹기 거북한 '애벌레튀김'이라도 나올까 염려하면서 주위를 살피고 마사이 전통복장이 아닌 옷을 입은 마사이 직원에게 물어서 가장 안전한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언제 음식이 나오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구체적인 대답 대신 "뽈레뽈레(Polepole, '천천히'라는 뜻을 가진 스와힐리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테이블로 안내한 후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no worries 즉 '걱정없다'는 뜻의 스와힐리어)"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습니다.

다행히 우리를 태우고 온 트럭(아프리카의 거친 환경에 대응하고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여러나라의 여행자들을 묶어서 개조된 트럭으로 여행하는 여행수단)이 떠나 버릴 시간이 되기 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음식을 놓고 돌아서는 직원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이 혼잡한 식당에서는 선불로 돈을 치러야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여전히 "뽈레뽈레"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 점원은 청구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록의 레스토랑. 마사이부족 세력권내에 있는 이 혼잡한 레스토랑에서도 모두에게 뽈레뽈레가 익숙합니다.
 나록의 레스토랑. 마사이부족 세력권내에 있는 이 혼잡한 레스토랑에서도 모두에게 뽈레뽈레가 익숙합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빨리빨리로 넘지 못한 뽈레뽈레

올해 3월 케냐 방문의 주된 목적은 농장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농사를 직접 지어서 먹이면 한정된 자금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기아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일자리도 제공하고 자립의지도 키울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일행은 현지인의 안내로 주자타운(Juja Town)의 메마른 대지들 중에서도 물이 흐르는 옥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땅 주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상대편의 대답은 "지금은 바쁘니 30분 뒤에 다시 전화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30분 뒤에 다시 전화를 하자 "3일 뒤쯤에야 시간이 날 수 있겠다"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귀국하기 전에 농장의 임대 계약을 완료해 놓고 싶은 욕심에 다시 전화를 해서 출국일이 임박하다는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대답은 한결같이 "뽈레뽈레"였습니다. '빨리빨리'로 대응했던 우리는 결국 그 만남을 앞당길 수 없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농사짓기 좋을 만한 땅을 발견하고 현지인 목사를 통해 빠른 임대계약을 시도했지만 계약에 실패했습니다. 이 땅 주인은 자기 땅을 '빨리빨리' 임대하기보다, 예정된 자신의 시간을 '뽈레뽈레' 즐기는 것을 택했습니다.
 물이 흐르는, 농사짓기 좋을 만한 땅을 발견하고 현지인 목사를 통해 빠른 임대계약을 시도했지만 계약에 실패했습니다. 이 땅 주인은 자기 땅을 '빨리빨리' 임대하기보다, 예정된 자신의 시간을 '뽈레뽈레' 즐기는 것을 택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팅가팅가 그림 도붓꾼의 '뽈레뽈레'

탄자니아의 아루샤(Arusha)에서 케냐의 나이로비로 오는 아침 8시 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분이 다가왔습니다.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일본인이냐고 묻는 통에 한국에서 왔음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몇 마디 말을 섞는 데 성공한 그 사람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두루마리를 펴면서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탄자니아의 팅가팅가(Tingatinga) 그림를 파는 도붓장수였던 것입니다.

"정말 좋은 그림이다. 당신에게는 싸게 주겠다"고 제의했고 "우리는 이미 팅가팅가 그림을 샀다.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발을 뺐습니다. 단호한 거절에도 그 남자는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하는 모든 거절의 말에 '뽈레뽈레'로 대응했습니다. 그는 결국 11점의 팅가팅가 그림 모두를 도거리로 파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루샤 시장에서 외국인의 등장에 호기심을 보이는 탄자니아 사람. 외국인 혼자 재래시장을 누비며 촬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저는 근무 중인 은행 경비원을 유혹해 그를 대동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루샤 시장에서 외국인의 등장에 호기심을 보이는 탄자니아 사람. 외국인 혼자 재래시장을 누비며 촬영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저는 근무 중인 은행 경비원을 유혹해 그를 대동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촬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동부아프리카지역에서 13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조규보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답답할 만큼 느립니다. 목청을 높인다고 그 습성이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폴레폴레 은디오 무웬도(Polepole ndio mwendo, 천천히 해도 결국은 간다.)'와 '하라까 하라까 하이나 바라까(Haraka haraka haina baraka, 빨리 빨리에는 행운이 깃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이곳사람들은 행복이 '뽈레뽈레' 속에 있다고 믿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느린 반응에 답답해하던 성미를 죽이고 뽈레뽈레 생각해보면 뽈레뽈레 삶의 방식이 더 확실하고 더 오래 견디며 더 여유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빨리빨리'보다 '뽈레뽈레'에 깃들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어릴 적에 저의 고향에도 여러 마리의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짐을 실은 수레를 끌기도 하고 시장가시는 갓 쓴 할아버지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걸음이 빠르지 않았지만 참 여유로웠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자동차로 모두 대체한 당나귀가 중·남부아프리카 전역에서 지금도 중요한 현역의 일꾼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저의 고향에도 여러 마리의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짐을 실은 수레를 끌기도 하고 시장가시는 갓 쓴 할아버지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걸음이 빠르지 않았지만 참 여유로웠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자동차로 모두 대체한 당나귀가 중·남부아프리카 전역에서 지금도 중요한 현역의 일꾼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케냐, #탄자니아, #아프리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