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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다!"

반갑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겹다. 시대가 달라져서 자주 볼 수가 없어서 더욱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편리성만을 강조하기에 번거로운 생활 도구는 자꾸 우리 곁에서 멀어진다. 장독대가 우리 곁에서 떠나버린 것인 언제부터였을까?

살림을 하지 않는 남자라서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독대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곁에서 멀어졌지만, 그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의식하지 못하였다. 장독대 대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활 도구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정겨운
▲ 장독대 정겨운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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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장독대를 사랑하셨다. 가난한 살림살이었지만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장독대 덕분이다. 하루 세끼를 먹는 날은 행복한 날일 정도로 가난했었다. 그렇게 가난했어도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장독대 덕분이었다. 쌀독에 쌀은 떨어졌어도 장독대 안의 밑반찬이 있었기에 살아갈 수 있었다. 된장이며 고추장 그리고 간장이며 묵은 김치가 장독대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마음 든든했다. 식량 걱정의 반을 덜어낼 수 있었다. 장독대는 살림 밑천이었다.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메주 만드는 일은 거르지 않았다. 콩 값이 아무리 비싸도 상관하지 않고 콩을 삶았다. 삶은 콩을 먹는 재미가 컸었다. 배가 고팠던 시절 콩 맛은 일품이었다. 고추장을 만드는 메주를 만들 때에는 찹쌀이 함께 곁들여졌다. 그럴 때면 잔치가 벌어졌다. 찹쌀의 쫄깃쫄깃한 맛을 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메주를 만드는 것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례행사였다. 메주는 겨우내 발효가 되었고 햇살 좋은 봄날에 간장이 되고 된장이 되었다. 그리고 고스란히 장독대의 장독에 보관되었다.

어머니의 살림 비법은 바로 장독대에 있었다. 장독대는 어머니의 목숨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장독대가 이제는 모두 다 사라졌다.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의해 장독대는 완전히 멀어졌다. 편리성만을 추구함으로서 우리 생활은 빨라졌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빨리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믿게 되었고, 빨리 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하게 되었다. 빨리 빨리 병이 깊어짐에 따라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여유
▲ 생활의 멋 여유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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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를 바라보니,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장독대는 빨리빨리 병하고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든지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려야 이루어졌다. 간장과 된장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렀다가는 모두 다 망치고 말 뿐이다. 진득하게 참으면서 기다려야 만들어졌다. 인내하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속도를 강조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은근과 끈기로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상실한 기다림을 되찾아야 한다. 기다림의 미학이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장독대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속도감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삶은 멍들 수밖에 없다. 빨리빨리 서두르다 보니, 당연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찰의 결과는 멍밖에 없지 않은가? 속도감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되면 방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방향이 옳게 설정되어 있다면 조금 더디 가도 아무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천천히 감으로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다림의 미학
▲ 방향 기다림의 미학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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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가 살았던 것처럼 방향에 충실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오직 자식만을 위하여 열심히 살다 가신 어머니처럼 살아가고 싶다. 속도감에서 벗어나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장독대에 삶의 밑천을 보관하고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번 뿐인 인생이다. 서두른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삶을 망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다. 천천히 느긋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春城>


태그:#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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