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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대니까 임금 앞에서 춤추는 사람 아니겠어요? 임금 앞에서 하고 싶은 말 다하다 재수 좋으면 왕의 남자가 되고, 재수 없으면 쫓겨나는 거고. 그게 광대예요.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래서 내 뜻대로 이 책을 썼어요. 그래서 두꺼운 책 중에서는 단 한 문장도 인용한 게 없어요. 그것만은 자신합니다."

화가이자 가수, 그리고 목사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삶의 궤적을 가진 연예인 조영남씨가 난해하기로 유명한 시인 이상의 시들을 해석해 책을 냈다. 책 이름은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한길사, 2010).

이날 북 콘서트에서 조영남씨가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序詩)'에 자신의 곡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
▲ 조영남, 시인 이상을 위한 북 콘서트 이날 북 콘서트에서 조영남씨가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序詩)'에 자신의 곡을 붙여 노래하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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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역삼1문화센터에서는 '조영남, 시인 이상을 위한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북 콘서트에 참석한 200명에 가까운 독자들은 조영남씨가 말하는 이상에 대한 이야기와 조영남씨의 가창력 높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이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 책 썼다"

그는 단순히 "이상을 위해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애착을 가져왔던 이상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에 화가 났기에 책을 썼다고 말했다.

"많은 문학평론가, 논객들이 이상에 대해 '잠시 유행이었다', '젊은이들을 잠깐 유혹하고 말았다', '그냥 지나가는 문학이었다'고 써놓는 것을 보고 그것에 화가 나서 저는 이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나섰습니다."

그의 분노는 '이상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 다짐은 30년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이제야 그의 분노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그렇게 다짐을 해야 쫓겨서(라도) 책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라며 "결국에는 이상 탄생 100주년이 저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청중 앞에서 이상과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미술, 음악, 건축을 설명하고 있는 조영남씨.
 청중 앞에서 이상과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미술, 음악, 건축을 설명하고 있는 조영남씨.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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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조영남과 천재 시인 이상의 공통점

그는 그림이면 그림, 노래면 노래, 사람들을 휘어잡는 입담까지 예술가로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팔방미인이다. 이상 또한 난해한 시 말고도 '권태', '날개' 같이 수필이면 수필, 소설이면 소설 등 다양한 방면에서 끼를 발산했다. 둘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에 조영남씨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이상과 자신의 DNA가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상과 DNA가 같았기 때문에 그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DNA란 바로 건축, 미술, 그리고 음악의 DNA다.

먼저 이상이 경성고공 건축과를 다닌 것에 비추어 그는 "저의 아버지, 큰아버지가 유명한 목수였다"며 "그 피를 물려받은 저였기에 이상과 건축이라는 점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상이 건축과에 들어가기 전에 현대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과 관련,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오락부장이 아니라 미술부장이었다"며 자신의 미술 행적을 연관지었다.

그리고 그는 "이상도 술을 마시면 그렇게 노래를 잘했다"는 소문을 전하면서 "건축, 미술, 음악 이 세 코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시인 이상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상 이거 잘못 건드렸어~ 잘못 건드렸어~"

'조영남, 시인 이상을 위한 콘서트'에서 조영남씨는 이상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되고 있는 것에 화가 나서 이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 책을 쓰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조영남, 시인 이상을 위한 콘서트'에서 조영남씨는 이상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되고 있는 것에 화가 나서 이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 책을 쓰기로 다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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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상의 시, 잘못 건드렸다"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이상 이거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어려워서 알 수가 없었어요. 새벽 3시까지 쓰다가 자야겠다 하고 불 끄고 누우면 갑자기 생각나.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다시 일어나 쓰기 시작해. 메모해놓고 또 불 끄면 또 생각나. 그렇게 며칠 밤을 보냈어요."

이상이 생전에 수염도 잘 안 깎고 봉두난발로 괴상망측하게 다녔다는 말을 들은 조영남씨는 올해 1월 1일부터 이상의 기일인 4월 17일까지 수염을 안 깎기로 결심했다. 대신 그는 이상 기일에 완성된 책을 올려 제사를 드린 후 다음날 면도를 말끔하게 했다는 것. 죽기 전에 써내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날 콘서트에서 조씨는 "대학시절부터 묻지도 않는 거 가르쳐주는 게 너무 싫었다"며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청중의 질문에 답하면서 무대 위의 광대답게 구수한 입담을 발휘했다.

'어려운 이상의 시를 정말 정확하게 해석한 거 맞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답을 슬쩍 피한 그는 "지금까지 나온 해설서 중에서 내 것이 몇 등일 것 같아요? 해설서가 얼마 없다면서요? 저는 그 틈새를 노린 것"이라며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을 학계에 발굴한 이어령씨조차 이상의 시에 주석을 다는 수준에 그쳤다"며 "이상의 시를 이렇게 독창적으로 생각해 낸 사람은 얼마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아노에 앉아 굵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로 시인 윤동주의 '서시(序詩)'와 정지용의 '향수(鄕愁)'를 노래했다.

아내와 함께 이날 북 콘서트에 참가한 신광수(60)씨는 "조영남씨가 시에 대해서 이렇게 잘 알고 있는지 몰랐다"며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또 이렇게 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전문지식이 있다니 놀랍다. 오늘 그의 시골스러운 입담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조영남씨에게 사인을 받은 이순헌(56)씨는 "이상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중학교 이후 그의 수필과 소설에 빠졌었지만 사실 시는 너무 어려워서 잘 몰랐다"며 "이번에 조영남씨가 이상의 시를 쉽고 재밌게 해설했다니,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강민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2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조영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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