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계천 복원 사업의 모델이 된 하천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송파구의 마천동, 오금동, 풍납동 등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성내천이다. 원래는 청량산에서 발원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지천인데, 1970년대에 하천 바닥을 콘크리트로 뒤덮으면서 물이 거의 흐르지 않게 된 것을 2000년대 초 지하철 용출수와 한강물을 끌어올려 겨우 다시 물길을 이었다.

이 하천이 청계천을 복원(사실은 변조)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했다. 청계천이 오세훈 시장이 벌이고 있는 한강 개발 사업에 자극을 주었고, 한강 개발 사업이 4대강 사업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니, 결국 성내천 복원이 4대강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셈이다. 혹시 성내천을 보면, 4대강 사업의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여행을 시작했다.

'맑아진 한강', 선전은 요란하지만...

잠실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거품띠. 이런 거품띠가 한강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잠실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거품띠. 이런 거품띠가 한강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강북에서 성내천에 가려면 잠실대교나 잠실철교를 넘어야 한다. 잠실철교에 있는 자전거도로가 넓어 그쪽으로 넘어가는 게 더 편한데 그만 딴 생각을 하다 잠실대교로 올라섰다. 그러다 그만 다리 위에서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누런색의 거품띠들이 다리 아래 하류 쪽으로 길게 꼬리를 끌며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잠실 수중보의 낙차 때문에 생긴 거품으로 보인다. 그런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걸쭉하게 뭉친 상태에서 좀처럼 흩어질 줄을 모른다. 지금까지 잠실대교를 여러 차례 넘어 다녔지만, 이렇게 큰 무리를 지어 떠다니는 거품띠는 처음이다.

잠실철교 위 자전거도로
 잠실철교 위 자전거도로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어제(15일)만 해도 '한강 수질이 꾸준히 개선돼 한강에 사는 어종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티브이, 신문 할 것 없이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한강을 떠다니는 정체 모를 거품띠를 보고 나니, 그런 보도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언론을 통해 '맑아진 한강'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실제 내 눈으로 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에서 '새로운 어종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한강물이 맑아진 것을 입증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게 한강물이 맑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류들의 환경 적응력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그 기사 어디에도 실제 한강의 수질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건 또 밝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강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든, 그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어떤 상태인지는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톡 까놓고 얘기해서 당신 같으면 그 물에서 손이라도 적시고 싶겠나? (참고 기사 : 우웩~ 동작역 아래 한강을 보십시오 이 사장님의 30년 전 작품, 아름답나요?)

성내천, 잘 가꾼 정원
 성내천, 잘 가꾼 정원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잘 가꿔놓은 정원과도 같은 성내천

성내천 합수부는 잠실철교 아래에 있다. 철교 밑으로 자전거 두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인도교가 있다. 인도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바로 성내천으로 들어가는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성내천에서 맞닥뜨리는 첫인상은 '알록달록'이다. 마치 정원을 가꾸듯이 제방 여기저기에 화단을 만들고 그곳에 가득 꽃을 심었다. 하천 물은 그렇게 깨끗해 보이지 않지만, 제방은 이발을 하듯이 깔끔하게 정돈해 놓았다. 그런 모습은 빗물 펌프장을 지나 천변을 따라가는 자전거도로 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성내천은 조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성내천은 하천변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잡초가 드물다. 그만큼 하천 전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간단하게 표현해, 청계천의 원조답다. 아니, 그 이상이다.

오금동 야외 수영장.
 오금동 야외 수영장.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성내천이 청계천의 원조라지만, 그래도 성내천을 유명하게 만든 건 오금동의 천변 야외 물놀이장이다. 2004년 7월에 문을 연 이 물놀이장은 매년 여름철이 되면 물놀이를 즐기러 나온 어린이들로 가득 찬다. 매년 수만 명이 찾아온단다. 폭 3~5m, 수심 30~80m, 길이 160m. 탈의장과 샤워장은 기본, 도심 물놀이 장소로 여러 가지 훌륭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무언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놀이장 옆으로 성내천이 흐르는데, 물놀이장의 그 많은 아이들이 성내천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아이들 머릿속에 하천은 그저 '관상용'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강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한강변에 이 같은 물놀이장소가 6개가 생겼다. 지천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10개가 넘는다. 모두 성내천이 끼친 영향이다.

성내천 자전거도로는 마천동의 마천공원 근처에서 끝난다. 그곳부터는 복개 구간으로, 하천이 작은 폭포수 아래 어두운 동굴 속으로 꼬리를 감추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강 합수부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도로 길이 약 6km. 비록 길이는 짧아도 완주한 보람은 충분히 느낄 만하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고 나서도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남는다. 하천이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로 종점. 앞에 보이는 '폭포'는 한강물 등을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장치.
 자전거도로 종점. 앞에 보이는 '폭포'는 한강물 등을 끌어올려 흘려보내는 장치.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성내천은 일종의 인공하천, 관리가 필수

성내천을 보면, 청계천이 보인다. 청계천이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성내천은 한마디로 정성을 다해 가꾼 정원 같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 한 조각 허투루 놓인 것 같지 않다. 하천 하나라도 '명품'으로 만들겠다고 애쓰는 관리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솔직히 수질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성내천을 관리하는 송파구에서는 성내천을 복원하면서 수질 또한 다른 하천보다 더 맑아졌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내 보기엔 모두 다 똑같아 보인다. 물빛이 탁하고 천 바닥이 지저분해 보이는 것 역시 다르지 않다. 심한 편은 아니지만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때마다 한 번씩 하천 바닥을 닦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손질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는 화단. 잡초를 뽑은 자리.
 손질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는 화단. 잡초를 뽑은 자리.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성내천 바닥에 녹조류 같은 것이 끼어 있는 것이 보인다.
 성내천 바닥에 녹조류 같은 것이 끼어 있는 것이 보인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성내천 또한 하수구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심하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하수구 입구마다 별도의 악취 저감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겉보기에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그 이면에 있는 것까지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성내천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일이 어디 이뿐이랴. 자연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사실 성내천 같은 하천에서 수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성내천은 건천이다.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메마른 하천이다. 원래부터 건천이었던 것은 아니고, 1970년대 하천 바닥을 콘크리트로 뒤덮으면서 가늘게 이어지던 물길이 그나마 아예 끊겨 버렸다고 한다. 그러다 2002년부터 지하철 5호선에서 솟아오르는 용출수와 한강물을 끌어다가 오늘날과 같은 하천을 만들어 놓은 게 성내천이다. 말하자면, 성내천은 일종의 인공하천인 셈이다.

하천 변조 드라마의 절정, 4대강 사업

인공하천은 그저 인공하천일 뿐이다. 인공하천은 관리가 필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자니 자연히 관리들끼리 서로 앞 다투어 공적을 과장하는 '인위적'인 일들까지 발생한다. 복원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인공하천에 재첩이니 갈겨니니 하는 생물종이 되돌아오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데는 정신이 다 아찔하다. (참고 기사 : 성내천에 재첩무리 산다더니, 뻥이었나?)

깨끗한 물에만 산다는 생물들을 모셔 와서 인공하천도 자연하천 못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누가 쓴 시나리오인지 빈틈이 너무 많다. 그런 시나리오로 '하천이 살아나고 있고 한강이 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다 죽어가고 있는 4대강도 얼마든지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의도가 너무 뻔해 그만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성내천 하류. 물빛이 상류보다 더 탁하다.
 성내천 하류. 물빛이 상류보다 더 탁하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이런 일이 성내천에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내천에서 시작해 청계천을 거쳐 간 '하천 변조 드라마'의 절정이 바로 '4대강 살리기'다. 한 번 해봤더니 꽤 재미가 쏠쏠했던 게다. 아마도 한 번 더해서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엔 규모가 너무 크다. 모험을 하기엔 위태로운 요소가 너무 많다.

그런데도 마치 하천 공사 하듯이, 그렇게 4대강 공사를 하고 있어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생력을 잃어버린 하천에 1급수를 흘려보낸다고 해서, 그 하천에 갑자기 1급수에만 사는 생물종이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4대강도 마찬가지다. 준설을 하고 보를 세워 수량을 늘리면 강물이 더 깨끗해질 거라는 주장은 다분히 일면적이다.

그렇다고 4대강으로 흘러드는 오염원을 모두 하수구 막듯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상태로 단지 수량을 늘린다고 해서 4대강이 깨끗해질까? 깨끗해진다면 또 얼마나 깨끗해질까? 소규모 하천도 벅찬 마당에, 도대체 그 '거대한 하천'은 또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막장 드라마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 4대강 사업 역시 그 결말은 바람 빠진 풍선 꼴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4대강이 그렇게 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성내천에서 만나는 풍경들. 시계방향 1) 한강 합수부, 2) 자전거 우회 표시, 3) 자전거도로용 터널, 4) 아직도 농촌 냄새가 물씬 나는 성내천 변의 비닐하우스
 성내천에서 만나는 풍경들. 시계방향 1) 한강 합수부, 2) 자전거 우회 표시, 3) 자전거도로용 터널, 4) 아직도 농촌 냄새가 물씬 나는 성내천 변의 비닐하우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태그:#성내천, #4대강, #청계천, #한강, #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