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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이 '여성운전자'를 답답하게 여긴다. 이른바 초특급 황당주행, 무개념 주차로 유명한 '김 여사'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난다는 거. 물론 김 여사는 '너무 조심스러워'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당연히 속이 뒤집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차가 뒤집힐 상황'이다. 그런데 그 상황은 누가 제공하는가? 이 위험의 9할은 대개 '남자운전자'의 과격성과 연관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험천만한 생사의 경계선에서 '저 운전자가 남자라서 그런 것이야!'라는 식의 젠더 상관관계 분석을 할 여유는 없다. 그저 '휴~ 큰일날뻔 했다~'의 안도의 한숨이 전부다.

그러나 '김 여사'는 기억된다. 그리고 '여자라서 그렇다!'는 인식으로 저장된다. 이 정도면 아주 운전하면서 공부까지 하는 거다. 그 만큼 김 여사가 제공한 상황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거다.

김 여사는 기껏해야 도로정체가 주특기일 뿐이다. 혹은 주차장에서의 뭐 거시기한 모습 정도. 심하면 논둑에 굴러 떨어지기 정도. 이러나 저러나, 내 생명을 앗아갈 '결정타'는 아니다. 그러니 상황을 분석하고 또 분석한다. "보라구! 여자가 운전하잖아!" 아주 여유만만.

하지만 여기서 '오버'하면 안 된다. 우리 남자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언젠가 자신을 괴롭혔던 그 '김 여사'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여사와 성별이 같은 '여성'에게 복수를 하고자 한다. 운전하기 전에는 그렇게 순한 양에 불과한 남자가 운전대를 잡으면서 '남성'이 되고, 눈앞에 김 여사가 나타나니 정말 '짐승남'이 된다.

운전에 서툰 여성을 가리키는 '김여사' 시리즈 사진
 운전에 서툰 여성을 가리키는 '김여사' 시리즈 사진
ⓒ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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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간의 실험, 남자들은 비겁했다

내 차는 한때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빨간색 '라노스 줄리엣'이다. 후면부에는 '아기 타고 있어요~!'라는 앙증맞은 스티커까지 있다. 딱 보면 여자들이 운전할 차처럼 생겼다. 게다가 출고한 지 12년이나 된 '똥차'다. 진짜 여사님이 탈 가능성은 제로다. 지나가는 개도 만만하게 볼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거다. 그래서 다른 차들은 언제나 내 차 앞에서 우쭐하다.

2박 3일간 700km 정도를 운전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 참에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남자들이 얼마나 '건방지게' 운전을 하는지. 모든 실험은 동일한 상황을 2번 재연했다. 한번은 아내가, 한번은 내가 운전을 하면서 '같은 상황'을 만들어 보았다.

먼저 여성운전자들이 가장 곤욕을 치른다는 코스. 편도 3차선의 도로. 3차로는 '우회전'과 '직진'이 동시에 가능한 경우. 아내는 일부러 3차로에서 직진 신호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는 난리다. 클랙슨에 쌍라이트(상향등)까지. 마치 이 차선은 '우회전 전용'이라는 것처럼.

아내에게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슬쩍 돌아보라고 했다. 상황은 더 난리. 운전자가 '여자'임이 100% 확인되었다는 거다. 삿대질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미친 놈의 목소리. "여기 우회전해야 하는데 여기서 직진신호 기다리면 어떡해요!"  아예 교통법규를 만든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직진이 허용된 차선에 있었을 뿐인데.

다음은 내 차례. 아예 담배 한 대를 손에 쥐고 운전석 창문 밖으로 나의 살찐 팔뚝을 떡하니 걸쳐놓고 3차로에서 천하태평. 게다가 2차로에 자리까지 있었다. 뒤에 차가 밀린다. 조용하다. 아~ 뒷 차의 운전자가 여성이다. 다시 재연. 이번에는 남자다. 그래도 클랙슨은 조용했다.

다음은 우회전이든 좌회전이든 직진이든 한쪽 방향만 허용된 차로. 이럴 때 잘못 진입했다면? 보통은 다른 차를 위해서 잘못된 길로 일단 가서 유턴을 하든지 한다. 하지만 악착같이 버티는 차들이 있다. 남자들은 이것이 김 여사의 주요 특징이라고 하지만 이건 어불성설. 

나와 아내는 운전자가 '남자'일 경우에만 클랙션을 일부러 강하고 길게 울렸다. 웃긴다. 아내가 그렇게 하니 어떤 남자 운전자. 고개를 내밀고 노려본다. 나는? 앞으로 자리를 알아서 이동해 공간을 만들어 주더라.

이번에는 우회전을 하는 경우. 그리고 우회전 하자마자 교차로에서 횡단보도 신호가 들어와서 정차해야 하는 경우. 보통 이 경우에 우회전을 따르는 차들은 횡단보도 신호를 볼 수 없다. 아내가 운전했다. 개뿔도 모르는 차들이 난리법석. 어떤 남성운전자는 머리를 내밀고 "빨리 가라고!"를 외친다. 내가 운전했다. 뒤의 클랙슨이 좀 심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앞에 신호 걸렸잖아요!"라고 외쳤다. 돌아는 대답은 간결. "몰랐어요~ 죄송해요~".

마지막. 대형마트 주차장. 만차다. 주차공간 찾기가 어렵다. 몇 번을 돌다 자리 하나 발견. 비상깜빡이를 켰다. 뒤따라 오는 차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서 '정지'를 하고 있어야만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일부러 고개를 내밀며 주차를 매우 걱정하는 듯한 초보티를 냈다. 그랬더니 웃기게도 뒤따라 오는 차가 오히려 거리를 좁힌다. 라이트도 끄지 않아서 눈이 부시다. 그리고 창문을 내리고 꼭 노려보고 간다. 같은 상황. 나는 깜빡이는 커녕 돼지같은 팔뚝부터 올렸다. 일부러 초보처럼 전진, 후진을 몇 번이고 했다. 아주 얌전히 나의 '주차연습'을 지켜봐 주더라.

모든 남자들이 전자발찌를 차야 정신 차릴래?

이 글을 보면 흥분할 남자들 되게 많다. 그런데 아마도 반박자료는 '김 여사' 사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내가 언제 김 여사를 '베스트 드라이버'로 인정하자고 했나? 김 여사는 김 여사이고 왜 김 여사가 아닌 나머지 99%의 여자들에게 그런 몹쓸 운전태도를 보여주느냐 말이다. 이것은 결국 '그 운전'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 운전을 '여자'가 했기 때문에 거품을 물었다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성폭행범은 9할이 남자다. 그러나 지난 100년 간의 성폭행범을 다 모아보아도 남자들의 0.0001%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남자를 '전자발찌'의 대상으로 본다면?

게다가 김 여사는 성폭행범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성차별 '발언'을 해서 곤욕을 치르는데 대한민국 모든 여자가 남자들을 '연쇄 부녀자 강간범'으로 바라보는 수준이다. 그 순간 만큼은 용감해졌던 그 남성들을 이해하기에는 이게 딱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오만한 눈빛'을 해석할 길이 없다.

남자들은 군대의 '잘못된 하나'를 보고 '군대 전체'를 판단하지 말라는 소리를 종종한다. 사회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인내' 같은 거를 배운다나. 그런데 '김 여사' 한번 보고 세상의 모든 여성 운전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이거 무진장 비겁한 행동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온라인이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여사, #여성운전자, #남성운전자, #운전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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